▲주민직선으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지난 5월20일 오전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도의회 본회의에서 오정섭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유성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요즘 즐겨 쓰는 말이 있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다", "학교는 무료급식소가 아니다" 등등. '포퓰리즘'은 말 그대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비합리적인 선심성 정책'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주로 정치적 약자가 강자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쓰였다.
그러나 요즘 포퓰리즘이란 말은 다수 국민들의 요구나 생각이 무지에 기반 한다고 전제하거나, 다수 국민들의 요구나 생각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악용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아무튼 요즘 포퓰리즘은 무한변신을 요구받는 안쓰러운 존재인 동시에, 상대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매우 적대적인 말로 사용된다. 이런 용어를 김문수 지사가 무상급식에 사용하고 나섰다.
허숭 경기도 대변인이
<오마이뉴스>에 쓴 글을 읽고 몹시 당황스러웠다. 글의 논리나 전개방식 문제도 그러했지만, '대변인' 이름을 걸고 쓴 글에서 "민선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씨"라는 호칭이 준 당혹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도 대변인이 실명으로 글을 쓰면서 경기도 핵심기관의 수장을 '씨'라고 폄호(貶呼)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이 정도에서 멈추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언론은 김문수 지사가 "학교는 무료급식소가 아니다", "학교는 밥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본 한 선생님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나는 김 지사의 그 중요한 선생님에 포함되지 않아요." "……?""아이들 급식 문제를 떼어놓고 '선생님'을 말한다면 그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요? 요즘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자신이 무료급식대상자라는 것을 알아요. 그 아이의 주눅 드는 모습을 볼 때나, 급식비 독촉장이 든 봉투를 아이에게 내밀 때 느끼는 자괴감과 무관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요?"그 분은 초등학교 2학년 선생님이었다. 아이가 밀봉된 봉투를 받을 때 짓는 표정, 남이 볼까봐 아무 말 없이 가방 속에 구겨 넣는 아이의 표정을 볼 수가 없어서 그 뒤부터는 자신이 대신 낸다고 했다. '밥' 문제로 아이들의 가슴에 흐를 눈물을 생각하는 선생님과 무관한 선생님? 김 지사가 생각하는 '중요한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선생님일까?
한 반 30% 아이에게 '저소득층' 상처 내고 싶나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 아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자긍심을 일깨우는, 기본적이고 보편적 교육복지 정책이다. 의무교육 기간 동안 교과서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과 다름없는 정책이다.
각종 포털이나 도교육청과 도의회에 올라오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수많은 글들 중에는 학창시절 '무료급식대상자'라는 딱지로 인해 받았던 고통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다. 김 지사 얘기처럼 "아이들은 '말'을 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 때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그 상처를 대물림해야 하나.
그래서 경기도교육감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리지 않고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국가 또는 지방(교육)자치단체로부터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무'적으로 '국민'된 '권리'를 누리게 하자는 정책을 폈다. 또 경기도교육감은 만약 예산이 허락된다면, 이러한 권리는 똑같은 의무교육 대상인 중학생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무료급식을 확대할 수도 있다. 학교가 무상급식소가 아닌 것에도 동의한다. 아니,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다.
그러면 거꾸로 물어보자. 최저생계비 소득 기준의 130%까지 저소득층으로 규정한 것도 모자라 (저소득층을) 140%, 150%까지 확대해야 하겠는가. 그래서 새로운 저소득층으로 규정되고 편입된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무료급식 증빙서류를 만들어 오도록 해야 속이 시원해지겠는가?
한 반 학생 중 30%에게 '저소득층 딱지'를 붙이는 것이 학교가 교육적으로 할 일이라고 믿는가? 더구나 복지 규정상의 차상위계층이 아닌 그들을 도대체 뭐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우리 어린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도 모자라 부모의 경제력 순으로 줄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인가?
교육은 '합리적 배분'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