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 나온 이등병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별 볼일 없는 사람만 군에 간다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만연할까 걱정

등록 2009.12.18 15:53수정 2009.12.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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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군대에 가기 싫어 하던 아들이 딱 5개월 만에 7박8일간의 첫 휴가를 나온다는 전화에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 들떠 있는 것 같다 싶더니, 휴가기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철없는 아들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변한 것이 뭐가 있을까? 아들은 "생각보다 군대생활이 편하다"는 것과 입고 온 군복을 스스로 챙기는 것, 물렁살이 빠지고 약간의 근육맨이 된 것. 군대 다녀온 사촌 형과 이야기가 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체력은 확실히 좋아진 것 같다.

 

하루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데 가족 모두가 탄 엘리베이터가 만원이 됐다. 그러자 아들은 "내가 내리지!" 하고 내려서 우당탕 하고 뛰는가 싶더니 벌써 10층에 도착해 번호키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가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느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첩함에 모두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것이 철부지인 것을 다시 확인해 주는 첫 휴가였다. 휴가 도착한 다음날 집에 아들 이름으로 택배가 배달되었다. 퇴근해 보니 아들은 벌써 나가고 없고 배달된 택배박스를 무심코 열어보니죄인의 머리(수급) 같은 것이 들어있어 잠시 기겁을 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가발이었다. 아마도 아들이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pc방 들어가서 그것부터 주문한 듯하다.

 

휴가온 이등병의 가발과 소품들 아들이 휴가 도착한 다음날 집으로 배달된 아들의 가발과 소품들입니다.
휴가온 이등병의 가발과 소품들아들이 휴가 도착한 다음날 집으로 배달된 아들의 가발과 소품들입니다.양동정
▲ 휴가온 이등병의 가발과 소품들 아들이 휴가 도착한 다음날 집으로 배달된 아들의 가발과 소품들입니다. ⓒ 양동정

집에 돌아온 아들 말이 "가발이 써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인인 것이 창피하다나. 우리 같으면 자랑스러워서라도 빡빡머리에 군복을 입고 활개치고 다니고 싶을 것 같은데 창피하다고 하니, 젊은이들 사이에 별 볼 일 없는 사람만 군인에 간다는 풍조 때문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날 밤 아들은 친구 만나러 나가면서 사복에 가발을 쓰고 나가데요! 하지만 군인인데 어찌합니까? 못이기는 척하고 말아야죠?

 

가발쓴 우리집 이등병 친구 만나러 가기전 가발을 쓰고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만지는 우리집 이등병의 뒷모습입니다.
가발쓴 우리집 이등병친구 만나러 가기전 가발을 쓰고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만지는 우리집 이등병의 뒷모습입니다.양동정
▲ 가발쓴 우리집 이등병 친구 만나러 가기전 가발을 쓰고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만지는 우리집 이등병의 뒷모습입니다. ⓒ 양동정

그렇게 철없는 아들이지만 세 식구만 있는 집에 장정 하나가 더해지니 집안이 꽉 찬 듯하여 좋았다. 하지만 어느새 복귀 날이 되어 터미널 태워다주는 길에 슈퍼에 들르자 하더니 믹스커피. 소시지. 햄. 라면 과자 등등..그야말로 인스턴트 식품만 한 보따리 담는다. 택배로 부쳐 달라며. 터미널에서는 내리지도 못하게 하고, 1층의 명찰군장 파는 가게로 사라진다. 곧 일등병 진급하니 계급장 사가지고 가야한다며.

 

한참을 차를 세워두고 한 번쯤 밖을 내다보지나 않을까? 하고 기다려도 얼굴도 디밀지도 않는다. 동료들을 만나서 복귀하기로 했다하니 들어가기 싫은 맘은 덜하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래도 영 짠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가기간 중 그렇게도 날씨가 따뜻하더니만 복귀하는 날부터 추워져 오늘 서울이 영하 12도라고 한다. 그러면 거기, 고성은 영하20도 이하로 내려갈 것이다. 지난 11월 첫 추위에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집 이등병에게 보내질 택배 우리집 이등병이 골라놓고 간 간식용품들 입니다.
우리집 이등병에게 보내질 택배우리집 이등병이 골라놓고 간 간식용품들 입니다.양동정
▲ 우리집 이등병에게 보내질 택배 우리집 이등병이 골라놓고 간 간식용품들 입니다. ⓒ 양동정

아들이 골라놓고 간 먹거리 등에다 책 두 권과 동내의도 한 벌 사서 넣고 싶었지만 사제는 입을 수 없다는 아들 말이 너무 강경하여 그만두고, 양말 속에 신으라고 털실로 짠 덧버선2쪽. 그리고 손난로 네 개를 더 얹어서 오늘 택배로 부쳤다. 아들놈이 무심코 한말 중에 "영하 20도 가까이 되면 손발이 시려서 손발을 끊어버리고 싶어!" 하는 말이 자꾸 생각나서 말입니다. 사용이 가능할 지 모르지만.

#강한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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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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