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포나루터영월로 귀향을 가던 노산군(단종)도 이곳에서 배를 내려 쉬어갔다. 이포는 상권의 중심지였다.
하주성
영월로 유배를 가던 단종임금이 이곳에서 배를 내려 파사산성을 거쳐 영월로 향했다.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육지로 영월로 간 단종은 얼마나 이곳이 아픈 기억 속에 남아있을까? 이포는 참 사연이 많은 곳이다. 소금을 한 배 가득 싣고 온 선주들은 이곳 이포나루 객주집에서 며칠씩을 묵는다. 소금을 팔았으면 되돌아 가야하는데, 객주집의 아가씨들에게 빠져버린 것이다.
"그년 소금 한 배를 다 먹고도 짜단 말도 없네."선주가 아가씨에게 빠져 소금 한 배를 판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가면서 하는 말이란다. 그 속이 오죽했을까? 이래저래 이포는 사연도 많고 눈물도 많은 포구였다. 이 이포에서 올 들어 가장 춥다는 18일에 수륙제가 열렸다.
강에 대한 죄스러움을 말하다 수륙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고혼이나 바다와 육지를 헤매는 고혼들을 위하여 나라에서 올린 '재'이다. 고려 광종(光宗) 21년(서기 970년)에 수륙재를 올린 기록이 있다. 여주에는 '태종 14년 9월 4일(갑진)에는 내시별감을 보내어 이포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태종 14년 9월 14일(을묘)에는 내시별감을 보내 여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포는 이렇게 중요한 곳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생명을 위한 여강 수륙제'는 이포나루터 옆 공터에서 열렸다. 원래 '재(齋)'와 '제(祭)'는 뜻이 다르다. 원래 불가에서 행하는 것은 '수륙재'이다. 이는 몸과 마음을 닦아 업장을 소멸한다는 뜻이다. 제는 신령이나 망자에 대한 제사를 말한다. 조상, 망자, 그리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제사를 드린다는 뜻으로 '수륙제'라고 했다. 과거 비명횡사한 망자들을 위한 '여단제'가 있었다. 그와 같이 강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그 강에서 죽은 모든 생명들을 위한 제사를 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