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신문배달끈으로 묶어 메고 배달했다.
전득렬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방과 후면 지역의 한 석간 신문을 배달 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신문 배달을 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지만 그 시절에는 참으로 흔한 일이었습니다.
80년대 초의 신문배달 방식은 지금과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최소한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지만 그때는 걸어서 배달하는 것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래서 배달하는 시간도 참 많이 걸렸습니다.
신문 100여 부를 끈으로 묶어 어깨에 메고 독자의 집 대문 아래로 신문을 던져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는 아파트가 드물었고 일반 주택이 대부분이라 집을 찾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을 구독하는 집 대문에 분필로 별도의 표시를 해 두고 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배달 부수에 따라 금액이 달랐지만 당시 받은 월급은 7800여 원. 198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의 자장면 가격이 300원 정도였으니, 지금 물가로 환산한다면 약 7~8만 원 정도의 화폐가치라 생각 됩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신문지국에 도착하면 자기가 배달할 부수를 먼저 세어 챙깁니다. 새로 신문을 배달할 곳이 생기면 번지수를 메모하고, 또 전단지 삽지가 있는 날은 한쪽에 쪼그려 앉아서 신문 속에 일일이 전단지를 삽지하며 배달 준비를 합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더욱 분주해 집니다. 지국에서 나눠주는 우의를 입고, 신문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덮거나 감싸는 등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비가오면 신문 1부 마다 비닐에 포장되어서 배달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장치가 없었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배달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에는 대문 아래도 던져 넣던 신문이었지만, 비오는 날이면 초인종을 눌러 주인에게 직접 신문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비오는 날 신문 배달은 평소 인정이 넘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우의를 입었지만 비에 흠쩍 젖은 저에게 새 우산을 고이 내주신 아주머니도 있었고, 거금 5천원을 주시며 학용품을 사 쓰라는 고마운 분도 계셨습니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분들의 고마움을 성인이 된 지금도 그리움으로 정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누나의 크리스마스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