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일여' 너, 이리와! 나하고 맞짱 뜨자!

시랑헌에서 부르는 나와집사람의 노래_33

등록 2010.01.11 14:58수정 2010.01.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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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포도나무 봄에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임시로 심어논 겨울나기 포도나무
옮겨온 포도나무봄에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임시로 심어논 겨울나기 포도나무 정부흥
▲ 옮겨온 포도나무 봄에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임시로 심어논 겨울나기 포도나무 ⓒ 정부흥

집사람이 고속도로 변 물류창고 신축을 위해 보상을 끝낸 포도밭이 있으니 포도나무를 시랑헌에 가식해 뒀다가 내년 봄에 제대로 된 포도밭을 만들자고 한다. 평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정보를 제공하고 권하는 모양이다.  

 

기꺼이 집사람 제안에 동의했다. 캐나다로 출장 갔을 때, 초청을 받아 원로 교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0여 평 포도밭에서 생산한 여러 종류 포도로 매년 500~700병 정도 포도주를 담아 부부가 매일 한 잔씩 마시고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부러워했던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년 된 포도나무가 욕심나서 약속했지만, 좋은 묘목을 심는 것이 빠르고 경제적이라고 일러준 시랑헌 터 전 주인 아저씨 조언이 자꾸 맘에 걸린다. 시랑헌 컨셉(Conception)을 편백나무로 하겠다는 생각에 지난 6월 시랑헌 뒷산에서 편백나무를 50여 그루 캐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양 옆에 심었다.

 

부끄럽게도 2그루 살고 나머지는 모두 고사했다. 큰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인건비와  재료비, 지지목 구입 등 150여 만원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 나와 집사람은 물론 헛고생했다. 붉은색으로 말라버린 편백나무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시랑헌을 붉은나무집이라 부른다.

 

 

이 박사가 일러준 포도밭으로 찾아갔지만 길을 잘못 들었다. 인력회사에서 보낸 인부들은 남대전IC가 아닌 북대전 IC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이리저리 일이 꼬인다. 가라 앉은 기분 때문인지 성목인 포도나무를 이식하기 위한 작업이 새삼스럽게 어렵고 힘들게 생각된다. 

 

기왕 벌어진 일이다. 회의감을 누르고 작업에 몰두한다. 집사람이 곁에서 미소와 상냥함으로 기분을 맞춘다. 지난 35년 동안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집사람의 만능무기이다.  오전에 캔 나무는 이 박사 밭으로 가져갔다. 

 

오후 6시에 광주에서 40여 년간 지속된 친목계모임이 있다. 지난 9월 모임 때 집안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오늘은 제 시간에 도착하려고 했지만 이미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50그루를 예상했지만 수량이 부족하더라도 4시 반 이전에 캐기를 끝내야 한다.

 

한 시간 동안 싣고, 출발한다고 해도 모임 장소에는 8시경에나 도착할 것이다. 이 박사가 도왔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라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6시 가까이 되어 출발했다. 집사람은 서울에서 내려온 딸과 외손자 때문에 대전에 남았다.

 

서두르고 서둘렀지만 8시경에야 흙투성이 작업복 차림으로 모임장소에 들어섰다. 나에겐 제2인생 준비과정이지만 친구들과 형님들에겐 천한 탐욕과 집착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두렵다. 어찌됐던 내일 아침에는 시랑헌으로 가서 포크레인으로 포도밭 터를 만들고 한쪽 귀퉁이에 가식할 것이다. 

 

포도주 500~700병 장미빛 환상이 빚은 결과이다.

 

퇴직 후 시작되는 제2인생

 

점심 때즈음 포도밭 주인이셨던 노부부께서 오셨다. 자신들의 놀이터 였던 포도밭을 잃게되어 퍽 아쉽다고 하시면서 정든 포도밭을 연상할 수 있도록  몇 그루를 집 정원으로 이식하려고 오셨단다.

 

집사람이 포도나무 몇 그루를 트럭에 싣고 그분들 댁으로 운반해 드렸다. 차 속에서 나눈 얘기를 나에게 건넨다. 두분 다 교수로 퇴직하셨단다. 자기들의 경험에 의하면 퇴직 후 환경변화에 따른 정신적인 공황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서양사람들의 '은퇴가 빠를수록 성공한 삶이다'라는 생각과 달리 우리 사회에 고착된 퇴직의 이미지는 사회로부터 도태이다. 대부분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하게 되고 퇴직 후에도 일거리를 찾으려한다. 무노동은 무가치와 같다는 생각의 결과이다. 

 

퇴직까지 가장의 의무가 지워진 삶이었다면, 퇴직 후 생활은 자신만을 위한 자유스런 삶이다. 보험회사에서는 마치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 같이 선전하지만, 나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퇴직 후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것이다고 생각한다. 

 

퇴직을 앞둔 대부분 사람들에겐 퇴직 후 첫 번째 걱정이 돈이고 두 번째가 할 일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두려움이고 세 번째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외롭다는 것이다.

 

'퇴직을 2~3년 늦추면 이러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퇴직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 기자이며 전국 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인  박용범씨의 '귀농하면한달에 얼마나 버냐고요?' 기사에서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밝힌 내용에 의하면, 월 평균 50만원 이상 수입원이 확보되면 성공한 귀농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월 평균 50만원 벌기가 녹록치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귀농 희망자들에겐 대단히 실망스런 내용일 것이다. 

 

역시, 최근에 읽은 글 내용이다. 도시에서 봉급으로 사는 사람들은 수입액의 70%를 현재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재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깊이 계산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다. 앞 글 내용과 연결시키면 농촌이나 산골에서 50만원이면 생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퇴직을 앞둔 사람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식들이다. 이 시대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기러기 아빠와 그 아내들이다. 상전으로 군림했던 권력으로부터 당한 압박과 뼈에 사무치는 배고픈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바람의 부작용이다.

 

역설적인 예가 되겠지만, 요즈음 명문대 학생들이 더 무식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 논지는 그들이 성적으로 평가되는 시험 잘 보는 것 외에 잘하는 것이 없다는 패러디일 것이다. 기능적인 인간, 끔찍하다. 컴퓨터는 틀린 답을 내주고도 사과하지 않는다.

 

인간의 참 모습이 강조되는 때이다.

 

제2인생을 준비하는 과정

 

현실적으로 애들 교육비와 결혼비용은 애들에게나 부모들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덫이고 족쇄이다. 결혼 후 자식들은 그들 생활비도 만만하지 않겠지만, 주택구입비는 언감생심, 전세비도 일반 근로자들에겐 너무 버거운 액수이다. 기성세대가 자초한 일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70년대를 산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이 둘이다. 이들을 교육시킨 후 결혼까지 시키고 나면 부모는 늙은 육체인 빈 껍데기만 남는다. 자식들은 자신들의 삶도 버겁기 때문에 부모를 돌볼 겨를이 없고 부모들은 제2 인생을 살아갈 여력이 없다.  

 

한 달에 50만원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귀농이나 산촌생활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복비는 그 동안 사 모은 옷으로 해결하고, 식비는 자급자족, 주택비는 시골의 1억짜리 집이면 훌륭하다. 땔감은 지천에 널렸다. 산골이나 농촌생활은 선택의 자유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무공해 식생활이 보장되고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 풍광은 공짜다.  

 

고로쇠나무밭 멀리 고로쇠 나무들이 일손을 기다리나 주말에 가서 하는 일량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일손을 빌리자면 인건비 때문에 차라리 고로쇠물을 사 먹는 편이 경제적이다. 산골의 풀어야 할 숙제다.
고로쇠나무밭멀리 고로쇠 나무들이 일손을 기다리나 주말에 가서 하는 일량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일손을 빌리자면 인건비 때문에 차라리 고로쇠물을 사 먹는 편이 경제적이다. 산골의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흥
▲ 고로쇠나무밭 멀리 고로쇠 나무들이 일손을 기다리나 주말에 가서 하는 일량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일손을 빌리자면 인건비 때문에 차라리 고로쇠물을 사 먹는 편이 경제적이다. 산골의 풀어야 할 숙제다. ⓒ 정부흥

문제는 '나는 아니야' 라는 선량의식이다.

청빈한 선비정신이 그립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시골 병원이 있다. 사람이 소탈하여 아무 화제나 터놓고 얘기하기를 즐긴다. 엔진톱에 다친 다리를 치료하다가 내 건강을 하도 추겨 세우기에 나는 3년 전에 뇌졸중을 앓은 병력이 있는 중증환자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선생님이 앓은 뇌졸중은 큰 축복입니다"라고 하였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치료비를 지불하고 병원문을 나서노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의사가 한 말 뜻을 헤아린 탓이다.

 

나에겐 기다림이요. 설렘의 세월이 은퇴 후 생활이다. 고맙게도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고, 아들도 2010년 5월에는 장가를 갈 것 같다. 광명시 철산동 시장에서 돈까스 하나 시켜서 엄마와 셋이서 나눠먹으면서 길렀던 애들이다. 가난했지만 고통을 서로 나누는 가족 간 이해와 사랑 때문이었는지 애들은 잘 자랐고 나와 집사람은 은퇴 후 살 곳인 시랑헌을 장만할 정신적 여유가 있었다. 

 

수행하고, 농사짓고, 운동하고, 등산하고, 과일나무와 정원수, 야생화와 약초를 가꾸고, 집 짓고, 목공예하고, 돌 쌓아 밭 만들면서 살 것이다. 일년에 한두 번 가고 싶은 여행과 6정보의 야산 골짜기에 숨겨진 보물 찾기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 읽고, 글 쓸 시간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미리 걱정이다.  

 

시랑헌 홈페이지 구축과 세상에 하나 뿐인 조그만 우리집 건축 설계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금()도 목놓아 울 날을 서재 귀퉁이에서 참고 기다려 줄 것이다.

 

절로 터진 주둥이만 놀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 달에 50만원으로 살아가는 생활 보고서

를 작성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 두 주먹을 힘껏 쥐어본다.

 

'선농일여(禪農一如)' 너, 이리와! 나하고 맞짱 뜨자! 

2010.01.11 14:58ⓒ 2010 OhmyNews
#산골생활 #은퇴 #퇴직 #제2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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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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