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2월 11일 징계 철회 및 공정택 교육감 퇴진 촉구 기자회견에 징계통보를 받은 교사들이 이번 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혜원, 정상용, 박수영, 송용운, 설은주 교사.
권우성
이번 판결로 인한 복직 결정은 법조계나 교육계에서는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비록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국민과 교육계의 상식을 확인한 수준의 판결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제고사 자체의 위헌성이나 부당성에 대해서는 법원이 쉽게 불법이라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국민여론조사에서 파면· 해임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과반을 훨씬 넘겼다는 점에서 해임 처분은 국민적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가 파면 해임이 아닌 정직 이하의 징계 처분을 받은 교사들이 많고, 파면· 해임을 당했던 교사들이 자체 징계위원회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의 과도함 등의 이유로 복직 판결을 받은 선례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 역시 법원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일제고사 반대로 파면된 서울 염광중의 황철훈 교사는 재징계를 통하여 정직으로 감경되어 학교로 복직했다. 그리고 지난 8월 서울 대방초의 오정희 교사 역시 같은 이유로 서울교육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지만 파면 해임이 아닌 정직 결정을 받음으로써 교직을 유지했다. 그리고 울산의 조용식 교사도 같은 이유로 해임을 당했지만 지난 11월 16일 교원소청심사위는 징계가 과도하다면서 해임을 취소하고 정직으로 감경하여 결국 학교로 복직했다.
그리고 현재 징계가 진행 중인 경기도 교육청(교육감 김상곤)은 부천공고 김진 교사는 일제고사로 징계를 받은 사례 중 가장 낮은, 최하 징계인 견책으로 징계의결 요구되어 견책 이상의 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한, 법원은 이들 교사들과 같은 시기에, 같은 사유로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안내하는 서신을 보내고, 체험학습을 허가한 전북 장수중의 김인봉 교장의 책임이 이들보다 가볍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직 3개월을 받아, 해임을 받은 이들 7명의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과도하여 취소한다는 결정의 근거로 삼았다.
이번 판결의 영향은?이번 법원의 결정에 의해 이후 달라지는 것들, 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어 보인다.
[영향1] 해직 교사들의 복직은 어떻게 되나?해임 취소 판결을 받은 교사들의 운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첫번째 경우는 서울교육청이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때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교육청은 국가공무원법 제78조의2(재징계의결 요구)에 의해 3개월 이내에 다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 징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해임을 받아 학교를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다른 사례와 같이 정직의 징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3개월 이상을 해임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학교에 복직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두 번째 가능성은 서울교육청이 법원의 해임 취소 결정에 불복하여 고등법원에 항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7인의 교사들은 당장 복직하기 쉽지 않게 된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교육청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논의가 필요한 중요 사안이니 여러 관계자들과 충분한 검토를 한 후에 항소 여부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과 정부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교육청은 복직 결정을 미루고 대법원의 선고까지 기다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미 KBS 이사였던 동의대 신태섭 교수의 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법원은 일관되게 해임 무효를 결정했지만 복직은 대법원 결정 이후에 이루어졌다. 충남 정의여중고나 부산 배정여상에서의 교사 해임 사건 역시 법원의 1, 2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까지 간 이후에 복직이 이루어졌다.
서울교육청과 교원소청심사위가 항소를 하는 것은 자유이고 그들의 권리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단 복직부터 시키는 것이 순서로 보인다. 우리나라 행정법 체계는 "집행부정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즉, 취소소송의 제기는 처분 등의 효력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판례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니 법원의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해임 징계는 일단 철회하고 항소를 하더라도 복직을 시킨 상태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항소해 계속 징계의 정당성을 다툰다고 하더라도 1심 법원의 결정에 따라서 교사들을 일단 복직 시키는 것이 먼저이고 이것이 법적으로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에 의해 구속된 피의자가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검찰이 항소하더라도 일단 그를 석방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직위해제되었던 교사들이 1심 무죄 판결 이후에 비록 검찰이 항소하기는 했지만 직위해제가 취소되고 학교로 복직한 서울교육청의 최근 사례가 있어 전격적으로 복직을 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영향2] 전교조 탄압에 대한 법원의 제동... 시국선언 재판 등에도 영향최근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력이 이루어져 왔고 그 대표적인 수단이 징계와 형사고발이었다. 그 중의 가장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는 일제고사 반대 교사들에 대한 해임에 대해 법원이 취소 결정을 내림으로써 다른 사건에도 상당한 제동이 걸리지 않을 수 없다는 전망이다.
80명이 넘는 교사들을 기소하고 징계한 교사 시국선언 사건 역시 곧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도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전교조에 대한 탄압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법조계와 교육계의 의견이 무리한 기소이자 무리한 징계, 즉 정치적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최초의 민선 직선 교육감 선거인 2008년 7월의 서울교육감 선거 재판도 마찬가지다. 역시 유죄선고를 받고 해직 위기에 처해 있는 전교조 서울지부와 주경복 교수에 대한 기소와 징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재판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즉, 현 정부와 교육 당국이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 탄압의 수단으로 동원한 징계와 기소라는 수단이 법원의 결정에 의해 중대한 장벽을 만난 것이다.
[영향3] 또 다른 일제고사 해직교사들의 소송현재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사례는 이들 7명 외에도 많이 있다. 서울의 또 다른 학교인 세화여고에서도 김영승 교사가 일제고사 건 등으로 파면을 당하여 현재 소송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강원도에도 이와 똑같은 이유로 해고된 교사가 4명이나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서울의 7명 교사에 대한 판결은 일제고사를 이유로 진행된 징계로 소송을 하고 있는 다른 교사들의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파면 해임 교사들 역시 해임 취소 결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일제고사 반대를 이유로 최소 파면 해임 징계는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영향4] 일제고사는 어떻게 되나?서울교육청이나 청와대, 교육당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법원의 결정이 일제고사 실시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손해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징계를 한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실시를 강제하는 유력한 수단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정부의 일제고사 강행과 반대 교사에 대한 징계 시도는 어느 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 강제 실시의 가장 유력한 수단이었던 반대 교사에 대한 배제 징계가 정당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고 있었던 미국과 영국, 일본 등에서도 일제고사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여 세계적으로 이런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세계적 추세와 국회의 일제고사 폐지 법안 제출 등의 외부적 요소도 재판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정부의 일제고사 정책에도 악재(?)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일제고사 형태가 아닌 표집 평가, 선택권을 부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이런 정책마저도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일제고사의 원조라는 영국에서도 이미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일제고사인 SAT를 이미 폐지했고, 잉글랜드도 올해부터 중학교 단계의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초등학교에만 남겨 두었다. 초등학교마저도 학부모와 교사단체들의 반대로 언제 폐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5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선거에서의 공약에 따라 전국학력조사라는 이름의 일제고사를 아예 표집으로 전환하고 예산도 대폭 삭감해 버렸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와 더불어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최재성 의원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일제고사 폐지 법안이 제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감은 지난 주 치러진 시도단위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 학교별, 학생별 선택권을 부여하여 일부 학교가 집단적으로 이 평가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국내외의 상황이 정책 당국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일제고사 정책을 강행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고, 이런 분위기가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더욱 기운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제고사 폐지 또는 대폭 수정 주장이 더 거세어지는 계기가 되어 일제고사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의 의미 : 절반의 승리와 이후의 더 큰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