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에 의해 복권된 비운의 공산주의자들.
<박헌영 평전>
평전은 '그런데도 북한 재판기록은 박헌영의 실제 발언 중 필요한 부분만을 인용하고 인민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의 창작을 덧붙였다'고 지적했다.
글쓴이의 손에서 복권된 인물은 박헌영만이 아니다. 글쓴이는 정판사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자 월북했다가 박헌영과 함께 숙청당한 권오직, 소련에서 일제의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김단야,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였던 김재봉, 박헌영의 최측근이었던 이관술, 일제하 노동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던 이재유 등 비운의 공산주의자들도 이 책에서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다.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에누리 없는 평가글쓴이는 박헌영과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에서 버림 받은 이유에 대해 "한국전쟁 패전의 일차적 책임자인 김일성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기였다"며 "(김일성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생사를 걸어야 했고 (그 해답은) 2인자(박헌영)에게 책임을 떠미는 것이었다"고 못 박았다. 또 "공산주의운동사에는 수많은 종파들이 등장하지만, 김일성의 빨치산 파벌처럼 철저하게 배타적인 종파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평전의 '에필로그'는 본론보다 심각한 주제를 풀어내고 있다. 김일성과 북한 사회주의 실천 과정에 대해 에누리 없는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전은 북한이 남로당 숙청을 시작으로 다음에는 소련파를 제거했고, 그 다음에는 연안파를 숙청했으며, 그 후에는 항일유격대의 주력이던 갑산파들에 대한 대숙청으로 이어졌다며 1953년부터 1968년까지 15년 동안 대부분의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죽거나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남한 권력의 주력이 친일파와 친미파들로 이뤄진 데 비해 북한 권력의 핵심이 항일빨치산파로 구성된 점 자체는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도 "다만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고민과 그 대중적 실천 경험이 부족한 군 출신들의 권력화는 북한을 질곡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외세의존적 지도자 김일성, 피의 공화국 세운 이승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