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그대로 시행되면, 앞으로 사업현장에서 노사 간 갈등이 더 커질 것이고 노사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흐를 수밖에 없죠."
'이것'은 새해 벽두에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관계법)을 두고 한 말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김 소장은 "1일 새벽 1시까지만 해도 현행법이 그대로 시행되는 줄 알았는데..."라면서 "자고 일어났더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돼 버렸더라"고 허탈해 했다.
김 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민주노총 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이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 비정규직 등 고용시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김 소장은 '할 것이 없어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진보진영에서 노동과 고용시장에 대해 현장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몇 안 되는 전문가다.
김 소장과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노동사회연구소에서 마주앉았다. 당시만 해도 노동관계법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반전을 거듭했다. 그만큼 김 소장과 한 인터뷰 내용을 전화로 그때그때 다시 보강해야 했고, 결국 인터뷰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이어졌다.
"개정된 노동조합법 시행되면 노사관계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 지난 1일 새벽에 노동관계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됐다. 12월 말에 복수노조 허용 등이 (개정 이전 조항) 그대로 시행되는 것을 두고 말씀을 들었는데,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웃으면서) 그렇게 돼 버렸다. 노동계로선 차라리 현행 그대로 가는 것이 나았는데..."
사실 김 소장과 지난달 28일 만났을 때, 그는 "내년 예산안 처리에 여야 뿐 아니라 국민들 관심이 집중돼 있을 때, 노동관계법이 의외로 직권으로 강행 처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물론 당시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의 추미애 위원장이 개정안을 처리할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환노위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를 두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처리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 이번에 통과된 이른바 '추미애 안(案)'을 두고 야당 뿐 아니라 노동계는 물론이고 기업들도 반대하는 분위기인데.
"(곧장) 기업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초 내놓은 것보다 후퇴한 것 같으니까 그렇지, 거의 불리한 것들이 없다. 오히려 노동기본권이 크게 제약을 받는 등 노조에 훨씬 불리한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
-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잠시 생각하다) 복수노조 허용을 1년 6개월 뒤로 미룬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것이다. 노조 몇 개를 만들어도, 회사와 교섭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들의 노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 정부나 기업에선 그동안 복수노조를 허용해 교섭권을 모든 주체에게 주면 기업 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고개를 흔들며) 단지 사용자들의 예상일 뿐이며, 교섭권을 단일화하지 않으면 대혼란이 온다는 것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지금도 100곳이 넘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지만, 큰 혼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소지가 크다."
"추미애 위원장의 고민은 알지만,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을 통과시켜서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해서도 김 소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도 2010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누가 타격을 받느냐 하면 대사업장이나 정규직 노조보다 오히려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조합들이죠. 적은 조합원에 몇 안 되는 전임자들의 임금 지급도 없애면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겠죠.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작업환경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목소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 추미애 위원장 스스로 노조와 정부, 사용자 등과 대화를 통해서 나름의 대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추 위원장의) 고민은 이해한다. 이미 한국노총과 재계, 정부에서 합의안을 내놓은 상태에서 그것 자체를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노사관계 인식에선 한계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을 잘 아시는 분이 위헌소지가 있는 법을 통과시켜서야..."
김 소장에게 추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물었지만, 그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작년에 추 위원장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진보개혁진영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 깔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추 위원장은 이번 노동관계법 처리를 두고, 친정인 민주당에서조차 징계 논란에 휩싸이고 노동계 등 진보진영으로부터 '한나라당과 추한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결국 이번에 개정된 노동관계법이 시행될 텐데.
"좀 더 구체적인 시행계획 등이 나와 보면 알겠지만, 앞으로 사업현장에선 노사관계에서 갈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섭권이나 파업 등 행동권이 제약받을 수 있는 소지가 많고, 이를 두고 노사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쉽지 않겠지만, 정치권이 법을 재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탈레반 시장주의... 저임금 비정규직만 늘리는 일자리 정책"
이야기는 자연스레 현 정부의 노동과 일자리 정책으로 이어졌다. 김 소장은 "집권하고 나선 촛불정국에 휘말려 자신의 노동정책 기조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면서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노사관계정책은 철저히 노동조합 두들겨 패기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노동시장 유연화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이미 제도적으로 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화는 돼 있기 때문에 철저히 비정규직 늘리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통해 노조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 정부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통해 위기를 빨리 극복했다고 하고 있다.
"(쓴웃음을 지으며) 잡셰어링의 본래 의미를 아는 것인지... 잡셰어링은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줄어든 월급을 노동자와 정부, 회사가 어떻게 고통분담하느냐가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 보면, 노동시간 단축은 사라지고 이번 기회에 임금이나 깎자는 분위기로 본말이 바뀌어 버렸다."
- 올해 각 부처가 내놓은 정책의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던데.
"가만 보면,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정규직 일자리는 줄이고, 저임금 비정규직은 늘리자'는 것 같다. 대선 공약 때 임기 동안 일자리를 300만 개 늘린다고 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려면) 해마다 60만 개가 나와야 한다. 경제성장률이 5%였던 노무현 정부도 한 해에 많아야 30만 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 일자리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김 소장은 "현 정부는 일자리 늘리기를 마치 임금 깎고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일종의 아르바이트 일자리인 인턴제를 도입해놓고 기업들에게 인턴 늘리라고 하니까 (기업은) 정규직 자리도 인턴으로 대체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오로지 노동시장 유연화만을 외치는 것을 보면 이는 시장주의를 넘어선 시장 근본주의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를 두고 지방의 한 강연에서 "탈레반 시장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조건
- 한때 정부쪽에선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비정규직 보호법이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7월부터 시행됐는데, 2006년 하반기부터 2008년 하반기까지 일자리 증가를 살펴보니까 취업자, 노동자, 상용직 모두 증가했다. 취업자는 29만, 노동자는 44만, 상용직은 47만이 늘었고 대신 임시직이나 일용직은 줄었다."
- 왜 그렇게 나온 것인가.
"비정규직 보호법은 말 그대로 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2007년 하반기에 상용직이 크게 늘어난 것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이후 일자리 증가속도는 크게 둔화되고, 2008년 12월에는 일자리가 아예 줄어들기 시작했다."
- 경제위기의 영향도 있지 않았나.
"(끄덕이며) 타격을 받은 계층은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 계층이다. 또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계속 몰락하고 있고... 하지만 상용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규모가 늘었다. 또 임금수준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대기업은 중소하청기업에 각종 부담을 떠넘기고, 그러면 다시 그 아래 계층으로 비용을 전가하는 악순환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질 좋은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지금처럼 경제상황이 불확실한 경우엔 공공 부문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생각이다. 물론 현 정부에서는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나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그는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제대로 된 일자리 이야기를 적어본다.
"자꾸 현 정부에선 기업들 비틀어서 투자하라고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 쉽지 않지요.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가능성도 거의 없지요. 이런 때일수록 공공부문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야죠. 교육문제가 시급한데, 우리나라 초중고교가 1만1000개라고 합니다. 학교마다 선생님 1명씩만 늘려도 1만명의 일자리가 늘지요. 여기에 병원의 간병서비스 등 의료분야에서도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요. 생각을 바꾸면 질 좋은 일자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2010.01.08 11:56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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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탈레반 시장주의, 저임금·비정규직만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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