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통령, 올해 김정일 위원장 만날까

[2010 코리아, 전망과 과제 1] 2010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전망

등록 2010.01.11 13:10수정 2010.01.1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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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과 <오마이뉴스>는 '2010 코리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새해 특별기획을 6회에 걸쳐 공동 진행한다. 2010년은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한반도 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노력이 병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 MB 정부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출범 3년 차를 맞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코리아연구원'은 2010년 새해를 맞아 통일외교안보-경제-사회분야에 대한 전망과 정책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2010년 한미 양국 정상은 대북 문제에 대해 어떤 내용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하게 될까? 사진은 지난해 11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사진을 찍는 모습.
2010년 한미 양국 정상은 대북 문제에 대해 어떤 내용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하게 될까? 사진은 지난해 11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사진을 찍는 모습.청와대
2010년 한미 양국 정상은 대북 문제에 대해 어떤 내용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하게 될까? 사진은 지난해 11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사진을 찍는 모습. ⓒ 청와대

2010년에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새해 벽두부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북미 사이에도 활발한 양자접촉으로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논의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조심스럽게 내다보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작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2009년의 경우 1월 1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요구하는 대미 강경발언을 하여 신년 초부터 정세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1월 17일 인민군 총참모부가 대남 '전면대결태세 진입'을 선포해 긴장이 급속히 고조되었다. 북한이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대미 강경발언으로 포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로켓 발사를 준비하였다. 오바마 정부의 출범 이전부터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북한은 2008년 미 대선을 대비해 자신들의 전략을 관철할 방안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이 미국의 새 정부 출범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한 것은 몇 가지 경험 때문으로 보인다. 2000년 10월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하였다. 곧바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냉전시대 대결을 청산하는 새로운 북미관계가 정립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 후보가 당선되었고, 북미 공동코뮈니케는 결국 이행되지 않았다.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대한 북한의 기대는 예상보다 큰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 북미 대결이 종식된다는 북한의 기대감이 좌절되자, 북한은 이후 여러 차례 부시 정부 출범으로 전임 대통령의 약속이 부정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북한관리들은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을 수는 없다고 말해왔다. 

 

북미 간의 불신이 만들어낸 협박정치

 

2008년 미국 대선 직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부시 정부는 2006년 11월 이후 대북강경책을 바꾸면서 북한이 오랫동안 희망해온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가 지정을 해제하기로 약속하였다. 2008년 6월 상황이다. 그러나 약속한 시점인 8월 11일에도 테러지원국가 지정은 해제되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 불능화를 원상회복하고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하겠다고 협박하여 10월 11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받아냈다. 북한은 이러한 협박전술이 미국에 먹힌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2008년 8월 11일 이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종적을 감추었다가 미국의 테러지원국가 지정이 해제되는 10월 11일에 다시 등장한 것도 북한의 전략과 관련해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2009년 4월 5일 발사된 북한의 로켓은 오바마 취임 직후부터 미국 정보기관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로켓 발사 준비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면서 합법적인 로켓 발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밟아 나갔다. 여기서 오바마 정부를 시험하기 위한 북한의 의도적인 메시지가 엿보인다.

 

북한이 4월 5일 로켓을 발사하자 미국은 이를 미사일 발사로 규정하고 강력한 유엔제재를 가하였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해 북한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고 플루토늄 재처리에 이어 우라늄 농축까지 강행했다.

 

2009년 10월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리근 대사는 북한의 위성발사는 국제법에 맞는 합법적인 행동이고, 미국과 유엔의 제재가 불법적인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합법적인 위성발사조차 불법적인 것으로 단정했기 때문에 핵실험 등을 강행했다는 논리다.

 

목적달성인가? 소탐대실인가?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6자회담 거부를 위성발사에 대해 유엔제재를 감행한 오바마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했으며, 이런 조치들이 북한의 대미 협상지렛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제 다시 북한이 대미·대남 유화정책으로 돌아섰다. 북한의 정책 전환에 대한 한미 양국의 여론은 제재를 견디기 어려워서라는 제재효과론, 경제가 어려워 외부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경제위기론, 중국이 압박해서라는 중국압박론 등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북한이 강경책으로 북미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체결을 의제로 만들었으니 1차적인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또 플루토늄 추출, 우라늄 농축, 미사일 개발 등 핵능력을 강화함으로써 핵 폐기 협상에서 사용할 카드를 확충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와 미국 여론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킨, 어찌 보면 더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불신증대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2010년에도 북미협상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끊임없이 작용할 것이다.

 

의제선점과 협상 지렛대 확보에 성공했다고 판단한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북한은 이제 의도했던 대결국면을 계획적으로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당분간 북한의 대화 기조가 유지될 것이므로 북한의 마지막 카드가 될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강경조치는 당분간 취해지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없는 세계와 오바마 구상 

 

오바마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 핵문제를 '시급하게 다루겠다'고 강조하면서 보즈워스를 대북 특별대표로 임명했다. 또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 힐러리 국무장관의 방한에서 북한과 대화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많은 미국의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내민 손을 북한이 거절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후계체제 문제를 비롯한 북한 내부 문제가 이유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북미대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화를 거절하고 나서 이제 와서 병 주고 약 주는 것이냐는 물음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의사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을 달군 대형 이슈는 아프간 파병, 핵무기 없는 세계, 기후변화, 의료보험 개혁, 미국 금융위기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9월 23일과 24일 유엔연설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 와 '핵확산금지조약(NPT) 강화'를 약속했다. 더구나 아프간에서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데 부담을 더욱 크게 가지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서 2010년 4월 12일과 1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40여 개국 정상들이 참가하는 '핵 안보 정상회의'가 열린다. 5월 3일부터 28일까지 뉴욕에서 NPT 평가회의가 이어진다. 1995년 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북한 핵문제 타결이 필요했던 클린턴 정부보다도 북핵문제 진전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북미 양자회담, 6자회담, 4자회담이 4월 이전에 진전을 보인다면 핵안보정상회의와 NPT 평가회의에서 오바마 정부의 입지는 훨씬 튼튼해질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두 회의에 참석하기만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은 미국의 필요성이 있을 때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취임 이후 줄곧 북한 체제변화를 시도하며 강경책을 펼치던 부시 정부가 2006년 하반기에 대화와 협상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부시 정부는 임기 말에 북한과 핵문제에 성과를 내려고 했는데, 네오콘들은 부시의 조급성이라고 비판했다. 부시 정부가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네오콘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북정책을 유화책으로 전환한 것은 이라크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의 다수당이 되었기 때문에 북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피해야만 이라크 문제에 집중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오바마 행정부가 '핵무기 없는 세계'에 집중하기 위해 북핵문제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은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4개 현안문제와 북미 정상회담

 

일본의 하토야마 내각이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대화에 나서고 있고, 중국정부가 북일 대화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도 오바마 정부의 대북 대화에 추동력이 될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2010년에는 북미 간의 대화가 활발해질 것이다. 북미 대화는 ▲ 북미 직접대화 ▲ 6자회담이나 4자회담 등 다자접촉을 통한 간접대화 ▲ 경제협력 타진을 위한 접촉 ▲ 대북지원 ▲ 문화교류 등을 통해서 다양하게 진행될 수 있다.

 

미국의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작년 12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미 양국은 북미직접대화, 6자회담, 평화협정을 위한 4자회담 등에 대해 윤곽을 잡았다. 북미 직접대화에서 비핵화의 원칙을 협의한 이후에 6자회담을 통해서 확정하고, 6자회담이 재개된 이후 4자회담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2009년 12월 1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에 대해 "쌍방은 평화협정체결과 관계정상화, 경제 및 에네르기 협조, 조선반도 비핵화 등 광범위한 문제들을 장시간에 걸쳐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였다"고 말하였다. 보즈워스 대표도 비핵화, 평화협정 문제, 경제·에너지 지원, 국교정상화,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 체제를 거론했다고 설명했다.

 

보즈워스 대표가 언급한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체제에 대해 북한이 언급하지 않는 것은 다른 현안에 비해 시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 비핵화 ▲ 평화체제 ▲ 경제·에너지 지원 ▲ 국교정상화 등 4개 현안이 북미 사이에 핵심적인 쟁점이 될 것이다. 

 

보즈워스 대표가 담당하는 북미 간의 직접대화가 발전하고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4개 현안에 대한 개괄적인 가닥이 잡힐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미 정상회담도 예측 가능하게 될 것이다. 특히 2007년 2·13 합의에서 돌출변수를 막기 위해 6개국 외무장관회담을 하자고 했으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해 2·13 합의의 구속력이 약해졌던 사실을 고려한다면 힐러리 국무장관의 방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다양한 북미교류는 대화의 촉진제

 

북미 간의 경제협력을 위한 접촉도 다양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2월 보즈워스의 방북 직후에 미국 국가안보사업이사회(BENS) 대표단 8명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선 핵 폐기라는 미국정부의 입장을 전달하였다고 한다.

 

BENS는 소련 붕괴 후 독립국가연합(CIS)의 핵 폐기를 지원한 전례가 있는 단체이다. 미국은 '넌-루가 법'에 따라서 핵무기 폐기를 유도하기 위해 CIS에 경제지원을 하였다. 이때 BENS 소속 기업들은 미 정부와 상업적 계약을 맺고 핵 폐기에 따른 경제지원의 실무를 담당했다.

 

BENS의 활동이  핵폐기 과정에 맞춰져 있으므로 지금 단계에서 대북투자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BENS의 방북 과정에서 북한이 주요하게 제기한 것은 유엔 제재 상황 속에서 대북투자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논의들은 북미대화가 진행되고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북미 경제협력을 위한 본격적인 접촉으로 확대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개성공단에 대해 관심을 촉구하는 흐름이 있고, 또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이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협력사업 등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간의 문화교류에 대해서도 그동안 미국의 관계자들은 미국은 선호하지만 북한이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작년 10월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리근 대사는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북미 간의 문화교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교류에 대한 북미 간의 입장이 좁혀지고 있다. 군사적 신뢰형성을 위해서 군 의료기술직의 교류나 심포지엄도 제기되고 있다. 2010년에는 북미 간의 문화교류가 북미신뢰형성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악순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2박 3일간 평양을 방문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10일 외교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2박 3일간 평양을 방문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10일 외교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권우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2박 3일간 평양을 방문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10일 외교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보즈워스 방북에서 북미 간에 합의한 4개의 기본현안 가운데 비핵화는 미국의 요구사항이고 나머지 3개는 북한의 요구사항이다. 앞으로 진행될 북미 양자대화에서는 북미 양국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서로 관련지으면서 이행하는 순서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시 치열한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난관들이 조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9년 10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핵보유국 지위를 거론했고, 이후 리근 대사는 북한 스스로 핵보유국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라늄 농축문제 대해서도 보즈워스 대표는 6자회담에서 다루기로 했다고 하는데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조율되지 않은 안건에도 불구하고 4개의 기본현안을 중심으로 북미대화는 진행될 것이다. 

 

4개 현안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비핵화를 약속해왔다. 미국 역시 북핵 폐기와 함께 평화협정, 국교정상화, 경제 에너지 지원을 한다는 계획을 1999년 페리보고서에서부터 준비해왔다.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에서 거듭 확인하였다.

 

하지만 이런 합의들은 실천되지 않은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고 돌아 다시 2010년의 의제로 되돌아왔다. 쳇바퀴를 돌리는 것은 다람쥐가 아니라 합의 이행과정에서 발생한 악재들이었다.

 

북미 공동코뮈니케는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2002년 10월 농축 우라늄 문제가 불거져서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2005년의 9·19공동성명도 합의하는 그 순간에 이미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혐의를 부각시켜서 합의를 무산시키려는 음모를 잉태하고 있었다. 2008년 북핵 불능화의 막바지에서 제기된 검증문제는 결국 북핵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과정을 볼 때 2010년에 북미 사이에 논의될 4개의 기본현안 역시 합의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의되더라도 언제든지 무산될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 사회 내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합의를 무산시키고 원점으로 되돌리는 악재의 근원이다. 악재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준비된 행위에 가깝다. 그것은 북미 간의 불신에서 싹튼다. 1회성 이벤트가 아닌 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북미문화교류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당장 북한이 연말에 실시한 화폐개혁에 대해서 "북한의 화폐개혁은 주민들 사이에 광범한 분노와 공개항의를 촉발시켰다"는 것이 미국 보수세력들의 인식이다.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언론이나 각종 발표를 통해서 공공연하게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등을 돌릴 것이며 그것은 시간문제이다", "김정일의 통제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정부는 그를 긴급구제하기보다는 몰락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0년판 북한붕괴론은 1990년대 중반 북한붕괴론의 재판이다. 1990년대 중반의 북한붕괴론이 허구적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다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한편에서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면서도 "오바마 정부가 중국에 진지하게 보상을 해서 대북 압박에 대한 공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오바마 정부 내부에는 북한 체제전환을 주장하는 네오콘들은 사라졌지만 북한을 믿을 수 없으니 핵확산을 막는 차원에서 관리하면 된다는 흐름도 적지 않게 있다고 한다. 이같은 대북인식이 그동안 수없이 발생해온 악재를 키운 진원지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 북미협상이 진행되어 4개 현안에 대한 새로운 일괄타결이 모색되면 또다시 악재가 등장할 것이다.

 

지난해 8월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행 호주 선박에서 금지된 북한 무기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미국언론은 이 배에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지구의 이슬람원리주의조직, 하마스 등에 대한 로켓포용 부품이 실려 있었다고 보도했다. 12월 12일 태국 당국은 미국의 제보로 35톤 규모 북한 무기를 실은 항공기를 억류했다. 이 화물기에 실린 지대공 미사일 등의 부품도 하마스 행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충분한 근거는 소개되지 않았다. 북한의 무기수출을 미국 여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유대계에 대한 자극으로 연결시키는 놀라운 상상력일 뿐이다. 이와 같은 상상력은 2010년에 북미협상이 진전을 보이면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보즈워스 방북 이후 <워싱턴 포스트>가 이미 알려진 파키스탄 칸 박사의 증언을 새삼스럽게 인용하여 북한의 우라늄 농축에 대해 보도한 것도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에 유명환 장관이 서울에서 맞장구를 치는 모습도 2010년에 자주 접하게 될 드라마의 예고편이다. 

 

남북 정상회담, 절반의 가능성

 

신년 초부터 남북관계는 밝은 전망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남과 북 사이에 상시적인 대화를 위한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 올해에는 남북관계에도 새 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밝혔다.

 

통일부 역시 2010년을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통일부가 2010년 정세전망에서 '올바른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 기대 상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기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올해는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지난 2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올해에는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데 남과 북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2010년 통일정세를 밝게 만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전후로 북한의 주요 인사들과 필자가 만나서 주고받은 의견과 비슷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그 당시 2012년에 몰린 국내외의 각종 정치일정과 북한의 강성대국건설 원년 등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이명박 정부의 임기 중인 2010년부터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오갔다. 북한이 지금 시기에 남북대화 의지를 밝히는 것을 단순히 북미대화 촉진을 위한 전술로 보기 힘든 이유이다.    

 

남북대화의 절정은 정상회담이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3년 차인 2010년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하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원칙에 기초한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이 원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실을 맺기 위해서도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정상회담을 위해서는 기존에 걸림돌이 되었던 핵문제나 인도주의 문제를 약간 손질하면 가능할 것이다. '비핵-개방-3000'을 '3000-개방-비핵'으로 조정해서 핵문제의 순서를 유연하게 조절하고, 국군포로나 납북자, 한국전 국군 유해 발굴 문제도 실질적 해결을 위한 태도를 취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관계의 개선 속도를 앞지를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남북정상회담은 말만 무성한 속 빈 강정이 되어버릴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북미관계가 풀리기 전에 남북관계를 먼저 진전시키기에는 정치적인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정권의 속성으로 볼 때 보수층의 반발을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도 미국이 페리보고서를 통해서 대북정책의 기조가 잡혔기 때문에 6·15 선언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와 반대로 북미관계가 진전되어도 남북관계를 쉽게 풀기 힘든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정책을 부정하고 비판해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속성은 보수정권이 7·4 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같이 남북대화를 진행시켜도 보수층의 반발이 적었던 과거 상황과도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속성상 결과적인 통미봉남의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를 발목 잡는 보수세력과 함께 한미 보수연대를 추구할 것인가,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의 첫출발을 향후 90년을 준비하는 해로 만들 것인가? 경술국치 100주년이 던지는 이 질문의 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김창수 기자는 민화협 정책실장, 청와대 NSC 행정관,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방문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 코리아연구원 자문위원입니다.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경제통상·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다. 이 글(특별기획29-1호)의 원문 및 관련 정책자료들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북미관계 #남북관계 #김정일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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