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느니 염불한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연극단체 '재인촌 우듬지'의 김영오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농담 삼아 던진 답변이다. 좀 별스럽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직껏 전북지역에서 1월에 연극공연을 올린 단체는 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선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1월 공연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재인촌 우듬지는 15일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우듬지소극장에서 '타인의 눈'이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보다 저렴한 관람기회제공을 위해 운영 중인 사랑티켓의 경우만 보더라도, 서울은 1월부터 가능하지만 전주는 3월부터라 공연을 보자면 관객들은 온전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 한다. 지역에서 1~2월 공연이 워낙 없다보니 생긴 현상이긴 하지만, 역으로 사랑티켓마저 되지 않으니 여건이 돼도 구지 단체들이 무리하며 공연을 올릴 이유가 없다. 더구나 우듬지는 관객동원을 위한 초대권을 발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단체다.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기금도 2월말에야 확정되기 때문에, 1월 공연은 그야말로 작품 하나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고독한 공연이 되고 만다.
좀 더 진지해보자 했더니 "사실 우리도 이번 공연이 흥행 대박을 일으킬 것이다,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울 것이다, 뭐 그런 생각으로 올리는 건 아닙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에 덧붙여 "자체 소극장이 있고, 전속 배우가 있고,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가 있는데 공연을 못 올릴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며 "우리는 연극하는 사람들이고 1년 12달 중 한 달도 빼놓지 않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우리가 당연한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그게 상식일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 서야 배우고, 소극장은 공연이 올라가야 소극장이니까.
재인촌 우듬지는 올해 무대에 올릴 정확한 공연제목과 공연일자가 이미 다 나와 있는 상태다. 2011년 공연일정까지 가닥을 잡아놓은 상황이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올해는 4작품으로, 365일 중 275일 동안 무대가 가동된다. 1~2월은 <타인의 눈>을, 3~8월은 도내 최장기 공연인 150일간 151회의 <화>를, 9~10월은 스릴러물 <두 여자>를, 마지막 11~12월은 <오래 전愛>가 공연되는 것.
아직 지역에서는 선례가 없지만, 정말 기가 막힌 수작이 한편 만들어지고, 그로인해 1년 12달 상시공연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275일이라는 숫자는 전국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공연 횟수다.
"연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남들 못해보는 1월에도 공연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관객들도 연극공연이 몰리는 4월이나 5월, 12월 뭐 그런 때만 연극을 보고 싶어 하는 건 아니잖아요. 관객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어렵겠지만, 그 첫걸음을 우리가 떼어보자는 의미도 있고요. 우리에게 자극받은 다른 단체가 공연을 한편이라도 더 무대에 올린다면, 그만큼 관객들에게는 좋은 거 아니겠어요."
연극 <타인의 눈>에는 이런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그는 저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예요. 바로 저란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의 눈빛. 저를 그냥 저로 인정해주는 그런 눈빛으로요. 당신은 아세요? 언제나 비판의 눈빛만 받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완벽하게 낯선 타인의 눈빛에서 나에 대한 긍정의 시선을 느끼고 난 너무나 당황해서 버스에서 내렸어요."
연극도 그렇지만 거의 모든 공연단체에게 1월은 타인이었다. 그만큼 공연하기에 어렵고 낯선 시기였다. 재인촌 우듬지의 작은 움직임이 전북공연계에 퍼지고, 그로인해 타인의 계절에게도 긍정의 시선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와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좌충우돌 결혼 이야기 <타인의 눈>은 15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우듬지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1.12 17:5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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