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곳곳에 '낙석위험'이라고 적혀있다
박혜경
용산참사 1주기를 맞는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 앞은 조용했다. 아파트 곳곳엔 '낙석 위험, 주차 금지, 통행 주의'라는 노란 경고문이 붙었다. 주변 건물에는 녹색 가림막이 내려져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파트 맞은편 건물을 부수던 굴착기만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다.
철거 건물에서 떨어지는 돌에 맞을까 봐 자동차마저 피해간다는 이곳. 하지만 아직도 아파트 안에는 14가구 50여 명의 주민들이 남아 있다. 건물 입구에 한두 개 남아있는 계량기만이 이곳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2월, 바로 이곳에서 세입자 김아무개(66)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아파트에서는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다. 소음과 먼지, 압박감에 시달리던 세입자들과 어떻게든 철거를 진행해야 하는 용역업체간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웃들에 따르면 김씨는 사망 직전 용역업체 직원과 몸싸움에 휘말렸다.
서울시가 '세입자 보호대책'을 발표하면서 동절기 재개발 철거 금지를 명시한 지 1년,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구역으로 철거작업이 시작된 지 열흘이 안 돼 벌어진 일이다.
꽁꽁 얼어붙은 아파트 계단... 붕괴 위험까지김씨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부인 이아무개(64)씨는 아파트를 비워놓고 있었다. 가슴 아픈 기억이 자꾸 떠올라 아들네 집을 오가고 있는 것이다.
이씨를 찾아가 만나보려 했지만, 그는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 했다. 보도가 나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자신이 사회적 이슈로 거론되는 것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남편의 자살 이후 심적으로 지친 상태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전해준 박찬일 용강동 주민모임 대표는 "얼마나 힘들겠냐, 제가 말로 감히 (유가족들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얼마나 심신이 피폐했으면 자기 목을 맸겠냐"고 강조했다.
김씨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이곳의 철거는 일단 중단됐고, 지금은 빈집마다 자물쇠로 잠가놓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한참 철거가 진척된 아파트는 더 이상 사람이 살만한 주거공간이 아니었다. 곳곳이 부서진 건물에서는 쾌적한 생활은커녕 기본적인 생명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