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 때문에 산을 붉게 그립니다"

[인터뷰] '아름다운 우리강산' 시리즈 이한우 화백

등록 2010.01.29 17:47수정 2010.01.29 18:03
0
원고료로 응원

우리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 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수십년간 화폭에 담아 온 화가가 있다. 이한우 화백(82)은 "우리가 살아왔던 땅과 바다가 가장 소중한 삶의 터전이며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우리강산'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우리강산'은 이한우 화백이 1980년대부터 발표해 온 연작시리즈로 세계에서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라며 극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태어날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

 

이한우 화백은 1929년 7월 15일 통영시 산양읍 연화리 중화마을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이종영씨와 어머니 송림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화백의 동생들은 무려 8명(6남 3녀)이나 되는데 그 중 막내동생인 이인우씨가 형의 재능을 이어받아 현재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 화백은 산양초등학교, 통영상업중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임용고시에 합격, 모교인 산양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22세에 6.25발발과 함께 군에 입대했으며 복무를 마치고 거제초등학교와 장승포초등학교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이후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을 겪으며 통영초등학교, 통영고등학교 등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하다 퇴직했다. 퇴직 후에는 통영의 전통공예인 나전칠기에 도전, 성공적으로 공예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화백은 고향에서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그림을 언제부터 좋아했느냐고 물으신다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주 옛날 '하늘천 따지'를 배울 때도 저는 공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계속 그림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화가가 된 거지요"라고 밝혔다. 이어 "교사생활을 할 때도, 나전칠기를 할 때도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역시 통영출신으로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형근 화백과 저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김형근씨와 함께 열심히 그렸죠. 같이 전시회도 하고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197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이 화백의 그림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이 시기 서울로 이주한 이 화백은 입선 4번, 특선 6번을 연거푸 차지하며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 후 예술의 중심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는 8번이나 초대를 받아 전시회를 가졌으며, 대한민국 문화보관훈장·문화은관훈장, 프랑스정부 문화기사 훈장 등을 받았다.

 

우리 그림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

 

"우리들이 하고 있는 서양화는 프랑스에서 일본을 통해 들어왔거나 아니면 우리가 직접 프랑스에 가서 공부해 온 것들입니다. 그림에는 그 나라의 국민성과 철학이 담겨야 그 나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데 한국 서양화는 아직까지 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단계에 있었죠. 서양화보다는 동양화가 우리 그림에 더 가깝지만 그조차도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가 없었고요. 우리는 우리 그림을 그려서 보여줘야 세계의 미술시장에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저도 우리나라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금껏 노력을 해왔죠."

 

이 화백은 각고의 노력 끝에 동양화를 기본으로 한 현대적 그림을 탄생시켰다. 동양의 선을 중심으로 유화 물감을 채색한 이 화백만의 특별한 기법은 세계인들로부터 "아! 이것이 한국의 그림이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세계인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 화가의 얼굴은 몰라도 그림의 특징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이한우 화백의 '아름다운 우리강산' 시리즈이다.

 

또한 여러 예술인을 탄생시킨 통영답게 이 화백도 고향에서 많은 예술적 특수성을 부여받았다고 전했다.

 

"나의 고향 통영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항상 그림을 그리면서 고향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그림에 바다가 많기도 하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조국해방이 됐는데 당시 고향 산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간혹 소나무가 몇 그루 있을까. 일본 사람들이 마구 베어갔고 땔감으로도 쓰고요. 그렇게 나의 어릴적 산은 항상 붉은 산이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뇌리에 남아 저는 산을 붉게 그립니다. 의미는 좀 다르죠. 제 그림속의 붉은 산은 사계절 그대로인 산, 변하지 않고 영원한 산, 원초적인 산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따뜻한 국민성을 대변하는 색깔이기도 하고요."

 

이 화백은 최근 그의 호 '동림'을 이름으로 내건 아름다운 전시관을 건립했다. 천안시에 마련된 동림미술관은 아직 정식오픈을 하지 않았지만 작품 전시는 끝난 상태로 현재 많은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이 화백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에서도 미술관이 건립된다. 구청은 그 일대가 재개발됨에 따라 이 화백의 자택을 구립미술관으로 개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다.

 

아직도 밤낮없이 하루 8시간 이상을 창작활동에 쏟아붓고 있는 이 화백은 "올해 열리는 경주엑스포에서 4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개인초대전을 갖습니다. 엑스포 초대전을 마치고 나면 6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전시회가 있고요. 더욱 좋은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a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45-25번지에 마련된 동림미술관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45-25번지에 마련된 동림미술관 ⓒ 이한우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45-25번지에 마련된 동림미술관 ⓒ 이한우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한우 화백 인터뷰는 1월 27일(수) 이뤄졌습니다. 
#이한우 #이한우 화백 #이한우 미술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