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농담하는 카메라〉
문학동네
나이 차이가 있어도 공감대가 있으면 한결 가까워지고 또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어제 오후에 50대 중반에 달한 어르신과 남한산성을 오르면서 주고받은 이야기도 그랬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수학을 무지무지 싫어했다.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 당시에 만난 수학선생님, 특히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은 전혀 연관성 없는 연관성을 이어나가며 질문을 던지는 데 달인이었다. 이를테면 그 날이 며칠인지 1번 학생에게 물었을 경우, 늘 날짜에 해당하는 학생이 그 문제를 푸는 공식을 말해야 했고, 그 다음 번호나 아니면 그 옆에 앉은 학생이 그 다음에 이어 문제를 직접 나와 풀어야 했다. 당연히 대답 못하거나 풀지 못하면 줄줄이 '줄빠따'였다. 그때마다 긴장에 긴장을 더했고, 늘 그 시간은 초죽음이 되어야 했다.
남한산성을 오르며 그 이야기를 건네자, 그 분도 당신이 겪은 중고등학교가 전혀 다르지 않았다며, 내게 공감대를 보내왔다. 나이 차이도 많고, 취미도 전혀 다르지만, 그 시절에 겪은 이야기는 그렇게 나와 그 분 사이를 친한 관계로 동여매 주는 이음새 역할을 했다. 그 시절 나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면 수학 문제를 풀기보다는 예상 문제와 답을 줄줄 외우곤 했는데, 그 분 역시 그랬다고 한다.
입담꾼 성석제가 쓴 <농담하는 카메라>에도 그 시절에 겪은 문제와 답 외우기가 나온다. 그 시절 동료 학생들은 국어 고문(古文) 시간만 되면, 문장 한 줄을 차례대로 외워야 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몽둥이질로 초죽음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느 학부형 하나 그 선생님에게 대항하거나 찾아들어 항의한 분이 없었다니, 얼마나 엄한 시절이었는지 직감할 수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자신이 다니던 시골 학교에 박정희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는데, 그때마다 학교 운동장 주변에 코스모스를 심고, 또 길과 교실을 반들반들 닦아야 했던 일들도 싫은 일 중 하나였지만, 뭐니뭐니해도 헬리콥터가 내려앉고 또 날라가면서 휘날리는 먼지도 가장 싫었다고 한다. 그 시절 그 학교를 다녔던 선후배들은 가히 똑같은 공감대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부터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주변을 살폈는데 그제야 입구 근처의 탁자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눈에 띈 게 아니라 내 망막과 시신경과 뇌에 광속으로 질주해왔다. 중요한 건 그 선생님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밥도 안 먹고 방귀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았다. 책을 훔치다 들킨다면 그 선생님이 얼마나 나를 미워하고 경멸할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74쪽) 그가 이어나가는 이야기 중에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옛 향수를 불러낸 이야기 중 하나다. 이른바 도서관에 얽힌 이야기로, 도서관에서 책을 도둑질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 도서관 문지기 선생님에게 걸려 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늦깎이 대학시절에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책을 선물하려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그 속에 초록색 글씨로 내 마음을 담은 작은 쪽지도 들어 있긴 했지만, 나는 자연스레 퇴짜를 맞았고, 그 일로 다른 여학생들 앞에서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적도 있었다.
제목이 그래서 그럴까?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진짜 같은 이야기이고, 또 추억 속에 담긴 실타래 같은 이야기들을 누에고치처럼 다 뽑아내는 걸 보면, 모두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 농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왜나면 제목이 그러니까. 그것이 입담꾼이 농간을 부리는 특유의 멋에 놀아나는 꼴도 되겠지만, 내 생각엔 아무래도 옛 추억들을 재미나게 엮은 이야기지 싶다. 마치 실제 사진에다 약간의 포토샵을 가미한 것처럼 말이다.
어찌됐든 그가 학창 시절에 지리산을 오르며 겪은 사건이라든지, 혹은 대학도 들어가기 전에 맥주를 처음 입에 댄 사건이라든지, 또 시골에서 바둑을 배우고 그 실력으로 내기 바둑을 하며 문학에 기웃거렸던 이야기 등 정말로 공감할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잔뜩 담겨 있는 카메라 사진들이지 싶다. 정말이지 이 책은, 여러 세대가 읽어도 정말로 한 마음으로 배꼽잡고 웃을 이야기보따리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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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수학문제 못 풀면 줄줄이 '줄빠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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