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력 범죄의 유·무죄를 판단하려면 피해 아동의 직접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22)씨는 지난해 4월11일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자신의 외할머니 집에서 외사촌 동생인 B(7·여) 양을 때려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 강간하고, 열흘 뒤에도 폭력을 행사하며 또 강간했다.
결국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두 번째 범행은 자백하며 인정했으나, 첫 번째 범행은 부인했다.
하지만 1심인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태수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A씨에게 2건의 강간범행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과 개인신상정보 열람을 5년간 제공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특히 각 범행을 명백히 구분해 진술하고 있는 점, 범인을 다른 사람과 혼동할 우려도 없는 점, 또한 어린 나이의 피해자가 외사촌 오빠인 피고인을 상대로 당하지도 않은 강간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하면서까지 모함을 할 어떤 동기나 이유를 찾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 진술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A씨는 "22세의 젊은 청년으로서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1심 형량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5형사부(재판장 정덕모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나이 어린 외사촌 동생을 2회에 걸쳐 강간하고, 그 과정에서 상해를 가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자가 입은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큰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변상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보면 피고인이 주장하는 사정들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1심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A씨는 "피해자의 진술을 촬영한 영상물을 유죄 판단의 증거로 쓰지 않은 채, 피해자 어머니의 공판기일에서의 진술과 피고인이 두 번째 범행을 자백한 법정진술, 피해자에 대한 경찰 진술조서 등에 의해 첫 번째 혐의도 유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며 상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제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A씨의 주장은 이유 있다"며 상고를 받아들여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첫 번째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피해자의 경찰에서의 진술이 유일하고, 피해자 어머니의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은 피해자 진술을 확인하는 '전문진술'에 불과해 달리 첫 번째 범행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경찰 진술조서와 피해자 어머니의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은 형사소송법 요건을 갖추지 못해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문진술은 증인이 다른 사람에게 들은 내용을 법정에서 말하는 것.
재판부는 "나아가 성폭력범죄처벌법 규정에 의해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촬영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 그 자체일 뿐이고, 성폭력범죄처벌법 조항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경찰 진술조서나 조사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은 증거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원심은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에 의해 첫 번째 범행을 유죄로 인정한 결과가 된 만큼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성폭력범죄처벌법은 피해자의 직접 진술이 불가능하거나 법정 출석이 어려울 때는 피해자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을 직접 진술의 증거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