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쪽방에서 쉬고 계시는 강순열(왼쪽) 할머니
이주연
지난 1월 27일, 강 할머니를 비롯한 70여 명의 쪽방 주민들이 긴급 대피한 것은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모델하우스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모델하우스 바로 옆 쪽방 건물에 불길이 옮겨붙어 피해를 키웠다.
쪽방 건물은 지난 2000년 사람이 살 수 없는 재난위험시설물 E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런 곳에 화기가 가해지고 화재 진압을 위해 물까지 뿌려지다보니 쪽방은 더욱 위험천만하고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9일, 화마가 휩쓸고 간 쪽방 건물에 들어가니 화장실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쪽방 주민들은 재래식 화장실 세 곳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화재 때 뿌려진 물로 화장실이 모두 넘쳤다. 주민들은 이틀 동안이나 오물이 치워지지 않은 상태를 견뎌야 했다.
화장실 바로 옆 공용 개수대도 이용하지 못했다. 개수대 위 슬레이트 지붕은 불에 녹아내려 내리는 비를 막아주지 못하고 있다. 출입문은 열기에 휘어졌고 창문도 깨졌다. 불과 물의 영향으로 콘크리트도 부서지고 있다.
용산구청·용역업체 모두 쪽방주민들 '외면'쪽방 주민 김순복씨는 "화재 사고 이후 무너진 천장 콘크리트가 쌀자루로 3포대나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딸 집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다 갔다"며 "정말 갈 곳이 없어서 목숨 내놓고 쪽방에 다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갈월동 쪽방은 3층짜리 건물에 2~3평 되는 좁은 방 85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성인 둘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비좁지만 주민들에겐 고된 몸을 누일 '내 집'이었다. 그러나 화재 이후 쪽방은 쉴 공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용산구청 측은 건물 안전진단만 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건물이 사유재산이라 복구 등의 조처를 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에 책임이 있는 모델하우스 용역업체도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보험회사의 처분이 난 후에나 처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화재 이후 용역업체가 해준 일은 파손된 현관문 4개를 교체해 준 것이 전부다. 건물 붕괴를 걱정하고 있는 쪽방 주민에게는 당장 피해복구 대책이 필요하지만 구청이나 용역업체 모두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