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졸업식 촛불과 꽃다발, 이 두 가지 소품으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좌) 순천효산고 제 28회 졸업장 수여식(우)
안준철
지난 11일 오전 10시 30분 순천효산고 효산관, 흥겨운 풍물놀이 가락을 신호로 불이 꺼지자 행사장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깜깜해졌다. 그 후 몇 분이 흘렀을까? 촛불과 꽃다발이 탁자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고즈넉한 작은 풍경 하나가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촛불과 꽃다발, 이 두 가지 소품으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난 잠시 숨을 멈추었다. 촛불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카메라의 라이트를 터뜨린다면 저 어둠도 사라지리라. 어둠이 사라진 촛불은 어떤 모습일까? 밝은 대낮에 촛불을 켜놓은 꼴이 되고 말겠지. 촛불의 효용은 어둠을 밝히는 데 있지만 때로는 잠시 어두워지기 위해서 촛불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둠의 침묵 속에서 인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치유받기도 하는 것이다.
숙연해야할 졸업식장이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떠드는 아이들로 인해 소음의 바다가 되어버린 것은 이미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다. 이를 우리 교육의 현주소, 혹은 교육 실패의 한 증거로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3년의 교육과정을 갈무리하는 학교(혹은 학창)의 마지막 행사라는 점에서 보자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진단과 탄식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실사구시적인 실천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3년의 교육과정을 통째로 바꿀 수 없다면 우선 졸업식장의 그림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사려 깊은 인문학적인 사고가 힘든 세대라면 그들이 좋아하는 영상과 이미지로 승부를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 이런 고민의 과정 속에서 떠올린 것이 촛불과 영상 졸업식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