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세배지만 세배 돈은 좋아라

[현장]안산 국경없는 마을의 국제적인 설맞이 축제

등록 2010.02.15 12:38수정 2010.02.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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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 2010 국경없는마을의 설축제. 코시안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
세배2010 국경없는마을의 설축제. 코시안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성하훈

 세배 돈을 받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세배 돈을 받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성하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벅 마니 바뜨쎄여."
"해피뉴이어"
"쭈붕남으이(베트남)"
"슬라맛다운바르(인도네시아)"

어설픈 우리말 발음과 각 나라의 새해 인사가 섞이며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이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세배를 했다. 세배를 어떻게 하는 줄 모른다는 몽골 아이는 엉거주춤 하는 표정으로 옆 사람들의 세배를 지켜보더니 이내 따라한다.

세배에 이어지는 것은 세배 돈. 잘했던 못했던 어른들이 공평하게 나눠주는 세배 돈에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코시안(한국인 아버지와 아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세)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봉투를 들어 보이며 자랑했고, 이어지는 공연 속에 설날의 풍성함을 즐기고 있었다.

세배로 시작된 이주민 노동자들의 설 축제

 14일 오후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마을 만남의 광장에서 펼쳐진 국경없는마을의 설축제
14일 오후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마을 만남의 광장에서 펼쳐진 국경없는마을의 설축제성하훈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2010년 국경없는마을 설 축제가 14일 오후 안산 원곡동 만남의 광장에서 열렸다. 설날과 추석 등에 열리는 국경없는마을의 명절 축제는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명절의 의미를 나누는 시간으로 각 나라의 민속 공연도 함께 곁들여지는 꽤 전통 있는 행사다.

각자의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음력 새해를 맞는 설날, 안산 외국인 노동자들의 설날 행사도 여느 가정 못지않을 만큼 떠들썩했다. 우리 풍습에 따라 아이들의 세배로 시작된 외국인들의 설 축제는 비록 엉거주춤한 자세로 웃음 속에 진행됐지만 세배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도 세배 돈에는 희희낙락이었다.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마을은 국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 이 때문인 듯 안산역 건너편 '국경없는거리'는 설날을 맞아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멀리 부산 포항 등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연휴를 맞아 찾아든 사람들로 외국 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들은 초만원이었다.


"우린 한국 명절 때 여기로 친구들 만나러 와요."

부산에서 왔다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고국에 못 가는 자신들이 명절 때 찾는 곳이 안산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친구들과 고국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다.


거리 한 쪽에서는 500인 분의 떡국이 무료로 나눠졌고, 노래자랑과 전통 공연 등 외국인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졌다. 그 주변에서 윷놀이와 널뛰기, 제기차기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표정 속에 명절의 즐거움이 가득해 보였다.

또다른 외국인 노동자는 새해 소망이 있냐는 물음에 어설픈 한국말로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우리나라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인 동시에 설날에 갖는 이주민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희망이었다.

새해를 맞는 외국인들의 소원, '돈 많이 벌었으면…'

 2010 안산 국경없는 마을의 설축제에서 펼쳐진 각 나라의 전통 공연 모습
2010 안산 국경없는 마을의 설축제에서 펼쳐진 각 나라의 전통 공연 모습 성하훈

"한국 설날 좋아요. 즐거워요."

장기자랑에서 노래와 기타 연주를 선보인 우간다 청년 알렉스씨(24)는 한국에서 맞는 설날의 인상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5개월 밖에 안 돼 설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고 했지만 분위기가 괜찮은 듯 설날의 감상을 긍정적으로 말했다. 우간다도 비슷한 명절이 있다고 한 그는 평소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을 즐겨해 장기자랑에 도전하게 됐다며 밝게 웃었다.

설 축제 행사장을 찾은 국경없는마을 주민들은 새해인사와 함께 각자의 소망도 전했다.

필리핀에서 온 안느 마리아씨는 "97년 한국에 왔고 벌써 13년째 인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즐거운 한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랜 한국 생활로 명절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듯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중국에서 왔다는 조선족 동포 최성남씨는 "대한민국의 한 가족이 돼서 살고 싶다"며,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사람으로서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자신의 소원을 적은 후 줄에 걸어 놓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자신의 소원을 적은 후 줄에 걸어 놓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성하훈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적은 후 정성스럽게 걸어 놓으며 소원 성취를 빌었다. 스리랑카 왔다는 한 노동자는 "건강하고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설날을 맞는 이주민들 각자의 꿈과 목표 그리고 나라는 달랐지만, 흥겨운 놀이와 장기자랑을 통해 국경없는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이름처럼 국가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준비된 공연과 노래자랑을 통해 하나가 됐고, 출연한 참가자들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뛰어났다. 우리 가요를 멋들어지게 열창했고, 각 나라의 특색 있는 전통 공연을 통해 자신들이 실력을 뽐냈다.

공연에 참가한 각 나라별 경쟁도 두드러졌다. 춘절을 쇠는 중국과 태국, 필리핀, 몽골, 베트남 등 음력 설날이 있는 나라들이 가장 단합되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장기자랑에 나온 사람들도 이들 나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행사 사이사이 펼쳐진 중국의 양걸춤과 태국의 라뜨리 공연, 필리핀 전통댄스가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국 참가자가 나올 때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환호했다. 12명의 출연자가 경쟁을 벌였던 장기자랑 최우수상은 필리핀 참가자에게 돌아갔으나, 수상여부에 관계없이 참가한 사람들 모두 설날을 통해 흥겨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전통으로 자리 잡은 국경없는마을의 명절 행사

프리허그 2010 외국인노동자 설축제 참석자들이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프리허그2010 외국인노동자 설축제 참석자들이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성하훈

국경없는마을의 설날 축제는 안산 외국인노동자 사회의 전통이다. 설과 추석 등 우리의 명절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누리기 위해 시작된 행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우리 명절을 즐기는 외국인들의 특색 있는 행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축제를 준비한 안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와 안산이주민센터는 이번 행사 취지에 대해 '세계 경제 불안과 국내외 경기 침체 각국이 기상 이변에 따른 사건 사고 소식들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이때 이주민과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이번 설을 맞아 지친 마음을 안아주고 작은 희망을 안겨주자는 의미로 방향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올해 설 축제의 주제는 '희망을 이야기하다'

이에 맞게 희망을 상징하는 의미의 프로그램이 몇 가지 선보였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몰려 사는 '국경없는마을'의 특색을 상징하듯 여러 가지 재료가 한 데 섞이는 주먹밥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 준비됐고, 프리허그(Free hug)를 통해 자유롭게 서로를 안아주며 희망을 기원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지진피해를 입은 아이티를 돕기 위한 모금함도 행사장에 놓여졌다. 다국적 이주민들이 얽히고설키어 살아가는 이주민 공동체의 모습을 형상화 시켜 본 것이다.

하지만 다국적 이주민들이 함께 하는 행사의 가장 핵심은 역시나 춤과 노래 그리고 각 나라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것. 58개국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한국 속의 이민족 사회의 설날은 다양한 나라의 맛과 문화가 인심 좋게 나눠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접시 한 가득 다양한 음식을 들고 사진촬영 요구에 응하는 취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얼굴이 환한 이유였다.

이주민들 통해 문화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

 2010 국경없는마을 설축제를 준비한 박흥순 안산외국인근로자센터장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0 국경없는마을 설축제를 준비한 박흥순 안산외국인근로자센터장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성하훈

"이주민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스며드는 과정입니다. 우리 문화의 영역이 더 다양하게 확장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 명절을 즐기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대해 안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관계자의 이야기였다. 외국인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문화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명절에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선보이고, 우리의 풍습에 자신들의 것을 접복시키려는  이주민들의 모습 속에 다문화 사회로 변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엿보였다. 2010년 '국경없는마을'의 설날은 그들 사이의 국경이 없는 만큼 국제적인 축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설날 #외국인노동자 #안산 #국경없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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