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세월, 괴강을 지켜 본 제월대와 고산정

등록 2010.02.18 15:48수정 2010.02.18 15:48
0
원고료로 응원
고산정 흰눈이 쌓인 고산정.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에 소재한다.
고산정흰눈이 쌓인 고산정.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에 소재한다. 하주성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괴강이 흐르는 곳에 바위 암벽이 솟아오른 곳이 있다. 조선 시대의 경승지인 제월대에는 조선조 선조 때의 유근이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정자와 고산정사를 지었다. 선조 29년인 1596년에 만송정(萬松亭)이라는 정자와 지어, 광해군 때에는 이곳으로 낙향하여 은거를 하였다는 것.

숙종조에 편찬된 <괴산군읍지>에는 '孤山精舍 在君東八里  乙亥年  位火燒盡'이라고 적고 있다. 즉 '괴산군의 동쪽 8리에 있는 고산정사가 을해 년에 불로 인해 소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의 기록에 고산정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이나, 만송정이 불타 버렸다는 기록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만송정을 '고산정(孤山亭)'이라 고쳐 부른 것으로 보인다.


괴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산정

석비 경승 제월대를 알리는 석비. 고산정을 오르기 전 주차장 한편에 서 있다,
석비경승 제월대를 알리는 석비. 고산정을 오르기 전 주차장 한편에 서 있다, 하주성

고산정 조선조 선조 때의 유근이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정자와 고산정사를 지었다.
고산정조선조 선조 때의 유근이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정자와 고산정사를 지었다.하주성

고산정을 찾아 길을 나섰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괴산IC를 벗어나 괴산읍을 향해 가다가 보면 제월리가 나온다. 그곳서 괴강을 굽어보고 있는 고산정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가 않다. 고산정을 오르는 산 길 앞에는 주차장이 있고, 그 한편에 제월대의 내력을 적은 석비가 서 있다. 눈이 덮인 산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눈이 쌓인 계단을 올라 괴산정 가까이 가니, 2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정자에 오르면 많은 현판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어진 고산정은 사방을 개방하고 낮은 난간을 둘렀다. 기단위에 주추는 원형으로 다듬어 기둥을 받쳤는데, 툇돌 하나가 큼지막하게 놓여있다.

위에 오르니 이원이 썼다는 고산정이라는 현판과,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선조 39년인 1606년에 쓴 '湖山勝集'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강과 산이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뜻이다. 한편에는 명나라 사신 웅화가 광해군 1년인 1609년에 쓴 '고산정사기'도 보인다.

괴강 고산정의 밑응호 흐르는 괴강. 고산정에 올라사면 아름다운 경치가 내려다보인다.
괴강고산정의 밑응호 흐르는 괴강. 고산정에 올라사면 아름다운 경치가 내려다보인다.하주성

현판  이원이 썼다는 고산정이라는 현판
현판 이원이 썼다는 고산정이라는 현판하주성

호산승집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선조 39년인 1606년에 쓴 ‘湖山勝集’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호산승집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선조 39년인 1606년에 쓴 ‘湖山勝集’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하주성

사방이 아름다운 정자의 주인이 되다


마루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어진 고산정은 사방을 개방하고 낮은 난간을 둘렀다.
마루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어진 고산정은 사방을 개방하고 낮은 난간을 둘렀다.하주성

고산정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밑을 흐르는 괴강이 아름답다. 봄철이 되면 저 물속을 다니며 올갱이를 잡는 아낙네들을 그려본다. 그 또한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까? 양편으로는 괴강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편액의 글씨를 보아도 이 고산정의 역사는 이미 400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을 많은 사람들. 편액과 기문을 쓴 사신 주지번과 웅화도, 그리고 이 정자를 지은 유근도 모두 이 경계의 주인이다. 그리고 그 후에 이곳을 찾아 든 많은 시인묵객들도 모두 주인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선 나 역시, 오늘은 이곳의 주인이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은 인간 누구나가 느끼는 생각이 아닐는지. 오늘 난 고산정의 주인이 되어 말없이 흐르는 괴강을 내려다본다.


'참나무가 이상해요'

참나무 고산정의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참나무들은 모두 구멍에 패어있다,
참나무고산정의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참나무들은 모두 구멍에 패어있다,하주성

찬나무와 정자 고산정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구멍이 뚫려맀다.
찬나무와 정자고산정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구멍이 뚫려맀다.하주성

한참을 괴강을 굽어보며 혼자 상상 속으로 빠져 절경을 느끼고 있는데, 답사에 동행을 한 아우 녀석이 흥을 깬다. 주변에 선 참나무들이 아상하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고산정 주변에 있는 참나무들이 모두 구멍이 뚫려있단 이야기다. 그 말에 주변의 참나무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모든 나무들이 한 곳씩 깊게 파인 홈이 있다. 이것도 특별한 사유가 있지나 않을까?

아마 이 나무들이 여자들인가 보다. 이 제월대와 고산정의 뛰어난 경치에 반한 수많은 남정네들이 찾아왔으니, 그 남정네들을 사랑한 근동 여인들의 마음이 이리 되지나 않았을까? 괜한 말을 해놓고도 멋쩍어 키득거리고 웃는다.

제월대 절벽 위에 자리를 한 고산정.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제월대절벽 위에 자리를 한 고산정.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하주성


주차장으로 내려와 괴강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낙엽 위에 쌓인 눈이 미끄럽다. 강 쪽으로 내려가 제월대를 바라보니, 위쪽 까마득하게 고산정이 보인다. 위에서 괴강을 내려다보아도 장관이요, 아래서 제월대를 바라보아도 장관이다. 그래서 이곳에 고산정을 짓고, 시심을 일깨운 것이 아닐까? 흰 눈이 쌓인 겨울 경치는 또 다른 정자의 풍취를 느끼게 만든다.
#고산정 #고산정사 #괴산 #유근 #제월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