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89)

― '에이스의 건강관리', '이 집의 높이', '네 장의 장문' 다듬기

등록 2010.03.04 13:58수정 2010.03.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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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에이스의 건강관리

 

.. "좋아! 내일부턴 내가 도시락 싸 줄게! 에이스의 건강관리도 매니저의 일이니까!" ..  <아다치 미츠루/편집부 옮김-터치 (2)>(대원씨아이,2007) 190쪽

 

'에이스(ace)'나 '매니저(manager)' 같은 영어는 이제 영어가 아니라고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말마디로 가리키던 일이란 '주전투수'요 '심부름꾼'입니다. 야구경기에서 매니저라면 '도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 스스로 이런저런 우리 이름으로 "매니저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킬 알맞을 낱말"을 짓지 않아서 그렇지, 처음부터 '심부름꾼'이나 '도움이'라고 했다면, 또는 '심부름이'나 '돌봄이' 같은 말을 썼다면, 오늘날은 이 같은 말마디로 널리 자리잡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제부터라도 이런 말마디로 매니저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는 우리 말이며 글이며 알차고 싱그러니 뿌리내릴는지 모르고요.

 

'건강관리(健康管理)'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고, '몸 챙기기'로 손질해 볼 수도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주전투수 몸이 튼튼하도록 보살피는 일"이라고 적어도 괜찮습니다.

 

 ┌ 에이스의 건강관리도

 │

 │→ 에이스 건강 관리하기도

 │→ 주전투수 몸 관리하기도

 │→ 주전투수 몸 챙기기도

 └ …

 

우리 말 문화를 곰곰이 헤아려 본다면, 이 보기글에서는 굳이 토씨 '-의'를 달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에이스 건강관리도 매니저 일이니까"쯤으로 적을 수 있었습니다. 영어 '에이스'나 '매니저'가 있어도, 또 '건강관리'라는 낱말을 그대로 두어도, 무엇보다도 토씨 '-의' 하나만은 말끔히 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보기글을 쓴 분은 이렇게 살피지 않았습니다. 좀더 알맞고 싱그럽게 우리 말글을 가다듬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을 북돋우고 우리 생각을 추스르면서 우리 말글을 끌어올리는 데에 마음쓰지 못했습니다.

 

 ┌ 매니저의 일이니까

 │

 │→ 매니저 일이니까

 │→ 매니저가 할 일이니까

 │→ 매니저가 맡은 일이니까

 │→ 매니저한테 주어진 일이니까

 └ …

 

늘 그렇지만, 여느 때에 잘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여느 때부터 알차고 알맞게 써야 합니다. 한결같이 그러한데, 여느 때에 쓰는 말이 모임자리나 논문이나 책이나 기사나 강연자리에 쓰는 말입니다.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도 여느 때에 쓰는 말입니다. 아이한테 물려주는 말 또한 여느 때에 쓰는 말입니다.

 

여느 때 몸가짐이 다른 때에 똑같이 이어지는 몸가짐이고, 여느 때 마음가짐이 다른 때에 꾸준히 이어가는 마음가짐입니다.

 

하루하루 내 생각과 말과 삶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그때 내 생각과 말과 삶이 흐트러지지 않고 곱게 여밀 수 있게끔 살아가야 합니다.

 

 

ㄴ. 이 집의 높이

 

.. 이 집의 높이는 2.5m이다(최소 규정의 스케일이다) ..  <르 꼬르뷔제/황준 옮김-작은 집>(미건사,1994) 12쪽

 

"최소(最小) 규정(規定)의 스케일(scale)이다"는 무슨 소리일까 궁금합니다. "적어도 이 만한 크기여야 한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글쎄. 이런 말을 영어까지 섞어서 요로코롬 적어야 하나 싶네요. "적어도 이쯤 되어야 한다"라든지 "아무리 낮아도 이쯤은 되어야 한다"라고 적바림하면서는 건축 이야기를 할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 집의 높이는 2.5m이다

 │

 │→ 이 집 높이는 2.5m이다

 │→ 이 집은 높이가 2.5m이다

 └ …

 

"이 집은 2.5m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처럼 안 쓰니 반갑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더 엉터리로 안 썼기에 반갑다고 하기에는 껄쩍지근합니다. 우리가 쓴다는 글이란 고작 이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쓰는 글이란, 번역을 하는 분들이 쓰는 글이란, 더욱이 이러한 번역을 책으로 엮는 사람이 다루는 글이란 겨우 이러한 테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쓰면 넉넉한 글입니다. 느낌 그대로 담으면 알찬 글입니다. 스스럼없이 주고받으면 따뜻한 글입니다. 생각 그대로 펼치면 맑은 글입니다.

 

 

ㄷ. 네 장의 장문

 

.. A4 용지로 자그마치 네 장의 장문이었다는데, 그것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쉰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  <김종휘-너, 행복하니?>(샨티,2004) 24쪽

 

'A4 용지(用紙)'는 'A4 종이'로 다듬습니다. 종이를 셀 때에는 '석 장, 넉 장'으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일일(一一)이'는 '하나하나'로 손질해 줍니다. '그것을'은 '이를'이나 '이 글을'로 손보고, "쉰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는 "편지를 쉰 통이나 보냈다"나 "편지를 쉰 통이나 보냈단다"로 손봅니다.

 

 ┌ 네 장의 장문

 │

 │→ 넉 장짜리 긴 글

 │→ 넉 장이나 되는 긴 글

 └ …

 

'긴 글'이라 하면 될 말을 '장문(長文)'으로 적으니 탈이 납니다. 기니까 '긴 글'이고 짧으니까 '짧은 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은 아예 한 낱말로 삼아 '긴글'과 '짧은글'처럼 다루면 더욱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소설이 길면 '장편소설'이라고만 하지 말고 '긴소설'이라 하면 되고, 시가 길면 '장시'라고만 하기보다 '긴시'라 하면 됩니다. 우리 말 '긴-'과 '짧은-'은 얼마든지 앞가지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말로 우리 삶을 담아내는 새로운 틀을 차근차근 일구고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짜리'나 '-이나 되는'을 모르는 채, "네 장의 장문"이라니요. 짧은 글을 말할 때는 "한 장의 단문"으로 쓰실는지 궁금합니다. "한 장짜리 짧은 글"이요 "한 장밖에 안 되는 짧은 글"처럼 적어야 알맞을 텐데, 길게 쓴 글이든 짧게 쓴 글이든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로구나 싶습니다.

 

늘 말을 하면서도 늘 하는 말이 어떠한 말인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으레 글을 쓰면서도 으레 쓰는 글이 어떠한 글인 줄을 살피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북돋우거나 살찌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04 13:58ⓒ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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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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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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