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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동력 장치가 붙은 것 중에서 바이크(오토바이)만큼 자연에 순응하는 혹은 순응해야 하는 운송수단도 드물다. 특히, 집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늘에서 보내는 신호인 비바람과 눈보라는 바이크를 방안퉁소로 만든다.
그런데 이런 기상 악조건은 비단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과 비가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땅에서 보내는 경고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젖은 땅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는 함정들이 두 바퀴의 설움을 처절하게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연재를 시작하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극성스럽게도 눈이 많이 왔다. 그런데 날씨가 좀 풀리고 괜찮아지려나? 했더니 이번에는 하루 걸러 비가 내리고 있다. '바이크올레꾼'이 바이크로 제대로 콧바람 한 번 쐰 적이 드물 정도로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날씨에 관해 늘어놓는 것은 여행할 때 운송 수단으로 바이크는 편리하지만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속상해 하는 바이크올레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비가 오더라도 아랑곳 하지 않고 출발해 보기로 했다. 빗길 경험도 축척하는 의미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비오는 날 바이크를 타게 되면 바이크 보다는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건강과 안전 때문인데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온도가 떨어지기에 옷에도 신경을 써야했지만 비 단속 장비인 비옷과 장화 그리고 헬멧도 쉴드(앞가리개)가 있는 것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문제는 장갑이었다. 그렇다고 고무장갑을 낄 수도 없고 일단 오늘은 비를 맞더라도 작업용 면장갑으로 대신했지만 바이크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일회용 비닐장갑이 유용하다고 귀띔한다. 다음 기회엔 한번 사용해 볼 요량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 아래에 있는 금둔사다. 이곳은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이 각각 보물 945호와 946호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 감상 차원에서도 괜찮지만 계곡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절의 풍경도 일품이다.
또한 재미난 사실 두 가지는 이곳의 주소가 '조정래길 1000번지'라는 것과 '남도지방에서는 매화가 제일 먼저 핀다'는 것. 금둔사는 낙안읍성에서 선암사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낙안온천을 지난 약 1km지점에서 만나게 되는데 새롭게 복원한 사찰이지만 세월의 느낌도 느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쓴 절이다.
방문한 날이 비오는 날이며 평일이었기에 경내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들릴 뿐 고요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새삼 새롭게 느낀 것은 비옷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운율이었다. 그것은 우산에서 듣던 소리와도 다르고 느낌이 몸 속까지 전해지는 듯한 울림이었다.
산사에서 운치 있게 맨 몸에 비를 맞고 있는 듯 비옷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느낌을 듣고 느끼고 있자니 "이래서 비오는 날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그렇게 좀 긴 시간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눈을 돌려 다리위에 서 있는 바이크를 보니 비오는 날 바이크를 타면 바이크 보다 사람이 더 걱정된다는 말이 거짓처럼 생각됐다.
비록 20년이라는 긴 세월만큼 낡고 초라한 면이 없지 않던 바이크지만 오늘처럼 초라하고 처량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비 맞고 서 있는 바이크의 모습이 왜 그리 안쓰러운지 비오는 날 바이크 몰고 나다니지 말라는 소리가 꼭 사고뿐만이 아닌, 처량하게 비를 맞고 서 있는 바이크를 바라봐야 하는 주인의 아픈 마음 때문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다.
비오는 날 굳이 피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바이크를 타 보세요. 빗방울이 온몸을 감싸고 들려주는 소리와 느낌은 색다름이 있습니다. 더구나 산사를 찾게 된다면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되는 체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단, 가능한 바이크는 비 맞지 않게 세워두세요. 마음이 아프니까요.
2010.03.04 18:2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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