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어디까지 왔나

'김대중 배우기' 다섯 번째 강좌 열려

등록 2010.03.05 19:07수정 2010.03.0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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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관장 김성재)이 개설한 '김대중 배우기' 다섯 번째 강좌가 3월4일 오후 7시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에서 열렸다.

  ‘햇볕정책 어디까지 왔나?’ 주제로 강의하는 한겨레평화연구소 김연철 소장
‘햇볕정책 어디까지 왔나?’ 주제로 강의하는 한겨레평화연구소 김연철 소장 조종안

한겨레평화연구소 김연철 소장이 강사로 나선 이날은 <햇볕정책 어디까지 왔나?>란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 소장은 강의 시작에 앞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면서 자신들만의 개념으로 과잉 정치화된 이념적 개입을 지적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이 달라지는데, 그렇다고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국가 간 합의를 부정하면 국제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듯, 남북관계도 정파의 이익보다 국가 전략으로서의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적인 인물로 집권할 당시 우려와 달리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통일을 이루어낸 독일 헬무트 총리, 열렬한 반공주의자였지만 베트남 전쟁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소련과 데탕트를 추구하고 중국과 관계를 개선했던 미국 닉슨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김 소장은 노태우 정부 때 여덟 차례의 고위급 회담과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한 번도 성사시키지 못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두환 정권(1985년) 때도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교환했던 경험을 보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훈령조작사건'으로 유명한 1992년 9월 8차 고위급 회담도 사실은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일부 강경파들이 훈령을 조작해서 합의에 실패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노태우 정부 말기 레임덕 상태에서 일부 세력들은 남북합의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

취임사는 '민족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진취적으로 하고도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과 의지력 부재, 온건파와 강경파의 빈번한 넘나들기, 과도한 정치적 고려로 남북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던 '잃어버린 5년'의 김영삼 정부도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방정책'을 이어받은 독일 총리나 닉슨 대통령의 행보, 노태우 정부 시절의 '훈령조작 사건'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다져진 남북의 호의적인 관계가 집권 3년 차가 되도록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를 향한 일침으로 느껴졌다.

김 소장은 김대중 정부는 이념적 갈등 확대, 북한 인권문제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노무현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와 탈북자 정착 지원 등에 노력했지만, 지지를 얻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2006년 유엔의 대북인권 결의안에 찬성함으로써 일관성의 문제도 드러냈다고 지적하기도.


많은 것을 남겨준 6·15 남북정상회담

 김 소장 강의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수강생들. 남녀 대학생도 여럿 보였다.
김 소장 강의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수강생들. 남녀 대학생도 여럿 보였다. 조종안

김연철 소장은 2000년 6·15 공동선언은 '햇볕정책'으로 통용되는 '포용정책'의 꼭짓점이라며, 남북관계 역사를 '접촉이 있었던 시대'와 '접촉의 시대', 동시에 '합의만 하던 시대'와 '실천하던 시대'로 구분했다.

휴전(1953년)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6·15선언 이후 관례로 이루어졌고, 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분야별 회담이 체계적으로 열렸으며, 남한이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교역상대국이 되었을 정도로 경제협력이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서해에서 군사적 충동이 두 번이나 일어난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화관리 능력이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김대중 정부가 우발적 충돌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북한의 사과 의사를 확인하고, 긴장 고조 가능성을 차단하고, 평화협력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선택한 것은 '용기'였다고 평가했다.

사실 1999년 서해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지만,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선이 출항했다. 이렇게 미래의 평화를 보여주는 김대중 정부의 탄력적인 안보 관리는 국민이 안심하고 본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외국기업들의 투자유치에도 성공적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김 소장은 접촉을 통한 북한의 변화가 미흡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근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접촉이 가져온 변화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접촉의 부재가 가져온 '냉전의 풍경'들, 김대중 대통령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과거의 낯익은 대립과 증오'들이 춤을 추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향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

김 소장은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개념이라며, 나그네 옷을 벗기는 방법 중 강풍보다는 햇볕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솝우화에서 유래하였음을 설명했다. 영어로는 'Sunshine Policy', 중국에서는 '陽光政策'이라고 부른다는 것.

김대중 정부 대북정책의 공식 명칭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은 클린턴 행정부 대외정책 원칙이었던 '개입과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 Policy) 의미를 내포한 것이며, 서독의 브란트 정권이 추진했던 '동방정책'의 기본개념, 즉 '접촉을 통한 변화'와 같은 개념으로 풀이했다.

김 소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오해와 갈등이 있었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념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책에 대한 선호가 다를 수 있으나 햇볕정책을 둘러싼 비판은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론과 대북정책의 방법론이 구분되지 않고 있음을 가장 중요한 오해로 꼽았다. '포용정책'을 '유화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대표적인데, 유화정책은 1930년대 후반 영국의 체임벌린 내각이 히틀러의 팽창정책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정책이고, 포용정책은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의 경제개혁을 유도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점에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퍼주기론'으로 대표되는 남북경제협력을 비판하는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는 문제도 중요하다며 ▲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에 대한 인식 공감 ▲ 각종 소비재 기술표준을 비롯한 이동통신, TV 전파 방식 등 표준 문제 ▲ 남북경제협력 상실을 꼽았다.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 심화는 결국 남북한의 표준격차를 더욱 벌려놓을 것이고, 모두가 통일비용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경제협력은 분업을 의미하는데, 남북경제협력이 지금처럼 주춤거린다면, 남북 경제공동체 꿈은 멀어질 것이고, 중국 중심의 새로운 동북경제권이 형성되어 우리에게 힘겨운 도전이 될 수도 있음을 예고했다.

현 정부 들어 가장 안타까운 일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래 비전 실종'이라며 정부의 공식 담론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평화체제에 대한 비전이 사라졌으며, 종전 선언 의지가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냉전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김 소장은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시각들은 대부분 '친북이기 때문에'를 내세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필자는 '김대중이기 때문에'를 덧붙이고 싶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했던 '민족'이란 말도 김대중이 하면 색깔론으로 몰았고, 서거 후에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꿈

 강의 중인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 날이 궂고 추웠지만 수강생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강의 중인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 날이 궂고 추웠지만 수강생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조종안

김 소장은 한반도 평화 체제는 '꿈'이요, '희망'이며 우리 시대가 걸어가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며, 한반도 평화체제는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군비경쟁 명분을 약화시켜 동북아의 협력안보가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이 평화체제를 유지하려면 우선 남북이 호혜적인 협력 모델을 추구해야 하는데, 대륙경제권과의 교류확대, 남북경제협력이 핵 문제를 비롯한 정치적, 군사적인 문제와 지나치게 연계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른바 '경제적 포용정책'의 핵심기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남북이 공동 번영할 수 있는 경제협력 과제 세 가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강의를 마쳤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경제협력은 제한된 공간에서 남북한의 경제체제의 차이와 문화, 제도의 이질성을 완화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만들어 가기 위해 북한의 위탁가공 부품산업 육성, 즉 '거점협력 방식'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경제 지리의 연계성 확보.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의 상시운행, 북한 측 철도의 현대화, 그리고 대륙철도와의 연결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개성- 평양 구간을 우선 개량하여, 서울- 평양 철도 운행.

셋째, 남북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 협력의 연계를 확대하고, 신의주를 중심으로 남·북·중 삼각협력과 나진 선봉을 중심으로 남·북·러 삼각협력을 추진하며, 북한을 중계 거점으로 도로와 철도, 에너지 망을 대륙 지향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김 소장의 경제협력 과제 제시는 남북경제협력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할 문제들로, 결국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경제권 형성은 동북아 역내 국가와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대중 배우기' 여섯 번째(마지막) 강좌는 3월11일(목)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김대중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김대중 전대통령 최경환 비서관의 강의가 있을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김대중 배우기' 여섯 번째(마지막) 강좌는 3월11일(목)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김대중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김대중 전대통령 최경환 비서관의 강의가 있을 예정이다.
#김대중배우기 #햇볕정책 #김연철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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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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