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테레즈 르타블리에(Marie-Therese Letablier) 파리 1대학 교수
오마이뉴스 남소연
프랑스는 2월말부터 3월초까지 '스키휴가'가 이어지는데, 솔라즈 연구원은 휴가 기간에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프랑스 가족보건부 산하에 INED라는 연구기관이 만들어진 것은 1945년.
60명의 박사급 연구원을 비롯해 2백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INED는 프랑스의 인구동향에 대한 기초자료 수집과 함께 중장기 인구대책을 마련하는 정부 산하 싱크탱크다. 파리 시내에 있는 이 연구소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찾아갔을 때 솔라즈 연구원은 우리에게 이 국립 싱크탱크의 역사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 최근 2명의 박사급 연구원을 신규 채용하려고 하자 53명의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INED의 인기는 높다"고 했다 .
저출산 문제 해결, "일-가정 함께 할 분위기 중요"프랑스가 INED를 만든 후 네덜란드(1970)와 독일(1996)과 오스트리아(2002)에도 유사한 성격의 연구소가 속속 생기는 등 인구문제 연구에서도 프랑스는 유럽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솔라스 연구원은 "프랑스가 2차대전 직후부터 인구문제 연구소를 세운 이유는 135만 명의 사망자를 낸 1차대전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사한 남성들을 대신해서 많은 여성들이 1차대전이 끝난 후 일자리를 갖게 됐는데, 그로 인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솔라즈 연구원은 "2차대전 이후 재건 과정에서도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당연히 출산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세 자녀를 둔 솔라즈도 프랑스의 오래된 육아제도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다. 첫 아이가 쌍둥이였던 솔라즈는 남들보다 긴 5개월의 출산휴가를 얻었고, 그가 연구소에서 일하는 시간에는 크레시(탁아소)가 자녀들의 보육을 맡았다.
그럼에도 그는 "양성평등을 연구하는 나조차도 퇴근 무렵에는 장보는 문제를 (남편보다) 먼저 걱정해야 한다"면서 "프랑스 일반가정의 가사분담 비율은 가정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2(여):1(남)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르타블리에씨의 경우 INED 연구와 파리1대학 교수를 겸하고 있는데, 2008년 8월 한국에서 열린 '일-가족 양립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파리1대학 경제연구소에서 만난 르타블리에 교수는 "한국에 오랜 기간 머물지는 못했지만, 심포지엄이 아주 유익했고 그곳에서 만난 한국사람들도 아주 친절했다"며 "기회가 닿으면 한번 더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전날 영국을 다녀왔다는 르타블리에 교수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인터뷰 도중 지나가던 학생들이 큰 소리로 잡담을 하자 그는 "지금 중요한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하라"고 학생들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르타블리에 교수는 "정부가 단기간에 시행하는 정책만으로는 효과가 없다"며 "가족수당처럼 금전적·직접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여성이 일과 가정을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르타블리에 교수는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의 경우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된 19세기부터 직장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면서 "그때부터 여성들을 위해 사회보장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 온 것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에서는 부모의 일과시간에 자녀를 맡는 Ecole Maternelle(유치원)가 1881년에 처음 세워졌고, 출산휴가를 허용하는 기업이 1913년부터 생겨났다"면서 "1917년에는 출산장려책으로 가족수당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프랑스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을 당연시하던 사회풍토에서 "아이는 여성이 낳지만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작한 셈이다.
기업이 가족수당 예산의 2/3 부담...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