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3.08 17:23수정 2010.03.0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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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없이 홀로 6남매 키우신 어머니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지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데, 다만 그 시기가 다를 뿐이지요. 어떤 사람은 빨리 죽고, 어떤 사람은 천수를 누리기도 하는데 다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요즘 사람들이야 죽음에 대해 준비를 별로 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죽어서 묻힐 묘자리와 수의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삶의 한 부분으로 담담히 받아들인 거지요.
필자의 어머니도 올해 벌써 칠순 중반을 넘어서 날이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어머니는 마흔 다섯에 남편을 잃고 6남매를 홀로 키워오실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식들이 이제 다 가정을 꾸리고 난 후에는 홀로 살고 계신데, 큰 오빠가 모신다고 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며 고향에서 지내는 것이 편하고 합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형제들은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보러 일부러 고향까지 내려가곤 했습니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시골집 앞 텃밭에서 농사지은 콩과 감자, 고구마 등을 싸주시던 어머니는 지난해는 몸이 쇠약해져 농사도 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왜 아픈데 시골에서 혼자 궁상 떠느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눈물지으며 올라온 적이 많았습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혼자 있는 어머니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방안에 들어서자 황급히 수의를 감추고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어머니를 뵈러 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남편과 함께 시골을 내려갔는데, 방안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삼베로 만든 수의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방안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놀라 수의를 황급히 감추었는데, 남편과 제가 이미 본 뒤였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자식들이 부쳐주는 용돈을 모아 수의를 손수 준비하신 겁니다.
어머니 수의를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연로하신 탓에 돌아가실 걱정이 태산같은데, 수의를 보니 마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은 장모님을 보고 넙죽 절을 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지만 저는 자식들 몰래 수의를 준비한 어머니가 야속해서 인사도 안 하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준비한단 말인가요?
어머니가 벌써 수의를 준비하시다니…. 그렇다면 이제 죽음을 준비한단 말인가요? 어렸을 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도 우리 어머니만큼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당신은 정말 강하셨습니다. 남편 없이 홀로 6남매를 키우면서도 자식들 앞에서는 한 번도 힘든 내색 하지 않으셨습니다.
8년 전 6남매 중에 막내 아들을 장가 보낸 후 '이제야 두 다리 쭉 뻗고 자겠다'며 한 시름 놓으셨는데, 이제 자식들과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어머니를 보니 갑자기 무섭고 슬펐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셨고, 외로웠는지를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손은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훈장이지만 그 훈장마저도 지난 주에는 너무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자식들은 이제 어머니의 훈장보다 자기들 살아가기가 바쁩니다. 필자 또한 아이들 키우고 '워킹맘'으로 사느라 솔직히 어머니보다 남편, 아이들 걱정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날씨가 추워도 어머니 걱정보다 아이들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매일 남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느라 정작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의 외로움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긴긴 겨울밤에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자식들 안부 전화를 기다렸을 당신에게 자주 전화도 해드리지 못한 것이 이제야 후회스러웠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필자에게 어머니의 수의는 '이제 효도할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경고처럼 보였습니다. 수의를 보고 지난주는 어머니에게 마음에도 없는 투정만 부렸습니다. '왜 수의를 준비했냐'며 볼멘소리를 하자, 어머니는 '때가 되면 갈 텐데, 미리 준비하면 좋잖아'라며 딸의 투정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어머니가 왜 딸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보통 때 같으면 어머니를 뵙고 용돈을 드린 후 바로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날은 어머니와 함께 자고 싶어 서울에 바로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다음날 오전 중요한 약속이 있어 먼저 올라가고, 그날 저녁 어머니와 한 이불을 덮고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친정 어머니의 품속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6남매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걱정에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운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숨 죽여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기도 하고,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불효자로 살아온 지난 날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 모두 출가시킨 얘기를 다 하신 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는데, 자식들에게 왜 여한이 없겠습니까?
서울에 올라오면 답답해 견딜 수 없다며, 큰 오빠 집에서 살 수 없다며 시골집을 고집하시는 어머니는 선산에 잠들어계신 아버지 묘소 옆에 당신이 누울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가끔 외로우실 때는 아버지 묘소에 들러 혼잣말처럼 대화도 하시며 이제 아버지 곁으로 가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세상에 남아 남편을 대신해서 할 일은 다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친정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낸 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를 뒤로 두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자꾸 수의가 떠오릅니다.
누구나 영원히 살 수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 어머니만큼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어릴 적 믿음이 깨져서가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할 부모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수의를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 두셨는데, 그 수의를 자식으로서 빨리 꺼내고 싶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2010.03.08 17:2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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