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보건지소는 선심성 공약이다

[주장] 저소득층 등 특정계층 위한 바우처 제도가 실질적 대안

등록 2010.03.16 17:17수정 2010.03.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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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지소'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아마도 의료 낙후지역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혜택을 주는 공공기관이 문득 생각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건지소는 '간단한 진료를 값싸게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의료 소외지역에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주기 위한 곳으로 시골의 변두리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급 자가용을 타고 보건지소로 가는 환자들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고급 자가용'과 '보건지소', 뭔가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안드십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 비슷한 현상은 이제 일선 보건지소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장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도시형 보건지소' 때문입니다. 도시형 보건지소가 각지에 들어서면서 보건지소의 '대중화'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도시형 보건지소'는 '노인 인구와 만성 질화의 증가로 인한 국민 의료비 증가'와 '공공보건의료 혁신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공공 보건기관의 확보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면서 지난 2005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보건지소의 기능은 무엇일까?

 신종인플루엔자가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주차장에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신종인플루엔자 진료·상담소'와 대기자를 위한 천막 및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신종인플루엔자가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주차장에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신종인플루엔자 진료·상담소'와 대기자를 위한 천막 및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권우성

지역보건법 제 10조의 보건지소의 설치에 관한 법률을 보면 "지방자치단체는 보건소의 업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보건소의 지소를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보건지소는 보건소 업무 수행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건소의 기능은 어떤 것인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시 지역보건법 제 9조의 보건소의 업무에 관한 법률을 보면 총 16개의 업무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너무 많은 업무가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글에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크게 질병 예방과 행정, 건강 증진 등의 업무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작년과 올해까지 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신종플루의 경우에도 보건소와 일선 보건지소의 의료진들이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취약계층에 대한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시행하면서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염병 예방 업무는 일선 민간 의료기관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보건소만의 특별한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보건소와 일선 보건지소의 업무는 지역보건법 제 9조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규정하고 있는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의 업무보다는 13조의 일부에 포함된 '지역주민에 대한 진료'라는 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21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이정선 의원(한나라당)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중보건강화를 위한 보건소 기능 및 역할' 토론회에서 박형욱 연세대 의료법 윤리학 교수는 "지역보건법에서 말하는 보건소의 진료업무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전염병 확산 등 예외적 상황에서 '제한된 진료'로 보는 것이 법 취지에 부합 한다"고 밝혔습니다. 즉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지역주민에 대한 진료'는 소외 계층에 제한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건지소의 기능은 의료기관이 없거나 미미한 시골이나 도서지역의 경우 비교적 성공적인 기능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혈압과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의 경우 한달치 약을 복용하기 위해서 진료를 받으러 주변 의원으로 나가야 해 한나절을 도로에서 보내야 하기도 합니다. 주변 보건지소에서 혈압약과 당뇨약을 정기적으로 타는 경우 주변 병의원으로 나가는 수고를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비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의원이 많은 도시의 경우 도시형 보건지소의 진료비가 일반 병의원에 비해서 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병의원의 환자들이 도시형 보건지소로 처방전을 타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도시형 보건지소는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에 총 16개소가 설치되었습니다. 16개소 모두 민간 진료 인프라가 완벽한 도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 소액 본인부담으로 민간 의료기관을 고사시키고 있습니다.

값 싸게 진료 받으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이 글을 읽으면서 '값싸게 진료 편의를 봐준다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갖는 독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세금을 내고 있는 주체라면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현재 일선 병의원과 낙후지역의 보건소, 보건지소에서는 고혈압 및 당뇨약의 경우 한 달이나 두 달 단위로 처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혈압과 당뇨약 등을 약값이 10,000원 이하가 되면 지방세에서 약값을 대납해주는 현재 규정을 악용해서 약을 일주일 단위로 나누어주어, 건강보험공단에서 수배의 진료비를 편법으로 챙기며 지방세는 지방세대로 낭비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건지소로 출근을 한다'는 웃지 못 할 말이 나오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소외계층이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본인부담금 거의 없이 약까지 싸게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지역과 건강보험공단에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고급 자가용을 타고 보건지소로 출근을 하는 경우와 같은 도덕적 해이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다면 현재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도시형 보건지소'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2007년 정상혁 이화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건강복지사회를 위한 모임과 의료와 사회포럼 등이 주최한 '공공 의료 확충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보건지소는 본인부담금이 낮은 만큼 의료이용이 증가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 지출 총규모가 의원을 이용한 것보다 훨씬 많아져 보험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정 교수는 "도시지역 내 보건지소 기능이 모호하다"면서 "만약 도시 내 보건지소가 늘어나면 정부가 불공정 시장 환경을 조성해 민간과 공공의료 간 마찰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고, 당시 정 교수의 지적은 도시형 보건지소가 들어선 지역을 중심으로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선거의 단골 메뉴, 도시형 보건지소

누구나 무료로 또는 값 싼 비용으로 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면 반대할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거나 시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후보자들에게 자신의 한 표를 던질 국민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내가 던진 한 표가 내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정권과 지자체장이 나서서 우리 지역의 저소득층의 '식사권'을 위하여 무료급식소를 일반 식당과 같은 서비스로 서울 중심가에 만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많은 서울 시민들은 환영할 것입니다. 여기에 반대를 하는 식당 주인이 있다면 가차 없이 '밥그릇 싸움'과 '이기주의의 표상'이라며 여론의 시달림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급식소는 저소득층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서울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재원은 모두 서울시민이 내는 지방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설렁탕 한 그릇에 500원만 받아도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고급 자가용을 타고 무료급식소에 와서 500원만 계산하고 식사를 하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벌어질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으로 칭송을 받고, 언론에서도 '합리적 소비'의 표상으로 소개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료급식소의 이용객이 늘어날수록 시간차를 두고 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세금의 양도 비례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월 '공중보건강화를 위한 보건소 기능 및 역할' 토론회에서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지자체장이 보건소장의 임용권을 갖고 있다 보니 보건소는 지자체장이 선심행정을 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하며 "중앙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을 우선할 수 있도록 선심행정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어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더군다나 올해 건강보험재정 적자가 1조8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면서 건강보험료 대폭 인상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도시형 보건지소의 확대는 건강보험재정과 열악한 지방 재정을 축내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에게 실질적 의료혜택을 보장하는 도시형 보건지소 사업을 한다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기 영합을 위한 현재와 같은 도시형 보건지소 사업은 저소득층과 세금을 납부하되 보건지소를 이용하지 않는 많은 국민들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정호 의료와 사회포럼 자문위원(청주성모병원 소화기내과장)은 "진정 저소득층에게 의료혜택을 늘리고 싶다면 이마 수차례 대안으로 제시된 바 있는 바우처 제도를 시행하여야 할 것"이라며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바우처 비용을 적립하거나 돌려준다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의료기관 이용을 억제하여 의료비 증가를 막고, 일반소비로 이어져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지자체 선거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도시형 보건지소'. 질병 예방과 소외계층 진료 업무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당신의 호주머니를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입니다.
#도시형 보건지소 #보건지소 #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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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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