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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일)는 저희 교회 대심방 날 중 하루였습니다. 오후 7시쯤 마지막 가정 예배를 드리고 저녁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최 권사님과 일행 6명이 한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볼일이 있다며 타지에 다녀온 김 장로님에게 전화해서 식사에 합류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객은 김 장로님까지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 김 장로님이 누런 대봉투를 하나 내밉니다.
"이번에 나온 '씨알의 소리'인데, 한 번 읽어 보세요. 농사에 대한 권두 토론에 제가 나가서 한 마디 한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법정(法頂)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폐암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그분이 타계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법정'이라는 이름을 1970년대 초중반 쯤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군사 독재의 철권통치가 국민을 압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정부에 반대하면 무조건 감옥에 집어넣던 시절, 입은 있어도 말을 못하던 시절이 그때였습니다.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시대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사람들 중 법정 스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종로통에 위치해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늘 하늘은 회색빛이었습니다. 해도 빛을 잃고 있었고 달도 떠는가 싶으면 지는 의식 없는 삶을 강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종로 2가에 자리잡고 있던 대형서점('종로서적')이 저의 유일한 놀이터였습니다. 고학하는 가난한 학생이 책 살 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장시간 서점에 눌러 앉아 속독하는 것으로 젊은 날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난 책이 <씨알의 소리>입니다. 밋밋한 백지 위에 소중대의 글자 크기로 책 이름을 달고 몇몇 주요 기사 제목을 뽑은 표지는 그야말로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는 저급 팸플릿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당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월간 <씨알의 소리>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씨알의 소리>를 월간지라고 했지만 온전한 월간지도 되지 못했습니다. 재정이 어려워 빠짐없이 발간하기도 어려운 것이 당시의 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재정 문제보다도 더 책 발행을 더디게 만든 것이 당국의 간섭이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심지어 단어까지 독재 정권에 거슬리는 것이면 고칠 것을 지시하고 그것에 이의라도 제기할라 치면 발행을 중단시켰습니다.
이 <씨알의 소리>에 자주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분 중 한 분이 법정 스님입니다. 그 책을 통해 나는 그분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민주화 운동은 일제시대 독립운동만큼이나 고통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정스님은 스님들 중 유일하게 <씨알의 소리>에 고고한 글을 기고하곤 했습니다. 또 가끔 시국을 걱정하는 모임에 참석해서 형형한 입과 눈으로 입장을 개진했습니다. 젊은 저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비추어졌습니다. 마치 일제에 항거해서 도모한 3·1운동에 민족 대표로 서명한 한용운만큼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할까요?
함석헌 선생의 사저에서 만들어내던 <씨알의 소리>에 법정 스님은 간간이 종교적인 글뿐만 아니라 개발독재로 치닫는 정권을 질타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특별히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제도에 대해서 한 날선 비판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많은 식자층이 불의한 권력에 알아서 기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상황에서 법정 스님을 비롯한 그 당시 <씨알의 소리> 필진들은 억눌린 국민들에게 희망의 소리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얼마 뒤 법정 스님의 이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속세를 떠나 본연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산문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한쪽 날개를 잃은 듯이 아쉬워했지만 그분은 더 큰 일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피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세속을 떠나 있으면서도 세속과 대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서적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그 당시 군사독재 정부는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사건의 대소와 또 모의의 지역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데 신이 나 있었습니다. 1975년으로 기억합니다. 불의한 정권은 또 하나의 사건을 조작해서 사람들을 굴비 엮듯이 엮어냈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그것입니다. 무고한 양민 8명을 사형 선고 후 바로 집행해서 세계 양심의 비웃음을 산 사건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입니다. 이사건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부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세상이었으니까.
후문에 의하면 법정 스님도 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얽힌 사람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어느 지방 산사 뒤에 초라한 단칸방을 마련해 은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은둔하면서도 대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떠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란 말로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타인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스님이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쓴 책들이 <무소유>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등 다수의 서적입니다. 그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쟁에 뒤지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추구하는 물질적 풍요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입적에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정말 지역과 계층 그리고 보혁을 가리지 않는 추도 물결입니다. 심지어는 암울하던 시절 그분이 몸으로 글로 민주화를 외칠 때 입을 막았던 사람들조차 애도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일단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입적을 통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과거를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습벽은 국가 발전에 저해 요소가 될 것입니다.
법정 스님의 입적을 통해서 지나온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종교가 다른 입장임에도 내가 법정 스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분이 이타적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존경할 만한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유의 큰 부분은 말로는 '이타(利他)'를 외치되 행동으로는 '이기(利己)'로 귀결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통일과 민중을 위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들을 보면 의아해질 때가 많습니다.
법정 스님은 독재정권이 입에 재갈을 물릴 때 항의했으며 불의한 권력의 남용에 절필로써 맞섰고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시대에는 다시 책을 통해 더불어 살아갈 것을 호소했습니다. 진정 민주주의를 알고 민주 시민으로서 처신한 지성인의 사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는 말처럼 스님은 순하디 순한 빈손으로 왔다가 깨끗한 빈손으로 가셨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탐욕에 눈이 어두운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은 좋은 교훈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마지막 유언도 그의 삶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수고를 끼치는 번잡스런 장례식을 행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또 관과 수의도 따로 마련하지 말고 평소 입은 승복으로 화장하되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도 더 이상 출간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하니 과연 법정 스님답습니다.
그분의 채취를 느낄 양으로 모아둔 옛날 <씨알의 소리>를 뒤적여 보았습니다. 십 수년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눈에 와 박힙니다.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자신의 생각을 확산시켜 국민의 존경을 받은 사람이 적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런 중에도 법정 스님과 같이 무소유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며 살아온 분이 있기 때문에 위안이 됩니다. 스님은 자신의 출판을 중지할 것을 당부하셨지만 그의 올곧은 삶과 이타적인 그의 사상은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면면히 이어질 것입니다. 따스한 봄 날, 법정 스님의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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