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애 콘서트 포스터
윤선애 공연 추진단
삶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가끔은 쉬어갈 때가 있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아파했던 사람들이지만, 고단한 삶속에서 잠시 잊어버렸던 그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면, 마음이 설렌다. 나의 젊음과 인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주말 토요일(13일) 해가 저물 무렵, 서울 조계사로 그를 만나러 갔다. 내가 만나는 그, 아니 그녀는 조계사 안 공연장인 '한국불교역사문화회관' 앞의 포스터에 걸려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라고.
마침 저 멀리 순천 송광사에서는 '무소유'의 삶을 가르치고 떠난 법정 스님도 다비식을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1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 항상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은 왜 이리도 일찍 우리를 떠나는 것일까.
나는 그녀를 만나면 이렇게 부르고 싶었다. "윤선애씨, 그동안 잘 지냈지요. 오랜만이네요." 물론, 나는 그녀에게 이런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당황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녀는 나를 본 적이 없고, 나도 그녀를 단지 노래를 통해서만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80년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는 그녀를 만나면, 마치 친한 친구라도 되는 듯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속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정의, 햇살 같은 민주와 땀 흘리는 노동의 현장에서 같이 했으니.
어둠이 온 세상을 감싸고 있는 듯 깜깜한 무대에서 옹달 샘물처럼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라는 노래였다. 80년대 전설적인 민중가수인 윤선애가 13일 조계사에서 펼친 18년 만의 공연은, 이렇게 <소녀의 꿈>과 함께 시작되었다. '소녀의 꿈'은 80년대 당시 윤선애의 꿈이자,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소녀의 꿈'과 '소년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녀가, 내가, 우리 모두가 맞닥뜨린 것은 '꽃'이 아니라 전두환이었고, 광주였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바뀌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을 살아왔고, 지금 여기에 있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군)' 전두환으로 인해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길에서 김광석도 안치환도 그리고 윤선애도 만났다.
80년대는 암울했고, 우리는 방황했다. 전두환과 광주는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히틀러와 안네 프랑크였다. 개인이 시대를 바꾸기도 하지만, 시대가 개인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김산과 체 게바라라고 그런 고난의 길을 가고 싶었겠는가. 그들은 역사가 부르는 길을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았을 뿐이다.
25년 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던 그 노래의 주인공
그녀를 대중들 앞에 노래 부르는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도 바로 80년대의 '시대'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동아리 선배가 "<민주>라는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단다. 그녀는 총학생회 발대식에서 <민주>라는 노래를 불렀고, 본격적으로 민중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는 그 때 우리에게 '햇살이고, 불꽃이고, 꽃바람'이었다.
나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대중들의 민주화 열망에 놀란 전두환이 일제의 '문화정치'를 본 떠 대학교 총학생회의 부활을 용인하던 시절, 가녀린 여학생이 부르던 그 노래는 왠지 그 당시에도 슬프고 애절하면서, 마치 진격의 나팔소리처럼 웅장한 함성이자 비장한 구호였다. 볼가강물 위로 흐르는 <스텐카라친>처럼 다가왔던 그 노래를 바로 그녀가 불렀단다. 나는 오늘 콘서트에 와서야 25년 전의 쿵쾅거리던 심장의 비밀을 알았다.
그녀는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는 <민주>를 다시 불렀다. 세월은 흘렀어도, 그 때나 지금이나 <민주>는 <스텐카라친>이다. 누구나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이들 노래는 언제나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을 줄 몰랐다"고 했다. 지난 92년 대학로에서의 단독공연 "윤선애씨, 어디 가세요?" 이후 18년 만의 대중과의 만남에 대한 그녀의 느낌이다. 자신의 앞날을 알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을까. 마치 인생이 미리 짜인 각본대로 살아가는 시나리오라면, 오히려 끔찍하지 않을까. 그녀는 인생의 이런 불가측성 때문에, 오늘 향기로운 누나 같은 <낭만아줌마>로 우리에게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윤선애, 그녀는 그래도 오랫동안 시대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학교를 졸업한 뒤 나름의 행복을 찾아 일터로 사회 속으로 뿔뿔이 밀려들어갈 때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노동의 현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패 <메아리>든 <새벽>이든 그녀는 <저 평등의 땅에>, <그날이 오면>, <민들레처럼>,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를 불렀다. 우리가 고단한 삶속에서 80년대의 시대정신을 잊어갈 무렵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나타나 맑고 고운 목소리로 우리의 나태함을 일깨워 주었다. "일어나라!"고.
윤선애도, 김광석도, 우리 모두를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