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권우성
다시 삼성이다. 이건희가 돌아왔다. 일부에선 '왕의 귀환'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위기'를 들고 왔다. '이번이 진짜 위기'라고 했다. '명예회장'도 아니다. 삼성전자 회장이다. 삼성에선 사실상 그룹을 대표한다고 했다.
도대체 삼성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회장 복귀를 둘러싸고 법적 타당성 뿐 아니라 도덕적 논란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돌아왔다. 무엇일까.
삼성그룹 전자부문 계열사에 다니는 이아무개(38)씨. 그는 최근 휴대폰을 하나 더 구입했다. 스마트폰인 아이폰이다. 한 달여 망설이다가 샀다. 이씨는 "솔직히 회사에서는 제대로 꺼내놓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차장 4년차인 그 역시 상사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동료들 가운데 상당수가 투폰족(스마트폰 등 2개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자부문의 어떤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아이폰을 쓰다가 임원에게 걸려 크게 혼이 났다고 들었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사내 보안보다 '아이폰 숨기기'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의 동료인 김아무개(37)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휴대폰 사업 쪽의 친구에게 '왜 우리는 아이폰 같은 것을 못 만드냐'고 물은 적이 있다"면서 "자신도 답답하다고 하더라. 당장 매출이 중요하니까 그냥 가격 내리고, 겉만 좀 바꿔서 다시 시장에 내놓고…"라고 전했다.
'아이폰'은 숨기고, '옴니아'는 내놓고 다니는 삼성 직원들지난 25일 오후에 만난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복귀에 대해서도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었다. 이 회장의 '삼성 위기론'에 대해, 이씨는 "입사한 지 10년째이지만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오너가 들어오면, 윗사람들이 좀 더 책임 있게 일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웃으면서, "이 회장이 그동안 그만뒀다고 했지만 내부에서 그걸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며 "이제 공식적으로 돌아왔으니, 아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과 동기라는 임아무개(39)씨는 삼성 금융계열사에서 일한다. 그 역시 휴대폰이 두 개였다. 삼성 옴니아와 아이폰. 임씨는 "옴니아가 처음에 나왔을 때 12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공짜폰이더라"면서 "아이폰 값은 작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라고 말했다. 임씨도 회사 안에선 아이폰을 내놓지 못한다고 했다.
임씨는 "위기라고 하는데, 위쪽에서 생각하는 것과 우리처럼 아래에서 생각하는 느낌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일부이긴 하지만, 삼성의 위기는 윗사람들이 만들어놓고 아랫사람들은 뒷수습만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어받았다. 그는 "전자 쪽 동료와 어제(24일) 우연히 통화를 했는데, 반도체 공장때문에 난리가 난 모양이더라"면서 "회장이 복귀 선언하는 날 공장에서 또 사고(정전)가 터졌으니, 아마 나중에 몇몇은 날아갈 것이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자 쪽이 위기이긴 위기인 모양"이라며 "반도체도 그렇고, 휴대폰 쪽도 그렇고, 가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전자 쪽) 아래 직원들은 주말도 반납하고 일만 죽어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체로 그동안 삼성에서 '창조와 혁신'을 주창해왔다고 하지만, 실제 내부의 의사소통은 패쇄적이고 여러 인맥을 통한 줄 세우기나 비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조직 문화 등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