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근(경남대 사학과 교수, 이하 유장근)
(이삼스님께) 어떤 연유로 왼손으로 대금 연주를 하시게 된 건 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삼스님
사고 후 대금을 가르치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하고 왼손으로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과거에 했던 걸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왼손으로 대금 연주한 지가 8년째인데, 오른손보다 10배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
유장근
그럼 8년 불면 스님처럼 불 수 있는지... (웃음)
이삼스님
10년은 불어야 기초가 닦여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 다른 악기도 다 10년은 해야 기초는 땠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지요. (웃음)
우리 음악은 자연이랑 똑같습니다. 산능선이 흐르는 것처럼 음의 흐름이 그렇습니다. 연결이 물 흐르듯 유유히 이어져야 해요. 우리 음악은 서양음악처럼 단계별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대금의 경우 많은 음을 높이고 낮추고 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하지만, 조금씩 음낮이를 조절하는 건 취법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숨이 가빠서 대금을 잘 불수가 없었어요.
단소도 초등학생들이 불고 하니까 쉽다고 생각하는데, 잘 불려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거문고도 중심인 단전에서 힘을 끌어 모아야 확실한 소리가 나요.
영송당 조순자(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가곡전수관장, 이하 영송당)
기를 담아야 하니까요. 기를 손끝으로 해서 내보내야 하지요. 머리 아파서 아무도 안하려고 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중요한 것은 근~이 있어야지요. 유장~하게 근~이 있어야. (일동 웃음)
유장근
영광입니다.
영송당
일부러 해외(제주도)에서 여기까지 구경 오신 송인길 선생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송인길
3.15의거기념 공연이 있다고 해서 오늘 꼭 구경해야 한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
유장근
제주도에서도 공연 하십니까?
송인길
공연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조선생님 모시고 공연 한번 해야지요. 발이 나으시면...(일동 웃음)
영송당
오늘 특별히 경남대 학생들이 늦게까지 자리를 함께 했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 주세요.
김명섭(경남대 사학과/ 대학생)
안녕하세요. 저는 사학과 동아시아지역사회연구회 회장 김명섭입니다. 공연을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 노래를 부를 때 'ㅐ'와 'ㅔ'를 ㅏ, ㅣ 와 ㅓ, ㅣ로 나누어 부르던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영송당
한글이 1443년에 창제되었을 때 'ㅔ'는 중모음이었습니다. 'ㅔ'가 단모음이 된 것은 조선시대 후반부터였습니다. 모든 존재했던 것들이 없어질 땐 어딘가에 흔적을 남깁니다. 하나요, 둘이요, 셋이요, 넷이요 하는 말을 하나요, 둘이요, 서이요, 너이요 라고 하는 것도 그 흔적이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현대에 와서 고치치 않은 이유가 있어요. 'ㅔ'를 길게 하면 그냥 얇은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장음을 할 때는 초출과 재출만으로 발음합니다. 초출인 'ㅗ, ㅏ, ㅜ, ㅓ, ㅡ, ㅣ'를 발음하고 초출과 'ㅣ'가 결합된 재출인 'ㅛ, ㅑ, ㅠ, ㅕ'는 중모음이지만 바로 발음하는 것이지요. 천(天), 지(地), 인(人)을 따서 만든 모음의 3요소 ․ , ㅡ, ㅣ로 만든 순수모음 'ㅗ, ㅏ, ㅜ, ㅓ, ㅡ, ㅣ'는 길게 발음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지만, 혀나 입술이 닿아서 생기는 닿소리는 오랜 시간 발음하면 귀에 거슬리고 그 음빛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곡은 순수모음 'ㅗ, ㅏ, ㅜ, ㅓ, ㅡ, ㅣ'로 발성하는 발음의 원칙이 있습니다.
가곡은 발음법, 발성법이 굉장히 정교한 성악곡
그래서 가곡은 세계인들이 한국어를 몰라도 다들 좋아해요. 순수모음은 부담감을 주지 않거든요. 가곡의 음역은 여자가 소프라노에서 메조소프라노 사이, 남자가 바리톤 정도인데 이게 전세계 사람들의 80%가 가지고 있는 음역이라고 합니다. 음성을 들을 때 부담감이 없어요. 세지 않고 부드러운 소리입니다. 계단식으로 가지 않고 유장~하게 근~이 있는 (일동 웃음) 목소리로 가기 때문입니다. 문화권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아름다움은 똑같이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오페라나 조수미 노래를 처음 들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누군가는 '태평가'를 부를 때 '태'를 '타-이'라고 부른다고 무슨 중국말이냐 하는데, 가곡은 발음법, 발성법이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 있어요. 노랫말도 그것에 맞게 당위성 있게 들어가 있습니다. 창자(唱者)가 풀어서 부르더라도 단어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고 해서 자음은 짧게 하고 모음은 길게 발음해서 가사 전달을 정확하게 합니다.
노랫말이 잘 전달되어야 성악곡이라 할 수 있지 노랫말이 전달되지 않으면 기악곡이에요. 자음은 분명하고, 모음은 부드럽게 발음하면서 우리말의 초성, 중성, 종성을 분명하게 해주면서 노랫말을 전달하는 겁니다. 오늘 관객으로도 오신 최천희 선생이 '논개'를 오페라로 만드는데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 하나같이 노랫말 전달이 안됐다는 거예요. 종성발음을 다 떼버려서 그런건데, 외국어에는 종성발음이 없으니까 외국에서 주로 유학한 사람들이 노래 부를 때 종성발음을 못하게 된 겁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쌀'을 '살'로 발음하는 걸 못 고치듯이 말이에요.
이해가 좀 되셨어요? 또 다른 질문은 없나요?
도경 이종록(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이하 도경)
회장이 했으니 이제 총무가 질문할 차례 아닌가요?
총무
...
도경
그럼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역사 공부는 왜 하게 되었지요?
총무
고등학교 때 그림공부를 하면서 한국 미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사학과를 가게 되었습니다.
도경
그럼 당신은 왜 시조를 부릅니까? 하고 질문이 나와야지요. (일동 웃음)
제가 예전에 방송국에서 취재 와서 한 질문에 얼버무린 대답이 하나 있는데, 그분들이 그게 명답이라고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한 질문이 왜 당신은 이런 케케묵은 단조로운 소리를 애들에게 가르치려 하냐는 것이었어요.
제가 그때 한 대답이 자, 두 친구 있다고 생각합시다. 한 사람은 잘 살아서 고급 아파트에 살고, 한 사람은 못살아서 오두막집에 산다고 쳐요. 그런데 후자인 친구가 잘 사는 친구 집 거실이 넓어서 좋다, 뭐가 좋다 이런 얘기만 하면 자기 정체성이 없어지는 거예요. 대신 자기 오두막집에 싸리문도 만들고 조롱박도 달고, 봉숭아도 심고 하면 잘사는 친구가 와서 싸리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조롱박으로 물도 떠먹어 보고 합니다.
우리 것에서 보람과 행복 느끼는 게 필요
우리는 서양에 뭐뭐 부럽고, 따라하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해버리면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요. 우리 것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게 필요하지요. 취재했던 분을 우연히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 그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고 얘기해요.
우리 지역에도 그렇지만 대단한 가수 와서 공연할라치면 1천만원 줬다, 5백만원 줬다 그럽니다. 예기 악기편에는 "예야자(禮也者)는 보야(報也), 악야자(樂也者)는 시야(施也)"라는 말이 나와요. 악은 베푸는 것이에요. 공연 가서 노래 부르는 저 사람 얼마짜리야 하는 그런 식은 안됩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2천년 전에 유대인들이 뿔뿌리 흩어질 때 자기 나라의 '흙'을 한 보자기 싸서 갔데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갈 때 다른 것 하나 안가지고 그 흙보자기 하나만 들고 갔답니다. 세계 유명한 사람의 30%가 유대인이래요. 이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에 살던지 반드시 하루 1시간씩 유대인 역사를 배웁니다. 매일 1시간씩 말입니다. 역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요즘 배우는 거 컴퓨터 치면 다 나와요. 그런데도 사회는 계속 안좋은 방향으로만 갑니다.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역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엄마 품 속처럼 편안한 우리 음악 해야
얼마 전 미혼모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보니 동사무소에 상담사를 둬야 된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게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어요. 한데 이건 근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저수지에 물이 새면 들어가는 쪽에서 막아야 하는데 나오는 쪽에서 막고 있는 격이에요. 뉴스에 보니 22살 먹은 여자가 칼로 아이를 찔렀다는 게 나와요.
머리는 발달했는데 가슴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따뜻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느냐?
이런 걸 해야 합니다. 우리 피, 우리 뼈에 각인돼 있는 걸 해야 합니다. 엄마 품 속이 얼마나 좋아요? 젖 안먹어도 편하잖아요? 이런 걸 안해서 그럽니다. 엄마 품속이 아니고 다른 아줌마 품에서는 과자를 주면 안기기는 해도 마음은 발버둥을 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마음을 다스려 주는 것, 따뜻하게 해주는 것을 해야 해요. 생각은 놀부, 마음은 흥부를 만든다는 말처럼 말로만은 안되요.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이런 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영송당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움직이게 하는 게 바로 음악입니다. 고운 소리를 듣고 하다보면 마음도 같이 고와짐을 느낄 수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다음번 공연에 남은 이야기들을 마저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여기서 마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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