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을 두려워 하는 까닭

밤마다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는 어머니, 병원을 가 보라 하는데 어째야 하나

등록 2010.04.05 19:50수정 2010.04.0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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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즈음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밤이 깊어지면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어머니가 마치 아들아, 너는 잠을 자면 안 된다, 하시는 것 같다. 꿈에서 아마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나 혹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시는 것 같은데 일단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 내막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 때 아무 데서나 병든 병아리처럼 자울거리게 된다.

 

            한밤중에 뭔가에 놀라서 일어나면 다시는 잠들 줄을 모르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어머니. 이것도 병일까? 의사에게 보이면 당연히 병이라고 하겠지만.......
한밤중에 뭔가에 놀라서 일어나면 다시는 잠들 줄을 모르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어머니. 이것도 병일까? 의사에게 보이면 당연히 병이라고 하겠지만....... 김수복
한밤중에 뭔가에 놀라서 일어나면 다시는 잠들 줄을 모르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어머니. 이것도 병일까? 의사에게 보이면 당연히 병이라고 하겠지만....... ⓒ 김수복

이런 얘기를 몇몇 아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답시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렇다. 병원을 가 봐, 병원을, 이 좋은 세상에서 병원을 왜 생각 못해? 글쎄, 병원을 가본들 뭐 뾰족한 수가 있을까. 수면제 종류 이상의 뭐 기발한 처방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병원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확실하게 정착을 한 것 같다. 밖에 나갔다가 만나는 사람 가운데 삼분의 일 정도는 병원을 가는 중이거나 다녀오는 중이거나 혹은 병문안을 가는 중이거나 다녀오는 중이라는 생각조차도 든다.

 

우편함을 채우고 있는 낯선 우편물은 태반이 병원에서 보낸 건강검진 안내문이다. 병원에서 나를 알고 내게 보낸 것은 아니다. 마을 이름만 바르게 적혀 있을 뿐이고 번지수도 없고 이름도 없다.

 

그냥 세대주 귀하라고 되어 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사람에게 보낸 병원의 이러한 친절(?)은 뭐랄까, 내가 너의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다 하는 뜻으로 읽혀지면서 나는 느끼지 않아도 될 심한 모욕감에 치를 떨게 된다.

  

우편물만 있는 게 아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물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병원이다. 몇 월 며칟날 어디에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료 건강검진이 있으니 나오시라는 내용이다.

 

이 또한 나를 알아서 베푸는 친절은 아니다. 몇 년생이냐고 묻고, 그에 답을 하면 금년에 대장암 검진 대상이라거니, 위암 검진 대상이라거니, 뭐라고 뭐라고 장황하게 일러준다. 귀찮아서 작년에 이미 했다고 하면 작년에는 대장암이었고 금년에는 위암이라고, 아침은 드시지 말고 꼭 나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텔레비전을 켜면 심심찮게 의사가 출연하는 토크쇼나 교양강좌 같은 것들이 비치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이러이러한 증세가 보이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가세요.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시청자의 귀에 쏙 들어와서 낙인처럼 뇌리에 박히는 단어는 '반드시'와 '위험'이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위기의식을 부지중 느끼게 된다. 병원을 죽도록 싫어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아예 협박을 하는구나, 협박을 해, 하는 냉소가 나도 모르게 흐른다.

 

'기다리는 병원에서 찾아가는 병원으로'라는 슬로건을 보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기는 나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그 순간뿐이다. 돌아서서 몇 발자국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흥, 그래봐야 너희들만의 밥그릇 전쟁일 뿐이지, 하는 냉소가 입가에서 번들거린다. 제약회사나 병원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주 지독한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고, 어서 빠져나오라고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받는 사람이 세대주 귀하로 되어 있는 이 우편물은 날짜로 보건대 아마 작년 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식의 뜯어보고 싶다는 최소한의 욕구조차 일어나지 않게 하는 우편물이 무시로 날아든다.
받는 사람이 세대주 귀하로 되어 있는 이 우편물은 날짜로 보건대 아마 작년 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식의 뜯어보고 싶다는 최소한의 욕구조차 일어나지 않게 하는 우편물이 무시로 날아든다. 김수복
받는 사람이 세대주 귀하로 되어 있는 이 우편물은 날짜로 보건대 아마 작년 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식의 뜯어보고 싶다는 최소한의 욕구조차 일어나지 않게 하는 우편물이 무시로 날아든다. ⓒ 김수복

벌써 팔 년이나 흘렀다. 그 무렵에 나는 충청북도 충주의 어느 산골짜기에 신축중인 청소년 수련원 공사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믿었던 집 주인이 나도 모르게 집을 팔아 버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붙은 꼴이었다. 때문에 어머니가 보름도 넘게 입원 중이었지만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마음뿐이고 모든 일을 아우들에게 떠맡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즈음 어머니는 어디에 무슨 일거리만 있다 하면 달려갔고, 병원 처방 약물에 대해서는 평상의 신뢰를 넘어 아예 맹신의 경지에까지 올라 있었다. 사흘이 멀다고 약통을 지고 다니며 제초제를 뿌리고, 살충제를 뿌려대니 몸이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들고 약국에서 지어주는 약을 먹고 나면 그제야 살겠다고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자식들이 나서서 제발 남의 일 좀 그만 다니라고, 제초제나 살충제는 독약인데 왜 그렇게도 독약을 좋아하느냐고 만류도 해보고 짜증도 내보고 해볼 만한 것 다 해봐야 어머니에게는 마이동풍이요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웃기지 마라, 네 놈들이 번듯하게 잘 살면 내가 이러겠느냐,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쓰러졌다. 의사는 위벽이 많이 헐었다고 했다. 술은 거의 입에도 안 대는 어머니의 위벽이 헐었다니. 따져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농약으로 망가진 몸을 다스린다고 병원 처방약을 그렇게도 많이 드셨으니 위벽인들 온전할 것인가. 어쨌든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나는 공사장으로 떠났다.

 

그런데 어느 하루 같이 일하는 사람의 핸드폰을 통해 아우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거였다. 우리도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마음에 준비를 하시라고, 의사가 그랬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서둘러 택시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아우들은 의사와 병원 당국에 항의를 했다. 큰 걱정 할 필요 없다고, 약물로 치료가 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이게 뭐냐고 격렬하게 항의를 하자 병원 당국에서는 보다 큰 병원을 추천하고 나섰다.

 

그래서 전주의 보다 큰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서는 전혀 다른 진단이 나왔다. 전문용어를 지금은 잊었지만, 심근경색과 유사한 어떤 것이었다. 요컨대 심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오진을 한 것이었다. 오진이 아니라 해도 위장만 보고 심장은 전혀 보지를 못한 것이었다.

 

어쨌든 보다 큰 병원에서는 그랬다. 시술을 하면 된다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의 몸을 수술도 아니고 시술, 그랬다. 마침 일본에서 그 방면으로 권위자가 내한 중이니 그 의사에게 맡긴다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혈관 하나가 거의 막혀 있기 때문에 이 혈관을 뚫고 다시 막히지 않도록 스탠드라는 이름의 뭔가를 그 안에 넣어둔다는 거였다. 말로만 듣기에는 지극히도 간단한 수술, 아니 시술이었다. 몸에 칼자국도 남기지 않고 배꼽 근처에 구멍을 뚫어서 한다고 했다.

 

시술이 끝나고 면회가 허용되었을 때, 한 사람만 들어오라 해서 장남의 자격으로 내가 혼자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어머니의 하체가 마치 이제 막 어디서 태어난 것처럼 완전 나체인 채로 홑이불에 살짝 가려져 있었다. 그것도 발에서 허벅지 부근까지만 가려져 있을 뿐이고 배꼽 근처는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링거가 꽂히지 않은 한 손을 자꾸만 내려 당신의 벌거벗은 아랫도리를 감추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내막도 모르고 들어선 나는 일단 어머니의 얼굴부터 보았고, 그리고 동공이 거의 풀려 있는 어머니의 눈과 마주치려 애를 쓰며 어때요, 괜찮아요, 이런 질문을 하다 말고 뭔가가 이상해서 눈길을 돌렸다가 그 꼴을 보고 말았다. 내가 한때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아내도 불이 켜진 상태에서는 내가 볼 수 없게 했던 그곳을, 아내도 아니고 어머니가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낸 채로 한사코 손을 내려 감추다가, 아니 감추려고 했다기보다 감추고자 하는 의지만을 겨우 드러낸 채로 헛손질을 하다가 아들에게 들켜버린 거였다.

 

어머니의 안위보다는 피가 온 몸에서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인 채로 나는 담당 의사를 노려보았지만, 의사는 "여기에 이렇게 구멍을 뚫어서" 어쩌고 설명을 해대느라 내 얼굴은 볼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 하도 기가 막혀서 숨도 못 쉬고 멍하니 서 있는 참인데 그는 제 할 일 다 했다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서고 있었다. 

 

돌아서서 출입문 쪽으로 향하는 의사의 뒤를 쫓아가서 뒤통수를 갈겨 버리고 싶었지만, 솟구친 분노가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눈에서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만일 이 사람에게 무례를 범한다면 이 사람은 나 모르게 어머니에게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없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어져 버리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다소곳하니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은 공손하게 앞으로 모은 자세로 그를 배웅했다. 오직 하나 아우들이며 조카들이 어머니의 그 장면을 볼 수 없었다는 것만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 뒤로 나는 가능한 한 병원은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나름 애를 써 왔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면 사람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한 번 가보라 한다. 내 생각에는 수면제 종류 이상의 무슨 신통한 처방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가 보라고 한다. 아 이것 참, 어떻게 해야 하나.

2010.04.05 19:50ⓒ 2010 OhmyNews
#치매 #병원 #의사 #불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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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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