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백령도 서남쪽 1마일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 침몰한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1200t급)의 실종자 수색이 기상 악화로 어려워진 가운데 1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장촌포구 해안가에서 특전사 대원들이이 고무보트를 옮기고 있다.
뉴시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청춘들이었다. 어쩌면 생의 가장 푸른 시절일지 모를 그 수년의 시간을 기꺼이 나라를 위해 바치겠노라며 달려간 그들이었다. 어두운 바다 속에 갇혀있는 동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나라가 온 힘을 다해 자신들에게 달려와 주리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런 믿음 하나로 그 두렵고 고통스런 시간을 버티지 않았을까.
만일 그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 나라가 당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자신이 없다. 사고 발생 지점으로부터 180m 떨어진 곳에 있던 당신들을 60시간이 지나서야, 그것도 민간 어선의 도움을 받아 발견했다는 사실을 차마 전해줄 자신이 없다. "초기 대응을 잘 했다"는 군 최고통수권자의 낯부끄러운 발언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이 나라에는 제대로 된 잠수 장비조차 없어 당신들과 같은 힘없는 젊은이들을 또 다시 위험한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결국 당신들을 진심으로 염려했던 한 명의 준위가 목숨을 잃고 9명의 민간인 선원들이 사망·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그리고 그 사이 번쩍이는 다이아몬드와 대나무잎과 별을 가슴에 달고 있는 그 무수한 장교들대부분은 전투화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는 사실도 차마 전할 수가 없다.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전투에서 적장의 목을 베려했던 이유는 그것이 곧 수천 수만 군사의 사기를 꺾어 적을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사기는 어쩌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보이지 않는 전투력'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을 대한민국 60만 장병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위기에 처한 군인에게 이 나라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 정도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안보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느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북한이 1200t급 초계함에 몇 명이 타는지,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다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군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이상 시간 끌지 말고 진실의 입을 열어라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맞다.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력이 지나친 기자들 때문도, 지나친 정보를 요구하는 국민들 때문도 아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책임 있는 모습도, 뭐 하나 속 시원한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의 한심한 행태 때문이다.
진정 국가 안보가 걱정된다면 지금이라도 유족들과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더 수습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진실을 꺼내 놓아야 한다. 아무리 군대라 해도 더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고 한주호 준위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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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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