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전혁 의원, 떳떳하면 명단 까라고?

[주장] 전교조 명단 공개가 반민주적인 까닭

등록 2010.04.21 13:18수정 2010.04.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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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꽤 영리하다. 그는 프레임을 장악하는 비법을 알고 있다.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자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비난을 감수한' 용감한 기사가 되고, 전교조는 반발하면 할수록 '떳떳하면 왜 명단 공개를 꺼리느냐?'하는 냉소에 대면한다. 참으로 영리하다. 야비할 정도로.

 

 조 의원에 대한 비판은 대개 그가 법원의 판결에 반했다는 '불법성'을 근거로 두고 있다. 타당한 근거이지만, 조 의원 본인이 '공익을 위해' 불법 논란을 돌파하겠다는데는 별 위협이 될 수 없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서로 다른 권력기관인만큼 견제가 불가피하지만, 그 입헌주의 원칙은 결국 공공선을 위한 것이다. 즉 공공선에 부합한다면 견제를 무시하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불법성 비판은 한편으론 조 의원을 흑기사로 띄워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내가 관심있는 것은, 과연 조 의원의 명단 공개가 민주주의와 공공선에 부합했느냐 하는 것이다. 실로 부합한다면, 나는 충분히 지지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조 의원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데는 크게 두 가지 근거가 작동하고 있다. 첫째, 교육 소비자인 학부모의 알 권리다. 학부모는 자기 아이의 담당 교사가 어떤 단체 소속인지 알 권리가 있다. 둘째, 단체 가입 여부는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권과 무관한 정보이므로 충분히 밝힐 수 있다. 만약 이를 반대한다면 전교조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일단 첫번째 근거가 함축하는 의미를 파악하자. 조 의원이 소비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은, 교육 현장은 교육 공급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시장'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교육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데 소비자는 공급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한 주체인 교사는 물론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다. 하지만 교육의 다른 주체인 학부모 및 학생은 교사와 상품 거래 관계로 맺어져 있지 않다. 교사-학생-학부모는 자율성에 바탕하여 인격적 관계를 맺고 교육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한다. 교육의 책임은 교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분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 의원은 교육을 마치 백화점에서 물건 고르는 것처럼 전제하여 그 의미를 타락시키고 있으니, 참된 보수주의자라면 전교조를 향해 든 돌을 조 의원에게 먼저 던져야 마땅하다.  

 

 백보를 양보해서 교육 현장이 시장이고 학부모가 교육 소비자라고 하자. 여전히 문제가 생긴다. 소비자의 알 권리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알려주어야 할 정보는 거래되는 상품 자체에 국한되어야 한다. 즉 교육의 질이 좋은가 나쁜가, 오직 그것 뿐이다. 그 이상은 소비자가 알 필요도 없고 공급자가 알려줄 의무도 없다. 수업 시간에 제공되는 교육 외에 교사가 어떤 단체에 가입하든,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갖든, 혹은 어떤 성적 취향이나 오타쿠 기호를 갖든 그건 교사의 자유다. 학부모가 무슨 권리로 그 정보를 알려고 하는가? 

 

 이건 중요한 지점이다. 자유시장 경제는 정보가 대칭적이라는 신뢰 위에 유지된다. 가게 주인이 단골 손님의 성적 취향 같은 걸 사사로이 캐어다가 물건 팔아먹는데 악용한다든가, 고객이  점원의 초등학교 성적표 같은 걸 알아내어 값을 깎아주지 않으면 이걸 폭로하겠다고 들면 경제가 건전하게 돌아갈 수 없다. 국회의원이 일방적으로 한 편에 서서 그들이 알 권리가 없는 정보를 건네준다면 그건 자유로운 시장 거래를 침범한 것이다. 극히 해로운 불공정 거래를 입법자 스스로 주도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또 하나 지적하자. 왜 학부모만 소비자인가? 교육의 주체에는 당연히 학생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자기 담임이 전교조인지 아닌지 알려달라는 의사를 조 의원에게 표명한 바가 있나? 조 의원은 그 의사를 전면적으로든 제한적으로든 조사한 적이 있나? 이 지점에서 조 의원의 소비자 만족론은 사실상 명분을 잃는다. 그는 정작 중요한 주체인 학생의 의사엔 관심이 없다. 그가 향하는 대상은 극히 일부의 소비자, 즉 학부모 가운데 일부 보수적 유권자들일 뿐이다. 그의 행동 동기는 공공선이 아니라 정략적 이해로 보인다.  

 

 그의 두번째 근거에 대한 비판이 어쩌면 더 중요할 것 같다. "떳떳하면 명단 까!"라는 요구는 얼핏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반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요구다. 어떤 정보가 그 자체로 불미스러운 것이 아니더라도, 강요된 맥락에서 공중 앞에 드러났을 때에는 시선의 불균형과 낙인찍기로 인해 누군가에게 차별이 될 수 있다.

 

 나치는 유대인들의 가슴에 별을 붙이게 했다. 이를 두고, "별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상징 아냐? 자기 종교에 떳떳하다면 못 붙일 이유가 뭐야?"라고 할 수 있을까? 개신교도 카톨릭도 아니고 오로지 유대인들만 공중의 시선 앞으로 끌어내 구별 짓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차별이다. 더 쉬운 예로, 혈액형이 O형인 사람만 O형이라는 표지를 붙이고 다니는 법이 있다고 하자. O형은 갑자기 전체에서 구별된 무리가 되어 버린다. 누가 침 한 번 잘못 뱉어도 "O형은 다 저렇군"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개인의 정체성은 빼앗기고 집단의 낙인이 갑자기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짓기는 개인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다른 구성원들과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유린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 의사에서 비롯되지 않은 정체성 드러내기와 그로 인한 구별짓기는 결코 용인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전교조가 사회적으로 감시해야 할 범죄 집단이 아닌 한, 명단 공개를 강요하는 것은 이처럼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 떳떳하면 떳떳할수록 명단을 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 의원의 전교조 명단 공개는 결국 자신의 정략적 이해를 좇아 공공선과 민주주의에 도끼질을 해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전교조는 성난 황소처럼 싸울 수밖에 없다.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interojh에 쓴 글입니다

2010.04.21 13:18ⓒ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interojh에 쓴 글입니다
#조전혁 #전교조명단공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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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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