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문학의숲
지난 3월 11일 법정 스님이 입적한 이후부터 서점가는 스님의 책들이 더욱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다. 스님 유언에 따른 절판을 앞두고 스님이 남긴 자취를 찾아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법정 스님이 저술한 책들은 대부분 읽었던 터라 몇 주전 가장 최근에 나온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 편집부 엮음)을 서점에서 구입해 읽었다. 4년 전 책의 날에 법정 스님으로부터 직접 새겨들은 좋은 책에 대한 가르침과 스님의 독서 세계를 기억하고 있던 터라 더욱 이 책에 애정이 갔다.
'책 속의 책'으로 엮어진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은 스님이 생전 산골 오두막에서 벗으로 삼아 가까이 하고 법회나 저서를 통해 소개했던 책들이라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4년 전 책의 날 강연회에서 스님은 산골 오두막 생활의 활력소로 '마실 차'와 '들을 음악', '읽을 책'을 손꼽았던 기억이다.
이 책에 소개된 총 50권의 책은 평소 법정 스님이 정독해온 좋은 책에 대한 안목과 가치에 기준해 선정한 책들이다. 법정 스님이 법회 설법 중에 참고로 언급한 책, 스님의 많은 저서 속에 소개된 책,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회지의 산방한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추천한 책 등 300여 권 가운데 추려서 소개한 책이니 더욱 그 진가가 높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들은 주로 영성적 각성, 자연에 대한 예찬, 생태환경의 순환법칙, 현대문명이 파괴한 자연생태계 혹은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인간성 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인간 의지, 자연스럽고도 소박한 삶, 독서와 여행, 걷기예찬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은 '땅에 뿌리박은' 생태적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는 자연에 의지해 더불어 살고있던 미대륙 인디언, 티베트 라다크인, 호주 원주민 부족인 오스틀로이드인들의 시각을 통해 도시문명에 대한 의문과 폐해를 경고한다.
<닥터 노먼 베쑨>, <비노바 바베>, <암베드카르>, <이레이그루크>, <아베 피에르 신부>, <엠마뉘엘 수녀>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전쟁과 불평등한 사회 제도로 인해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해진 사람들을 치유하고 보호한 사람들이다. 깊은 영성과 인간애를 바탕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 위인들의 이야기가 감명깊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달라이라마, 빅터 챈 <용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니코스 카잔차카스 <그리스인 조르바> 등은 환경을 초월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영성적 각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있다.
피터 톰킨스, 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보았나요>, 레이첼 카슨 <침묵의 숲>,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꽃 백가지>,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은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할 자연생태계의 소중함과 이를 보호하고 보존해야할 의무를 각성하게 한다.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개릿 하딧 <공유지의 비극>,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인간소외 현상이 심화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시한다.
이렇듯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된 '책 속의 책'들은 어느 하나 빼놓기 힘든 꼭 읽어보아야 할 이 시대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비록 제한된 지면상 50권이 '요점정리'식으로 짧게 소개되었지만, 책들이 다룬 주제와 내용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지면에 50권을 소개해야하는 지면 제약상 각 책에 대한 넓고 깊이있는 접근은 애초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접할 수 없었거나 무관심했던 양서(良書)들을 발견하는 기쁨은 적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우리 시대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받았던 법정 스님이 추천한 책들이니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무소유> 등 저술 외에 이 시대에 남겨놓은 법정 스님의 또 다른 정신적 유산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유산을 찾아가는 지침서로서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은 후 책 목록 50권 중에서 적지 않은 책이 올해까지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은 각 책 소개가 끝나는 지면에 저자나 주요 인물에 대한 약력과 그 책에 대한 출판정보 등을 자세하게 달았다. 저자나 주요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해당 책을 별도로 구입하려는 독자들은 참고할 만하다.
우리에게 '말빚'이 아닌 '책읽기 숙제'를 남긴 법정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