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으로 장기간 결방 중인 <무한도전>.
MBC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때때로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멍하게 바라볼 때도 있고, 입맛이 없어 밥을 먹어도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주변에선 "봄 타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생전 그런 거 모르고 살아오다 이제 와서 무슨…, 그것도 아닌 듯하다. 대체 뭘까? 이렇게 맥이 축축 늘어지는 이유가.
한참을 생각해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지!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무릎을 철썩 때렸다. 책상 위의 달력을 쥐어 들고 날짜를 따져봤다. 하나, 둘, 셋…, 그랬다. 벌써 MBC <무한도전>을 못 본 지 3주나 된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1시간 10여 분 남짓 하는 시간동안 낄낄거리며 정신 못 차리게 웃다 보면 어느새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리곤 했다. 그렇게 내 삶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주던 <무한도전>이 천안함 사태와 MBC 언론노조 파업으로 벌써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방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KBS <해피선데이>나 SBS <강심장> 같은 타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천안함 사태의 추이에 따라 결방되기도 했다가 방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MBC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천안함 사태와는 관계없이 지난 5일 노조의 총파업 이후부터 대부분 결방됐고, 예능 프로의 방영 시간에는 스페셜 프로그램들이 대체 편성됐다.
MBC 언론노조는 왜 파업을 선택했을까?노조는 왜 파업을 했고, 어째서 파업은 장기화됐을까? 문제의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MBC의 정치적 독립'이란 답이 나온다. 노조와 김재철 사장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두 가지 문제,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에 대한 고발과 황희만 부사장 임명 건의 철회는 결국 MBC가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공영방송으로써의 독립성을 갖추는 데 꼭 필요한 조건들이다.
현 정권의 방송 장악을 위한 행보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정연주 사장이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낙마하고 이병순->김인규 사장 체제로 들어선 KBS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KBS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같은 진보적 성향의 시사 프로그램들이 연달아 폐지되고, 윤도현, 김제동 같은 정권에 호의적이지 않은 연예인 MC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프로그램에서 쫓겨나야 했다.
MBC에서는 또 어떠했나. 클로징 멘트로 전 국민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줬던 신경민 앵커가 <뉴스데스크>에서 돌연 하차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에 수년 간 꼽혀온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이 7년 동안 진행해왔던 시사 프로 <100분 토론>의 진행자 자리를 떠나야 했다. 당시 MBC에서는 그의 고액의 출연료가 부담되어 하차를 결정했다는, 실로 궁색한 하차사유를 내놓았다.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에 의해 엄기영 사장이 내몰리듯 사퇴하고 고대 출신의 친 MB계 인사인 김재철 청주 MBC 사장이 신임 MBC 사장으로 선출됐을 때, 노조는 이에 불복하고 그의 출근저지 투쟁에 나섰다. 그랬던 노조의 투쟁이 3일 만에 철회됐던 건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었던 윤혁 TV제작본부장과 황희만 보도본부장의 임명 건에 대해 김재철 사장이 노조의 의견을 수용해 두 사람의 보직을 특임이사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불씨 되살린 김우룡 전 이사의 '큰 집 조인트'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