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교훈을 새긴 중대 본관 입구에 학생들이 모였다. "야, 멋있게 깎아야 된다~, 얼굴 펴, 퍼포먼스잖아~" 선배의 너스레에 후배는 애써 웃는다. 그래도 결국 선배의 머리칼이 잘려나가는데 눈이 벌개진다.
어제(4월 30일)는 노영수군 및 중대생 2명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날이었다. 학교는 이들에게 2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별도로 징계도 내린다 한다. '학교의 이미지를 훼손했기 때문'이란다. 노군은 "손해배상 청구하겠다는 학생처계장의 말을 듣고, 황당했죠. (다른 학생들이 함께 삭발을 한 데 대해)저에 대한 정보다는 현재 상황의 부당함이 학생들을 추동한 거 같아요. 오히려 재단, 학교측이 대범하게 나왔으면 학교 이미지가 더 좋아졌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돈을 내라면 내야죠. 단 금전에 급급하지 않을 거예요. 학생들, 시민들 만나 모금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두산과 중대의 이런 모습을 사회에 고발하는 과정으로 만들 거예요"라고 했다.
징계대상 학생들과 함께, 총학생회장 및 학생 몇몇이 함께 삭발을 했다. 노군이 이들의 머리를 직접 밀었다. 바리깡이 자꾸만 엇나가는 건 서투름보다는 쓰라림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친구는 그저 "아휴~ 이거 미용실 가야겠다"고 웃기만 한다. 묵묵하던 그는 결국 마이크를 잡자 눈물을 터뜨렸다. "어쩌면 이게 '중대생'으로서 하는 마지막 시위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학교에서 쫓겨나더라도, 그래도 싸우겠습니다."
두산그룹이 재단으로 들어온 후, 중대는 급격한 구조조정 과정을 겪고 있다. '수익성 없는' 학과의 통폐합, 이과 중심의 캠퍼스 확장 계획, 교수, 교직원에 대한 성과급제 관리. 이는 삼성이 인수한 성균관대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기업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노조를 말살하는 '노무관리'의 손은 학생들에게도 뻗어왔다. 총학생회 주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불허했고, 학교 교지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자본은 천천히 구성원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구성원의 의견수렴 없는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는 학생들은 결국 한강대교 위에 올라가 2시간 여 동안 고공시위를 했다.
고공시위를 한 표석 학생은 이날 글을 통해 "그 방법이 최선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두산재단이 들어와 학교가 나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강대교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경쟁력 있는 단위들이 '효율'이라 포장되어 통폐합되는 과정은 분명 수정돼야 한다. 대의라는 명목 하에 정당성 없이 피해받게 될 학생들이 있다. 학교측은 뚜렷한 확답 없이 그저 따라오라고만 한다. 우리 학과 없어진다고 우는 학생들, 반수 고민하는 새내기들 앞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약속한 내게 방법은 많지 않았다"고 시위의 이유를 밝혔다.
함께 삭발을 한 06학번 학생은 "나는 중대생들의 고공시위소식에 놀라고, 화가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내 구성원들이 얼마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런 방법까지 해야 했나 싶었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독단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학교 측이다. 더구나 이런 목소리를 외면하고 상식 이하의 징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했다.
삭발식 뒤 학생들은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중앙대의 교훈인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글을 쓰는 퍼포먼스를 했고, 글이 쓰인 종이와 함께 자른 머리카락을 총장실에 전달했다. 출타중인 총장 대신 김남원 학생처계장이 나왔다. "학생들은 돈이 없으니 일단 머리칼이라도 잘라왔다"는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김 계장은 태연하게 머리칼을 받았다. '의'와 '참'은, 적어도 여기엔 없었다.
2010.05.01 14:31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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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죽고 '참'도 죽은...여기는 학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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