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듯한 내 허벅지... 30분도 안됐는데

[자전거주말여행 14] 잠실대교에서 미사리 너머 팔당댐까지

등록 2010.05.15 15:41수정 2010.05.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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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대교 가는 길. 시원하게 뻗은 길
올림픽대교 가는 길. 시원하게 뻗은 길성낙선
올림픽대교 가는 길. 시원하게 뻗은 길 ⓒ 성낙선

열일곱 살 때, 내 생애 처음으로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떠났다. 일요일 아침, 집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화도.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시절이라, 여행에 앞서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집(공항동)에서 강화도까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도로는 괜찮은지, 가다가 밥은 어떻게 먹을 건지, 펑크라도 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건지, 뭐 하나 제대로 확인하고 점검한 게 없었다. 사실 그날로 강화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그냥 떠났다. 가다 못 가면 그냥 되돌아오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책 없이 떠난 여행이라 처음부터 정신 없이 페달을 밟았다. 옛날 자전거는 두 손으로 들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요즘처럼 기어 변속기라는 게 달려서 기계의 물리적인 힘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도 아니고, 오로지 다리 힘 하나로 굴러가는 자전거였다.

 

집을 나선 지 30분도 안 돼 허벅지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너무 팽팽한 나머지 청바지가 쫄바지처럼 허벅지를 조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리가 모래주머니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그런데도 나는 페달을 멈추지 못했다.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들과 나란히 달리는 속도에 도취해 좀처럼 질주를 멈출 수가 없었다.

 

자동차가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도로에서 밀려 논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겁먹지 않았다. 그러다 천등고개를 넘고 김포읍을 지났을 무렵, 어쩐 일인지 자전거 앞바퀴가 서서히 주저앉았다. 펑크였다. 강화도까지는 거의 절반을 달려온 지점이었다. 그날의 질주 본능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가 없었다.

 

 고덕천교. 서서히 질주본능이 되살아난다.
고덕천교. 서서히 질주본능이 되살아난다.성낙선
고덕천교. 서서히 질주본능이 되살아난다. ⓒ 성낙선

 

미사리, 질주본능을 억제하기 힘든 길

 

그때만 해도 언제 또 다시 그런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도로 위에서 맛본 쾌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이 마흔이 넘어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그때의 질주 본능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 본능이 여전히 내 몸 안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일곱 살 때 그랬던 것처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다시 맛본다 해도 억제하기 힘든 본능이다.

 

그렇게, 내 나이 열일곱 살에 그랬던 것처럼 미친 듯이 자전거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 위에서, 그때 그 철없는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듯이 하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단지 욕먹고 마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차례 크게 사고치고 나서 병원에 드러눕기 딱 좋다. 물론 지금은, 그 나이 때 하던 식으로 그대로 할 수도 없는 물렁물렁한 나이가 돼 버렸지만.

 

이제는 아무리 자전거를 타도, 허벅지가 더 이상 단단해지지 않고 늘 그 모양 그대로이다. 힘을 쓰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항상 조심조심, 끓어오르는 본능을 억제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로 위를 숨 가쁘게 달려보고 싶은 욕망마저 잠재울 수는 없다. 그때마다 나는 한강으로 나간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내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살고 있다.

 

한강이라고 모두 같은 한강이 아니다. 어디로든 한 번 끝까지 달려가 보고 싶을 땐 미사리 가는 길을 찾아가는 게 좋다. 이 길은 길고 곧게 뻗은 자전거도로가 일품이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한마디로 질주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길은 자전거도로만 일품인 게 아니다. 자전거도로에서 바라다보는 풍경 또한 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한강 본래의 아름다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길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마저 풍경 속으로 녹아든다. 길은 질주 본능을 되살리고, 풍경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운다.

 

 구리암사대교 공사 현장 부근. 제법 길고 높은 언덕이 나타난다.
구리암사대교 공사 현장 부근. 제법 길고 높은 언덕이 나타난다.성낙선
구리암사대교 공사 현장 부근. 제법 길고 높은 언덕이 나타난다. ⓒ 성낙선

 언덕을 넘어가는 길. 중간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언덕을 넘어가는 길. 중간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성낙선
언덕을 넘어가는 길. 중간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 성낙선

 

생태공원에서 발견하는 한강 고유의 생명력

 

여행은 잠실대교 밑에서 시작한다. 전철 2호선 잠실역에서 내려 잠실대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다리 위 남단에 자전거도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한강전망대가 있는 곳(역 쪽에서 보면 다리 오른쪽)에는 엘리베이터가, 반대쪽에는 경사로가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고 바로 질주 본능을 일깨워서는 안 된다. 잠실대교 부근에서는 가능하면 속도를 높이지 않는 게 좋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한강으로 놀러 나온 시민들이 많아 조심해서 달려야 한다. 질주 본능은 좀 더 한적하고 넓은 길이 나왔을 때 되살려도 늦지 않다. 당분간은 질주 본능을 억누르고, 길가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쉬어가는 게 좋다.

 

가는 길 중간에 생태공원이 여러 군데 나온다. 서울 쪽에만 암사생태공원과 고덕수변생태공원이 있고, 하남시에 세 군데가 더 있다. '생태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이곳 역시 과거 한강 개발 과정에서 기존 생태계가 상당 부분 훼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곳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서서히 한강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아가고 있다. 개발이 멈춘 곳에 다시 생명이 움트고 있는 셈이다.

 

이곳 생태공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발이 멈추는 순간 한강의 생태 역시 서서히 되살아날 게 분명하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라니. 그 바람에 이제 이곳에서 겨우 되살아나고 있는 생태계마저 다시 허물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강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명력을 무시한 채 그 강을 살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암사생태공원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암사생태공원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성낙선
암사생태공원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 성낙선

 고덕수변생태공원. 한강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덕수변생태공원. 한강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성낙선
고덕수변생태공원. 한강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 성낙선

 
나이, 체력의 한계를 잊게 만드는 한강의 힘

 

고덕수변생태공원을 지나 하남시 쪽으로 들어서면, 곧게 뻗은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자연히 질주 본능이 되살아난다. 마침 바람이 슬쩍 뒤에서 밀어주기까지 한다. 되돌아올 때 좀 고생스럽긴 하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속도를 느낄 때다. 별 생각 없이, 페달을 밟는 데 집중한다. 서서히 몸이 더워진다. 땀이 흐른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묵직해진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이 느낌이다. 내 나이 열일곱 살 질주본능에 사로잡혀 무섭게 도로 위를 내달리던 때 느꼈던 그 쾌감. 지금 내 나이 결코 다시 열일곱 살로 되돌아갈 수 없다. 내 나이 이제 두 번 다시 열일곱 살의 본능에 충실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때, 내 나이 열일곱 살 때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순간 내가 순전히 '한강'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에는 나이를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가진 체력의 한계를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처럼 한강은 언제든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곳이다. 내 나이에 한강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확실히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하남시 덕풍천. 하천 '개발' 공사가 진행중이다.
하남시 덕풍천. 하천 '개발' 공사가 진행중이다.성낙선
하남시 덕풍천. 하천 '개발' 공사가 진행중이다. ⓒ 성낙선

미사리를 지나 덕풍천을 건너면, 팔당대교를 지나 팔당댐까지 가는 길이다. 한강 둔치의 자전거도로는 팔당대교 아래에서 끝난다. 거기에서 양평이나 양수리로 가려면 팔당대교를 넘어야 한다. 팔당댐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맞바람이 분다. 그런데도 이날은 이상하리만치 힘이 들지 않는다. 잠실대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의 주행 거리가 52km.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긴 거리, 장시간 주행에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게 자전거여행이다. 만약에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 다녀왔다면, 파김치처럼 축 늘어졌을 게다. 그러나 자전거여행은 다음 날 아침 출근길도 거뜬하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여행에는 무언가 '원기'를 회복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날 역시 삶의 기운이 충만한 하루였다. 자전거를 탈 때만큼은, 나는 여전히 열일곱 살이다.

 

 팔당대교 아래에서 끝나는 자전거도로. 다리 밑을 지나 오른쪽 샛길을 오르면 팔당댐까지 가는 길이 나온다.
팔당대교 아래에서 끝나는 자전거도로. 다리 밑을 지나 오른쪽 샛길을 오르면 팔당댐까지 가는 길이 나온다.성낙선
팔당대교 아래에서 끝나는 자전거도로. 다리 밑을 지나 오른쪽 샛길을 오르면 팔당댐까지 가는 길이 나온다. ⓒ 성낙선

 멀리 팔당댐이 보인다. 자전거도로는 거기가 끝이다.
멀리 팔당댐이 보인다. 자전거도로는 거기가 끝이다.성낙선
멀리 팔당댐이 보인다. 자전거도로는 거기가 끝이다. ⓒ 성낙선

최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전거 사고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분리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여전히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전거도로 위를 걸어다니는 보행자들의 습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자전거가 뒤에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자전거가 진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많다.

 

모든 걸 보행자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자전거 속도부터 줄여야 한다. 아무리 속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도, 앞서 사람이 걸어갈 때는 반드시 속도를 늦춰야 한다. 속도를 줄이면, 자전거끼리 부딪히는 사고도 함께 예방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자전거도로에도 속도 제한 표지판이 세워졌다. 자동차도로도 아닌 곳에 속도 제한 표지판이 세워진 의미를 잘 되새겨야 한다.

 

 팔당대교 부근. 한강을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까?
팔당대교 부근. 한강을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까?성낙선
팔당대교 부근. 한강을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까? ⓒ 성낙선
 하남시 자전거도로 안내도. 붉은 선이 자전거도로. 1) 강동대교 2) 미사리조정경기장 3) 팔당대교
하남시 자전거도로 안내도. 붉은 선이 자전거도로. 1) 강동대교 2) 미사리조정경기장 3) 팔당대교성낙선
하남시 자전거도로 안내도. 붉은 선이 자전거도로. 1) 강동대교 2) 미사리조정경기장 3) 팔당대교 ⓒ 성낙선

#미사리 #팔당대교 #팔당댐 #암사생태공원 #고덕수변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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