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에 가시를 펼치고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적어도 '미친 존재'였다. 사진은 영화 <신데렐라> 중 한 장면.
미니필름
며칠을 망설이다가 마침 정신과 전문의가 회진 오시는 날에 근처 정신보건센터로 미현이와 함께 찾아갔다. 그러나 예상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는 의사 선생님께 "내가 죽더라도 선생님 이름은 유서에 남기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라"며 상담실에서 뛰쳐나오더니 화장실로 달려 나가버린 것.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가 붙잡을 틈도 없었다. 보건센터 상담 선생님이 상담 중에 마시라고 준 주스 병을 들고 가, "당장 죽겠다"며 화장실 벽에 대고 깨뜨렸다. 화장실 문을 얼마나 두드려댔는지 모르겠다. 한참 실랑이 끝에 문을 연 아이는,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겨우 달래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아이를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우물거리다가 입을 뗐다.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찾아갔다.
밝은 전등 빛 아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그레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미현이. 어느 만화책 제목을 대더니, 대뜸 아느냐고 물어본다. 모르겠다는 내게, "거기에 미친 선생님이 나와요. 친절하고 상냥해서 미친 선생님이라고 불러요"라고 말했다.
온 몸에 가시를 펼치고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적어도 '미친 존재'였다. 자라는 동안 버릇없다고 혼내고, 악독한 말을 함부로 한다며 저주를 퍼붓는 어른이 너무 많았다는 아이에게, 그나마 '미친 선생님'들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버지 같아서 너무 좋다는 수학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아이의 눈은 빛났다. 자신을 다독여주던 선생님들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결국 학교 밖 다른 길을 찾아 떠난 미현이. 잘 지내고 있노라며, 이제 걱정 마시라며 학교를 다시 찾아왔을 때 아이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분명 그늘과 아픔이 더 짙어졌을 텐데, 전혀 내색이 없었다. 아이는 더 깊은 우물이 돼 돌아왔다.
여전히 혼자 울고 있을 숱한 미현이들에게<바다의 기별>에서 김훈은 소방수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인기척에 대하여, 그 아름다움을 일깨워줬다. 불 사위를 가르고 고립된 인간을 향하여, 숭고한 일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인기척. 구원은 결국 단절을 끊어내고, 잇고 이어내는 그 힘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했다.
스승의 날, 여전히 혼자 울고 있을 숱한 미현이들에게, 어떤 인기척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미현이에게, 그리고 미현이들에게, 부끄러워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혼자서 시인의 독백을 웅얼거려본다.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바람이 나와 함께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다시, 인간의 인기척을 위하여 미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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