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친 선생님'이었다

[기획-스승과 제자③] 잊지 못할 제자, 이 땅의 숱한 미현이들에게

등록 2010.05.15 11:30수정 2010.05.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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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고 고백했다. 엉뚱하게도 시를 읽을 때마다, 누구에게든 깊은 우물이 되는 방법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현(가명)이가 깊은 우물이 되는 과정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나에게도 아픔이었던 까닭. 광풍처럼 몰아치는 시련과 좌절이 분명 더 깊고 풍성한 생으로 견인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너무 메말라 바스라지기라도 할까 염려되는 마음은 생각만큼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자해한 미현이, 상처는 깊지 않았다...다친 마음에 비하면

 미현이는 자라는 과정에서 존중되지 못하고, 오히려 줄곧 어른들에게 악담만 들어온 터라 마음은 안온하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사진은 영화 <신데렐라> 가운데 한 장면.
미현이는 자라는 과정에서 존중되지 못하고, 오히려 줄곧 어른들에게 악담만 들어온 터라 마음은 안온하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사진은 영화 <신데렐라> 가운데 한 장면. 미니필름

미현이를 처음 마주한 것은 2007년인가, 내가 일하는 학교 보건실에서였다. 상처가 났는데, 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툼한 시계 줄로 감싸고 있는 상처라는 게 미심쩍어, 마침 아이들이 없길래 상처를 먼저 보여 달라고 했다. 내 예측이 빗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상처는 자해로 생긴 것이었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미현이는 뜻하지 않게 보건실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아이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매번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가 얼마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미현이에게는 더욱 그리운 분으로 남았다. 어머니는 미현이의 자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는 좀처럼 아이들과 시간을 가질 틈이 없으셨다.

중학교 때까지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던 아이는 지역에서 뛰어난 아이들이 선발된다는 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실패했다. 학생회장에 출마하고 싶어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결국 포기했다. 미현이는 아리스톨텔레스의 시학을 재미있게 읽을 정도로 지적으로 뛰어났는데, 당시 우리 학교 아이들 수준으로는 미현이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형편이 안 됐다.


그러니 피상적인 대화만 오갈 뿐 마음의 갈증을 달랠 길이 없었다. 게다가 대게 영민한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신랄하고 비판적인 특성이, 자라는 과정에서 존중되지 못하고, 오히려 줄곧 어른들에게 악담만 들어온 터라 마음은 안온하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 미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돌파구는 어쩌면 자해였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고 울고 소리쳐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마지막 절규. 미현이는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자해를 시도했다.


야간 자기 주도 학습 시간에 아이들 몰래 자해를 시도하다가 감독 선생님께 발각되기도 했고, 보건실 파티션 뒤에서 손목에 자해를 시도하다가, 수업 마치고 들어오는 내가 직접 발견하기도 했다. 아이는 그 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친절하고 상냥해서 '미친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온 몸에 가시를 펼치고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적어도 '미친 존재'였다. 사진은 영화 <신데렐라> 중 한 장면.
온 몸에 가시를 펼치고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적어도 '미친 존재'였다. 사진은 영화 <신데렐라> 중 한 장면. 미니필름

며칠을 망설이다가 마침 정신과 전문의가 회진 오시는 날에 근처 정신보건센터로 미현이와 함께 찾아갔다. 그러나 예상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는 의사 선생님께 "내가 죽더라도 선생님 이름은 유서에 남기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라"며 상담실에서 뛰쳐나오더니 화장실로 달려 나가버린 것.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가 붙잡을 틈도 없었다. 보건센터 상담 선생님이 상담 중에 마시라고 준 주스 병을 들고 가, "당장 죽겠다"며 화장실 벽에 대고 깨뜨렸다. 화장실 문을 얼마나 두드려댔는지 모르겠다. 한참 실랑이 끝에 문을 연 아이는,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겨우 달래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아이를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우물거리다가 입을 뗐다.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찾아갔다.

밝은 전등 빛 아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그레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미현이. 어느 만화책 제목을 대더니, 대뜸 아느냐고 물어본다. 모르겠다는 내게, "거기에 미친 선생님이 나와요. 친절하고 상냥해서 미친 선생님이라고 불러요"라고 말했다.

온 몸에 가시를 펼치고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적어도 '미친 존재'였다. 자라는 동안 버릇없다고 혼내고, 악독한 말을 함부로 한다며 저주를 퍼붓는 어른이 너무 많았다는 아이에게, 그나마 '미친 선생님'들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버지 같아서 너무 좋다는 수학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아이의 눈은 빛났다. 자신을 다독여주던 선생님들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결국 학교 밖 다른 길을 찾아 떠난 미현이. 잘 지내고 있노라며, 이제 걱정 마시라며 학교를 다시 찾아왔을 때 아이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분명 그늘과 아픔이 더 짙어졌을 텐데, 전혀 내색이 없었다. 아이는 더 깊은 우물이 돼 돌아왔다.

여전히 혼자 울고 있을 숱한 미현이들에게

<바다의 기별>에서 김훈은 소방수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인기척에 대하여, 그 아름다움을 일깨워줬다. 불 사위를 가르고 고립된 인간을 향하여, 숭고한 일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인기척. 구원은 결국 단절을 끊어내고, 잇고 이어내는 그 힘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했다.

스승의 날, 여전히 혼자 울고 있을 숱한 미현이들에게, 어떤 인기척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미현이에게, 그리고 미현이들에게, 부끄러워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혼자서 시인의 독백을 웅얼거려본다.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바람이 나와 함께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다시, 인간의 인기척을 위하여 미칠 때다.
#보건교사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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