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감사하고 또 미안합니다"

[인터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광양중앙교회 엄인영목사

등록 2010.05.25 15:17수정 2010.05.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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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목사의 힘 있고도 떨리는 음성에 성도들은 숨소리조차 죽인다. 지난 23일, 전남 광양읍 한 교회의 오전 예배. 이날 예배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5백여 명의 교인들이 참석, 그의 타협하지 않는 설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지난해 노무현대통령 서거 직후 열린 예배에서 '눈물로 보내드리며'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네티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광양중앙교회(예장통합)의 엄인영목사(53).

a 엄인영목사 광양중앙교회

엄인영목사 광양중앙교회 ⓒ 엄인영

엄목사는 당시 "반칙과 특권의 문화에 절은 정치를 개혁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대통령, 그와 함께했던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기에 우리는 참으로 행복했다"라고 추모하여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로, 이 설교영상은 각 포털사이트의 각 게시판으로 옮겨지고 유튜브에 까지 올려져 수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였다.

'눈물로 보내드리며' 설교영상 바로가기

엄목사는 지난 23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이 꽃처럼 피어나길 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망이 더욱 간절해진다"며 "노대통령 재임시절 평화를 노래하던 서해바다에 전운이 감돌고, 한반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기에 더욱 그립다"고 소회를 밝힌다.

다음은 인터뷰전문.

-크리스천도 아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남달리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


노 대통령이 김수환 추기경 앞에서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희미하게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모든 몸부림으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뜻을 실천하려고 했던 분이었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발버둥을 쳤지 않았나? 나라의 균형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이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으신 분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 자체를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 소회?


우리가 구세주로 믿는 예수는 창조질서에 따른 세상살이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일갈했다. 같은 맥락으로 노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던지지 않았나. 반칙과 특권에 절은 정치를 개혁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신 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일부 목회자들에 대한 생각은?

이 땅의 일부 교회지도자들은 노 대통령을 또 한 번 죽이고 있다. '자살했으니 지옥 갔다'는 것인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정치적인 문제로 고민하다가 죽음을 선택한 이 처절한 상황 앞에서 '지옥 갔다'는 주장을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동네 이웃이 세상을 떠났어도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노 대통령의 삶과 노 대통령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미웠으면….

그러니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설교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 말씀으로 포장해서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토해내는 구정물로 한국교회의 강단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저들은 더 큰 예배당, 더 화려한 예배당을 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친정부 목회자들에 대한 시각은?

교회당은 화려해지고 교회당 지붕의 십자가는 높아만 가는데 오히려 교회는 무너지고 있다. 마치 아합시대의 바알 선지자들처럼, 아모스 시대의 아마샤처럼 스스로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당근에 찌들어 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의 목회자들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들은 이미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한 지 오래 되었다. 겉으로야 입만 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지만 그들은 실은 맘모니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열매가 소리 없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감출 수 없다. 이제는 그들이 피워내는 악취를 그 무엇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남달리 존경하게 된 동기는?

노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즈음에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주는 권세와 특권이 결코 개인의 행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하신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대통령직에 아무런 사심이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정말 마음 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이렇게 푸르고 푸른 대통령을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것은 아닌지….

굳이 핑계를 대자면, 권력에 눈 먼 정치인들과 타락한 언론들이 사사건건 대통령님을 괴롭히며 무지한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대통령님을 따라 갔어야 하는데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면서 가나안 복지를 누리기를 바랐으니,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들인가?

-현 정부에 거는 희망이 있는가?

아직은 절망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방송, 교회 어디를 둘러봐도 소망을 찾기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기는 이르다. 현직 대통령의 후안무치한 말 한 마디에 발끈 일어나 대담하게 촛불을 밝히면서 자신의 의사를 또렷하게 표시하는 초롱초롱한 다음 세대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대학에 소망이 없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있지 않은가?

노 대통령의 1주기 추도식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슬퍼하며 대통령님을 그리워하는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가? 이제 대형교회에 대해 어떤 기대도 포기하고 오히려 작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새로운 물결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이 이 나라의 소망이다. 아직은 절망할 때가 아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는 진리는?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있는 진리가 있다. '기억'은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향해 같은 폭력으로 맞서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무기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잃은 슬픔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광기의 시대를 언제까지나 기억해야 한다. 그 어둠의 세력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하고 싶다. 살쾡이가 들어와 동료를 물어죽이고 있음에도 나만 괜찮다고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는 닭장의 닭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

그는 마지막으로 "노대통령이 지도자로 계실 때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노래할 수 있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 수 있었다"라며 "노 대통령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노대통령님! 고맙고 감사하고 또 미안합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의 얼굴에서 1963년 민권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워싱턴의 평화행진 집회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라고 외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떠올랐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퍼내면 퍼낼수록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그의 힘 있는 경고가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엄인영 목사 : 한양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이촌동교회 자양교회 홍익교회 영은교회 등을 거쳐 지난 2005년부터 광양중앙교회(예장통합)에서 시무


덧붙이는 글 엄인영 목사 : 한양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이촌동교회 자양교회 홍익교회 영은교회 등을 거쳐 지난 2005년부터 광양중앙교회(예장통합)에서 시무
#엄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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