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세월을 건너 찾아온 사랑의 시

절판됐던 이생진 시인의 <숲속의 사랑> 재출간

등록 2010.05.27 18:28수정 2010.05.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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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을 이어가는 공간인 도시는 점점 화려해지고 편리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꾸만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할까. 지하철에 노약자가 타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아이들의 언행은 거칠어지는 세상. 카페는 차 한잔의 여유보다는 사람들이 지지 않고 소음공해를 만드는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이 이기적인 것은 '시'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시'란 무엇인가. 쉽사리 규정하기 어렵고 그러한 주제로 작품을 쓴 시인 역시 드물다. 하지만 시에 담긴 것이 무엇인가를 두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찰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배려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빠르게 경쟁하는 세상에서 느리게 바라보고 차분히 속삭이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할 수 있는 시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시대에 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며 시를 잊어갈수록 그것은 그리움의 정점에 서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러한 시를 가지고 걸작을 만들어 칸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제 1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또 하나의 시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

1955년부터 시집을 펴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31권의 시집과 여러 권의 수필집을 펴낸 이생진 시인. 그는 우리나라 섬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뿌리 깊은 애환을 작품에 주로 담아왔다. 그의 작품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수십 년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기도 하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당시 봉사활동을 하는 이생진 시인.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당시 봉사활동을 하는 이생진 시인.이생진 홈페이지 갈무리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외딴 섬을 좋아했다고 한다. 유인도와 무인도를 가리지 않고 찾다 보니 그의 발길이 닿은 섬은 천 곳이 넘는다. 특히 젊은 날 군대생활을 했던 모슬포뿐만 아니라, 성산포, 서귀포, 우도, 다랑쉬 오름 등 제주도에는 그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인사동의 그가 2001년 제주자치도 명예도민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생전의 김영갑 선생과도 인연을 맺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진으로 시를 찍었다는 찬사를 받는 김영갑 선생과의 인연으로 두 사람은 함께 <숲속의 사랑>이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절판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야 다시 책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영갑 선생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일 것이다.


"황금과 물질 만능에 도취하여 인간의 영성적(靈性的) 개발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이 현대 문명인의 고질병입니다. 신진대사가 필요한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고, 정신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것은, 우리의 심각한 영혼의 기갈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것입니다. "

어느 철학자는 인간이 생을 이어가는 이유가 사랑하기 위해서이며 그것을 통해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랑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의 차갑고 모질어지는 세상에서 진정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번에 다시 발간되는 <숲속의 사랑>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깨우쳐줄지도 모른다.


인간은 미(美)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는 김영갑 선생. 그의 뜻이 제주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6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 담겨진다. 이번 전시회는 특별히 '제주 도립교향악단'의 찾아가는 음악회가 함께하며 색다른 감동의 시간까지 더해졌다. 또한 관람객들과 함께 김영갑 선생이 작품을 찍었던 장소들을 답사할 예정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김영갑 작가를 생각하며 지금도 오름에 올라 그의 발자취를 읽는다는 이생진 시인. 외로움과 평화를 찍었던 김영갑 선생과 그가 함께 바라보며 성찰해낸 영혼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 그리고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숲속의 사랑·6

동녘이 타오를 때
떠오르던 네 얼굴
햇빛이 사라지며
어디로 갔나

 숲속의 사랑6
숲속의 사랑6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숲속의 사랑·7

타오르는 봄
바다에 던져도
식지 않아
밤새껏 뒤척였다
숯불에 올려놓은
생선처럼
밤새껏 뒤척였다

 숲속의 사랑 7
숲속의 사랑 7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숲속의 사랑·18

메밀 꽃 피면
떠오르는 네 얼굴
배고프면 잊혀지겠지
했는데
배고플수록
커지는 네 눈동자

 숲속의 사랑 18
숲속의 사랑 18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숲속의 사랑·17

산마루 언덕에서
삘기 뽑으며
기다리는 너
할머니도 그렇게
기다리다 가셨단다

 숲속의 사랑 17
숲속의 사랑 17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숲속의 사랑·19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뜨듯
연인의 눈에서 달이 뜨고
사랑의 눈에서 눈물짓는 해와 달
사랑 끝에 쏟아지는
눈물을 씻네

 숲속의 사랑 19
숲속의 사랑 19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숲속의 사랑·3

새벽부터 기다리는
사랑 때문에
내일이 필요한 것
사랑이 없으면
내일이 무슨 소용인가

 숲속의 사랑 3
숲속의 사랑 3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생진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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