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기의 최고봉, 독서한다는 것에 대한 희열

[처절하게 독서하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록 2010.05.31 15:13수정 2010.05.3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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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사색하기의 최고봉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하기의 최고봉 책.김동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사색하기의 최고봉 책. ⓒ 김동환

 

"사색하기의 최고봉, 독서한다는 것에 대한 희열"

 

가끔 절망의 순간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종류와 성질이 다를지언정 절망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당장에 책 몇 권을 꺼내들어 인생의 스승을 찾아본다. 이러한 절망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는 전적으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있다. 좋은 스승을 만나 차분히 대화하다 보면 어느덧 빛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제목만 본다하더라도 수습할 수 없는 감정의 실타래가 금방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주옥같은 책이다.

 

옛날 어느 책에선가 수기 중의 수기는 단연 이 책이라는 평을 듣고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솔직히 가까이 접근하기가 용이한 책은 아니었다. 이런 책보다도 보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깜냥도 있었다.

 

그러던 대학시절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 민주화 운동으로 복역한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을 통해 반(反)유신 운동을 한 선배님들, 전민노련(전국민주노동자연맹) 선배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선배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선배님,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선배님 등등 굵직한 조직사건으로 짧게는 수년 이상을 감옥에 복역하면서 생각했던 바들, 그 생생한 이야기들은 어느덧 흥미 있게 다가왔고 결국『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내 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무려 20년 20개월을 감옥에서 지낸 저자의 약력을 통해 정권의 야수와 같은 잔혹성을 추측케 하는 한편으로 20년의 감옥살이라는 것이 도무지 감각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20년 감옥 생활.. 28세의 청춘에서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출소했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사형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 과정에서 신영복 교수님은 되레 이 사회에서의 양심과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언어들을 전달해왔다. 지독한 성찰이다.

 

사회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리하려 했다면 아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한 개인의 사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 아버님께, 동생들에게, 제수씨에게 전하는 휴지 한 조각에 깨알같이 적은 편지들은 한 사람의 삶의 진솔한 모습, 양심을 올바로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줌으로써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교수님과 함께 사색하는 이들이 그토록 많아졌다는 얘기다. 좋은 구절을 한번 실어본다.

 

잎새보다 가지를(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아버님께

 

벌써 중추(中秋). 저희 공장 앞에는 밤새 낙엽이 적잖게 쌓입니다. 낙엽을 쓸면 흔히 그 조락(凋落)의 애상에 젖는다고 합니다만, 저는 낙엽이 지고 난 가지마다에 드높은 가지들이 뻗었음을 잊지 않습니다. 아우성처럼 뻗어나간 그 수많은 가지들의 합창 속에서 저는 낙엽이 결코 애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 을 알겠습니다.

 

잎새보다는 가지를, 조락보다는 성장을 보는 눈, 그러한 눈의 명징(明澄) 이 귀한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가을에 읽을 책은 형님께 몇 권 부탁하였습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고

독서가 사색의 반려라면 가을과 독서와 사색은 하나로 통일되어 한 묶음의 볏단 같은 수확을 안겨줄 듯도 합니다. 오늘은 이만 각필하겠습니다.

1971.10.7

 

이렇듯 숨 막히는 언어의 나열들이 경이롭다. 낙엽과 옷을 잃어버린 가지를 통해 사색한 것이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또한 굳이 가을뿐만이 아니라 한 겨울에도 책 속에 파묻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다. 신영복 교수님이 전하는 언어들은 그래서 잠언과 같이 깊은 울림이 있다. 교수님의 또 다른 책 『나무야, 나무야』에서도,『강의』에서도,『더불어 숲』에서도 우리는 사색의 최고 향연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친구와 나눈 술자리에서 바라 본 '처음처럼'의 신영복 교수님 글씨체를 보고, 나는 집에 돌아와 교수님들의 글들을 보며 못다 푼 감정의 실타래들을 풀어나간다.

 

더 읽어보기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돌베개, 2005)

-교수님의 성공회대 강의를 엮을 글로서 빼어난 동양고전의 독법

『나무야 나무야』(신영복, 돌베개,1996)

-중앙일보에 연재한 25편의 사색의 편린들

『더불어 숲』(신영복, 중앙 M&B, 1998)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사색한 기록들

『신영복 함께 읽기』(여럿이 함께 씀, 돌베개, 2006)

-교수님의 삶을 존경하는 이들이 바라보는 신영복 교수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0주년 기념 특별한정판)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돌베개, 2018

이 책의 다른 기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門 편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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