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났다. 승리했다. 언론을 위시해 여기저기 말의 성찬이 드세다. 기분이 그리 나쁘지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꿀꿀하기도 하다.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도 든다. 서울, 경기의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가 서울은 거의 90%를 이기고, 경기는 70% 가까이 이기는 결과에도 서울 경기의 광역단체장을 내준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쉬움이 크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이틀이 지났는데 시중에서는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를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말이 많은 정도라면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느라 그럴 수 있겠구나 하겠다. 그러나 노회찬을 향해 거침없는 야유와 인격적 모독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책임 있는 공당의 관계자들로 부터도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 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단일화 거부가 아니라 단일화 무산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노회찬의 득표수가 한명숙이 오세훈을 이기는 데 꼭 필요한 득표수보다 몇 배나 더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결과론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렇다면 다른 결과론, 즉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90%를 이겼는데, 왜 한명숙은 졌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더구나 지자체 선거의 특성상 광역선거 후보의 역량이 기초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반대로 한명숙은 또는 그의 절대적 지지자들은 이 선거 결과를 놓고 오히려 대중 일반에게 미안해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선거를 두고 합종연횡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정책연대나 후보 단일화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주당과 진보신당이 선거에 임박해 단일화 과정을 거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진보신당에 의한 '단일화 거부'가 아니라 민주당과 진보신당 모두 공히 책임이 있는 '단일화 무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일과 거부와 단일화 무산은 같은 표면적 결과를 보이지만 그 성질과 내용은 전혀 다르다.
또한 단일화 무산의 결과에서 굳이 누가 더 책임이 있는가를 따진다면 작지만 꼭 필요한 무엇을 얻고자 하는, 상대적으로 큰 집단이나 이해 당사자에게 더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과 그를 지지한 13만여 표를 비난하다니.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는 이번 선거가 '역사적 승리'라는 엄연한 사실에도 어울리지 않는 무도한 짓이다.
정치인은 선출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일차 과제이며 그것을 통해 정치력과 존재감을 피력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에게도 좀 더 쉬운 길과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척박한 대한민국의 진보정치 환경에서 개인의 영달을 뒤로 한 채, 역사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진보세력의 정치적 완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정치인이다.
노회찬을 탓하기 전에...
그가 대중 앞에 나와 완강하고 부패한 보수 수구세력에게 속시원한 일갈과 맛갈나는 은유를 할 때, 손벽치며 환호할 때는 언제고 지금 그를 두고 야유하며 책임론을 말 할 수 있는가.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그가 얻고 있는 한 자리 숫자의 미미한 지지세를 오히려 민주당 쪽에서 가볍게 생각하고 단일화에 소극적이지 않았는가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 되려 올바른 태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지금의 노회찬에 대한 불만과 비난은 전혀 정직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 정치를 위해서도 우울함을 더할 뿐이다.
노회찬은 그가 지향하는 정치철학에 한 번도 반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진보정치를 위해 초지일관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 나라의 균형적인 역사 발전과 미래의 희망을 위해 건강하고 위력 있는 진보정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할 때, 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노회찬은 미미한 지지세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소중한 민주세력의 자산이다.
지금 그를 탓하기 전에 기초단체장 90%의 승리에도 왜 한명숙이 오세훈에게 졌는가에 대한 냉철한 복기가 필요할 때이며, 강남의 부자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부자정당인 한나라당에게 투표하는, 소위 계급투표에 충실한데, 왜 중산층 이하 계급은 자신들에게 맞는 계급투표를 하지 않는가에 대해 공부할 때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기반으로 향후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노회찬을 지지한 13만여 표는 내 기준으로 볼 때 대단히 용기 있으며 정직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 대단히 값지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또한 대단히 존경스럽고 미안하기도 하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누가 13만여 표를 감히 사표라 할 수 있으며, 누가 감히 노회찬에게 돌을 던지는가.
2010.06.04 19:0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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