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근절', 대통령님은 책임없다는 듯이 말하시네요

등록 2010.06.23 17:37수정 2010.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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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6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양천 경찰서 고문'에 대해 언급했다.

6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양천 경찰서 고문'에 대해 언급했다. ⓒ 청와대

6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양천 경찰서 고문'에 대해 언급했다. ⓒ 청와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 고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입을 열었다.

 

"어떤 이유로든 수사과정에서 고문은 용납될 수 없다. 드러난 책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이런 말도 덧붙이셨단다.

 

"법집행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국민의 인권이 무시되는 상태에서는 선진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말은 맞는 말인데, 듣는 나에게는 거북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하늘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쏟아 부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6·25 60주년 평화기도회 연사로 참석하는 꼴을 지켜보는 그런 기분이랄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인권 선진국이라 칭송받던 이 나라가 이 대통령 집권 이후 UN마저 걱정하는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을 굳이 들먹일 것도 없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인권'이라든가 '표현의 자유'란 단어는 쓰레기통에 쳐박힌 지 오래니까.

군홧발로 여대생 머리를 짓밟은 경찰이 징계받았다는 말 들어 본 적 있는가? 정부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모차를 몰고 나온 주부며 고등학생에게도 공권력을 들이대며 겁박하는 나라다. 심지어 법으로 허용된 일인시위마저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반대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시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심에서 자유롭게 벌어진다. 진보단체에게 금단의 성역이나 다름없는 서울광장도 보수단체에겐 '묻지마' 개방이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라치면 가스통 매단 차량에 들이박힐 각오까지 해야 한다. 작금의 풍경이 이렇다.

'고문 경찰' 손가락질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

 

a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탈북자단체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앞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의문점을 담은 서신을 유엔에 보낸 것에 항의하며 "참여연대는 북으로 가라" "참여연대 건물에 불을 지르자" "이적행위를 처벌하라" 등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탈북자단체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앞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의문점을 담은 서신을 유엔에 보낸 것에 항의하며 "참여연대는 북으로 가라" "참여연대 건물에 불을 지르자" "이적행위를 처벌하라" 등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탈북자단체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앞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의문점을 담은 서신을 유엔에 보낸 것에 항의하며 "참여연대는 북으로 가라" "참여연대 건물에 불을 지르자" "이적행위를 처벌하라" 등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a  경찰에 압수된 고엽제전우회의 가스통. 가스통에는 화염방사기도 달려 있다(엄지뉴스 전송사진).

경찰에 압수된 고엽제전우회의 가스통. 가스통에는 화염방사기도 달려 있다(엄지뉴스 전송사진). ⓒ 박상규

경찰에 압수된 고엽제전우회의 가스통. 가스통에는 화염방사기도 달려 있다(엄지뉴스 전송사진). ⓒ 박상규

날개꺾기와 재갈물리기 등 고전적 수법들을 화려하게 선보인 양천경찰서의 고문 행각은 이러한 강압적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민주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데 경찰 혼자만 분위기 못 맞추고 저지른 퇴행적 '또라이짓'이 아니란 얘기다.

이렇듯 주어(主語)가 가출한 '적반하장식 개그'에 달리 어떻게 반응할까. 입에서 나는 소리라고 다 말이 되는 게 아니다. 문맥에 부합하고 논리가 맞고 거기에 말하는 이의 진정이 담겨 있어야 비로소 말이 되는 법.


이 대통령이 '고문 경찰'을 손가락질 하기 앞서 이 나라를 자신이 어떤 식으로 통치해왔는지 한 번이라도 반추했다면,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경찰의 모든 위법에 책임을 져야 하는 행정부 수반이라는 사실을 만분의 1이라도 자각했다면 과연 이처럼 남말하듯 말할 수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이 정부에는 '남 탓' 하는 정치꾼들만 득실거리고 '내 탓이오' 하고 말하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부터 천안함 침몰 책임을 아랫 군인들에게 떠넘기고, 경찰의 고문 사실이 발각돼도 애꿎은 일선 경찰서만 닥달하는 판에 더 말해 무엇하랴.


책임 지는 이는 없고 대신 '꼬리 자르기' 놀음에만 급급한 이 정부의 경박, 천박한 행태를 보고 있자니 누구 말마따나 "성질이 뻗쳐서" 정말로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 노릇 한다는 게 얼마나 지독한 고문인지….
2010.06.23 17:37ⓒ 2010 OhmyNews
#양천경찰서 고문 #이명박 대통령 #인권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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