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가 지난 5월 25일 서울 조계사에 설치한 '서울한강선원' 개원법회 도중 '4대강 생명살림을 위한 24시간 참회정진 기도' 입재식에서 수경스님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우성
수경스님은 엄청난 충격 속에 '뭘 하고 있다는 자신은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고, 아무 것도 안하는 듯했던 문수스님은 소신으로 뭇 생명에게 자신을 공양했다'고 독백하듯 되뇌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이고 내 행보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더 깊고 깊은 번뇌에 들어서게 한 듯했습니다.
문수스님 소신공양. 공교롭게도 지난 5월 31일, '오만독선 이명박 정권의 회개를 촉구하는 정의구현사제단 미사'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있던 날이었습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2주일 동안 진행해온 노숙 단식기도를 마치던 날이었습니다.
이 미사에 함께 할 예정이던 수경스님이 오지를 않아 미사가 끝난 뒤 조계사로 향했습니다. 여주 신륵사에 여강선원을 개원한 뒤 그 아름다운 한강 수계 여강이 밤낮없이 4대강 사업으로 난도질당하는 현장에 몸서리치며 아파하던 스님이었습니다.
"형님, 나 괴로워 죽겄어. 아주 힘들어"라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애끓는 고통을 토해내곤 했기에 그날은 꼭 만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조계사에서 문수스님 소식을 수경스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사제단 미사가 진행되기 직전의 시간, 문수스님은 낙동강변에서 자신을 생명의 강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말입니다.
스님이 떠난 큰 자리
그 때 수경스님으로부터 전해들은 또 하나의 소식은 사제단 미사가 진행되던 시간 동안 조계사 건너편 고층빌딩에 한 중년남자가 올라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며 투신하겠다 하여 소란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했다는 이분은 경찰과 스님들의 설득으로 내려오긴 했다지만 참으로 위험천만한 시간이었다 합니다. 그렇게 그 하루 동안만 해도 스님들과 사제들과 신도들이 온몸과 온 목소리를 바쳐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고 피토해냈습니다. 짐작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한 스님의 '소신공양'까지 있으면서 말입니다.
며칠 뒤, 조계사에 차려진 문수스님 분향소에서 다시 만난 수경스님 얼굴은 더 짙은 고뇌와 아픔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말수는 더더욱 적어졌고 침묵은 길었습니다. 어쩌다 하는 말에는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조계종 종단 차원에서 모셔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큰 실망과 격한 감정이 실려 있었습니다. 전무후무한 한 스님의 죽음을 통한 질타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 한마디 위로도 없이 4대강 사업을 세차게 강행하는 이 정권의 패륜 행태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수경스님 떠난 자리가 너무 크고 휑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들이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스님의 번뇌와 떠남의 핵심은 그분이 짊어져야 했던 책임의 무게나 소위 대접받는 권력을 내려놓음 따위에 있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선스런 상황들을 피하고자 했음도 아닙니다. 틀린 말들은 아니지만 본질을 벗어난 곁가지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억측들은 여전히 수경스님에게만 짐 지우며 자신들의 나태함을 가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구실일 뿐입니다. 자신 아닌 남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사람들의 구구한 해석일 뿐입니다.
승적, 주지직, 온갖 세상의 직위들을 다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진 수경스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여기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대접받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소적燒蹟'이요 '소연燒緣'입니다. 그 결단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4대강 사업 중단 싸움의 중심에 있던 분이 홀연히 떠나셨다 해서 그게 허물이 될 순 없습니다. 도리어 그로 인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은 고뇌 없고 무책임한 종교인들의 벌거벗은 모습이고, 여전히 누군가가 나대신 싸워주기를 바라는 이들의 나태함과 이기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