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리> 작가 김혜나씨
민음사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꼴찌를 도맡아 했다. 자연히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출에 정학을 훈장처럼 달고 다녔고, 대학 따위는 애당초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수능도 보지 않았다.
"20살에 호프집이나 바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클럽 가고, 그렇게 매일매일 삶을 소비하면서 살았어요. 노는 게 편하고 노는 게 좋고, 그냥 이렇게 술이나 먹으면서 멍청하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사는 것 외에는 다른 삶이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매일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집에 들어가고… 그런 삶이 일 년 정도 반복이 되니까 20살이 끝날 무렵에 '나는 과연 어디에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던 김혜나(28)씨가 한수산, 이문열 등의 쟁쟁한 문인들을 배출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사건(?)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신문에 '오늘의 작가상' 수상한 것이 보도가 됐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친척 분들과 지인 분들께 '우리 혜나가 신문에 났다'고 하니까, 무슨 큰 사고를 쳤는데 신문에 다 났느냐고 하시더래요. 만날 가출하고 정학 받고 그랬으니까요. 제 친구는 전철에서 신문을 보다가 제 기사를 발견하고 '억' 소리를 지르면서 신문을 떨어뜨렸다고 하더군요."'오늘의 작가상' 김혜나에게 꿈은 뭐였을까김혜나씨의 수상작인 <제리>는 그녀의 20살 시절의 삶과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낸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인천에 있는 2년제 대학 야간반에 재수까지 해서 겨우 들어간 스물두 살의 여성. 매일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고 이미 헤어진 남자 친구 '강'과 의미 없는 섹스를 나누며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주인공 '나'는 우연히 노래바에서 시간당 3만 원에 불러들인 열 명의 남자 선수들 중에 '제리'라는 남자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게 된다.
<제리>는 필자에게 소설이라기보다는 20대 청년들의 부유(浮遊)하는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 임상병리 보고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노골적인 성애장면 묘사도, 술과 유흥으로 점철되어 초록색 위액을 쏟아내며 흐느적거리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전혀 과장되거나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표현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인터뷰나 취재를 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 답에서 내가 <제리>를 읽으면서 느낀 자연스러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로 취재는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제 주변의 사람들을 정말 주의 깊게 봅니다. 오랫동안 깊게 들여다 보는 것 같아요. 20살에 만났던 친구들, 그러니까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친구들, 바나 클럽에서 일하는 친구들, 단란주점 일하는 여자애들, 호스트바나 나이트 일하는 남자애들, 이 친구들과 술 먹고 어울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제리>에 나오는 호스트바의 내밀한 얘기들도 일부러 찾아가서 취재한 것이 아니라 호스트바에서 일하던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잔상처럼 남아있습니다. 저는 제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제 머리로 생각하고 제 가슴으로 느낀 것을 쓰고 싶어요.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방식은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경험한 삶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와 닿지가 않아요. 와 닿지 않으면 제 언어로 쓸 수가 없거든요."
"노는 것 말고 재밌는 게 뭐 있을까 고민했어요"필자가 <제리>를 읽으며 인상에 남았던 부분이 있다. '꿈'에 대해서 얘기하는, 바로 아래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