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몰랐거나 혹은, 모른다

등록 2010.06.28 20:53수정 2010.06.2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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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꼭 성공해서 멋지게 술 한잔 하자."
"성공이라기 보다는, 각자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술 한잔 하자."


그와 나는 10년 만에 마주친 자리에서 저런 대화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물론 마지막 결의에 찬 악수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대체 어떤 상황에서 저런 대사를 서로에게 날려주었던가.

때는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찬바람이 불고 종종 눈이 내렸던 날들 중 하루. 나는 개인적인 일로 광화문에 들렀다가 밤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는 선배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용은 대략, "잘 지내는가. 무슨 일 하냐.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밥은 먹고 다니냐. 동아리 사람들이랑 연락은 하냐. 나도 잘 안한다" 이런 종류였다.

대충 통화를 한 후에 끊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리번 두리번. 차도를 건너서 누가 내게로 왔다. 그였다. 10년 만에 만난, 그러니까 고등학교2학년 이후에 처음으로 마주친, 그였다. 반갑거나 그러진 않았다. 대충, 그저그런 관계였다. 친한 것도, 안 친한 것도 아닌. 먼저 아는 척을 해오다니. 그것도 저 멀리서부터 말이다. 그냥 지나갔으면 좋았을 것을. 왜냐하면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추정컨대, 또 그저 그런 대화들을 끝으로 찝찝하게 헤어지겠지. 그래서였다. 그 시점으로부터 대략 30분 쯤 전. 나는 그를 보고도 외면했다. 사실 지하철에서 같은 칸을 타고 역시 대략, 20분을 보냈다. 나는 확신했다. 저쪽도 일부러 나를 외면했었음을(나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유용한 종이쪼가리였다. 서로를 가려주니까). 그런데 한참이 흐른 후, 거리로 나오자 그가 먼저 내게 아는 척을 했던 것이었다.

"얼마만이야. 십년만이네. 뭐하고 지내. 뭐 다 그렇지. 뭐 하려고. 어쩌고 저쩌고."


역시 이런 종류의 멘트를 주고 받았다. 그도 나도 멘트를 '소프트'하게 주고 받았다. 나는 방금전 선배와 통화를 하면서 비슷한 말들을 주고 받았었고 그는, 술에 취해 있었으므로. 그래서였을까. 우리의 대화는 10년 만에 만난 '대충대충 관계' 치고는 꽤 깊어지게 됐다. 나는 뭐하고 너는 뭐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그는 다음과 같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삶이 내 다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말 성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그는 바로 얼마전 외국의 무역회사 쪽에서 1년 과정의 인턴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쪽의 사정으로 돌연 취소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좀 황당한 상태)


사정은 각자 다르지만 종종 그런 고민을 들었으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니가 말하는 성공이란 게 뭐였어" 사실 '성공이 뭐냐'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싼티'난다. 왠지 70년대가 생각나기도 하고. 예전에 끝난 M본부 에덴의 동쪽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쨌든 정말 궁금해서 그렇게 물었다.

그는 말했다. 자기도 모른다고. 그래서 좀 답답하다고 했다. 대부분 그렇게 말하더라, 내가 말하자 그는 다시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기억해보면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은 단어들까지 썼던 것 같다. 자본, 관성, 반복, 소외, 군중, 실존, 사명, 목표, 가치관, 철학, 비전, 막연한 것과 구체적인 것, 휩쓸림, 부화뇌동, 자기 언어, 자기 생각, 그리고 주체성까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98% 단언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단어들을 썼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종종 자신이 갖고 있던 물음을 내게 던지기도 했고, 나는 주로 답을 했으며, 우린 그런 모든 이야기를 불과 50미터 남짓한 그와 나의 '벙커'사이에서 나누었다.

붉은 가로등 밑에서. 술에 취한 그와 입이 풀리면 아무거나 막 지껄이고 보는 내 언어습관 탓이었다. 대충 만나서 대충 헤어지면 그만인 사이에 대략 한 시간 정도 그런 장황한 이야기들을 했다면 나름 '소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과연 얼만큼 내 진의가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랑 가는 길이 다르다고 그때 당시엔 생각했었다. 내가 썼던 언어는 '그쪽'에선 쓰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민망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지껄였던가. 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섞일 수 없는 생각, 섞일 수 없는 언어, 섞일 수 없는 경험들. 그럼에도 우리가 갑자기 만나서 미친듯이 지껄일수 있었던 건 단 하나의 공감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한 세상이란 말이지."

하지만 우린 그 세상이 뭔지, 아직은 잘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와 내가 그렇게까지 지껄였을 수가 있었을까. 모른다. 젠장. 왜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란 말인가. 우리는 그러고 헤어졌다. 그런데 10년 동안 50미터 거리에 있었음에도 어떻게 한 번도 못볼 수가 있는가, 라는 말도 덧붙였다. 모른다. 살다보니 그렇게 됐을 뿐.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라고 나는 말했다.

그 뒤로 육 개월이 지났다. 지하철, 저 멀리에서 또 그를 보았다. 한 눈에 보아도 그는 이젠 취업준비생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물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린 서로를 또 모른 척 했으니까. 어쩌면 그는 진짜로 못 봤던 것일 수도 있다. 육개월 전 그날 지하철에서도 어쩌면 나만 모른척했던 것일 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여전히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음. 신문은 세 개를 읽어야 한다지. 좌쪽의 것과 우쪽의 것. 때때로 경제지를 포함해서' 그 신문들의 지면엔 그와 나의 이야기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신문은 서로의 시야를 가려준다. 꽤, 유용하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 나는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다. 50미터 저쪽엔 아마 그 녀석이 집에 있거나 없거나, 그럴 것이었다. 뭐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정말 성공해서, 언젠가 술을 퍼마시며 못다한 이야기를 지껄일 날이 과연 올까. 그때 지껄일 말들은 육개월 전 그때와 다를까.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세상은, 단언할 수 없다.
#다짐 #성공 #친구 #백수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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