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여권을 만들 때 지문날인 기계를 보고 어떻게 해야할지, 대략난감이었다. 내 인체 정보가 이렇게 입력된다는 사실에 우선 거부감이 들었다. 사진은 지문 자료사진.
오마이뉴스
이것은 지문인식시스템의 오류, 명백한 국가시스템의 허점이다. 내 인체정보가 국가권력 기관의 감시 하에,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철저하게 노출되어 있구나. 아니, 누구 마음대로? 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동사무소에서 종이에 찍은 지문날인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검찰청에서 관리하고, 그것이 다시 각 구청으로 연결되어 여권을 만들 때 본인인지 대조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스템 구축 자체도 큰 문제지만, 그 시스템조차 지금 이렇게 허점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 피해 당사자다. 나처럼 이렇게 시스템 상에서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이 시스템 불일치로 인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공항에서든 경찰서에서든 어디서든 본의 아니게 피해를 당하게 된다면, 국가는 나에게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왜 구청직원은 나에게 그에 대한 친절한 안내 한마디 없이, 마치 여권을 위조하려는 사람 취급하며 취조를 하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안이 밀려오고, 점점 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권을 만들 때 지문대조는 올해부터 시행된 제도로서, 이제 고작 7개월 넘게 시행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아직 홍보가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그에 관한 정보나 대응할 기관도 찾기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여권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주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해외에 수시로 다녀오는 사람도 복수여권의 경우에는 몇 년만에 만들게 되고, 또 여권이 만료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장 해외에 가지 않는 한, 바로바로 갱신하지는 않는다. 보통 여권은 출국을 여유있게 앞두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시행초기라 할 수 있는 지금 시기에, 지문대조가 어떤 시스템인지 도입배경과 과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안내문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것 아닌가.
마포구청 민원여권과에 전화해 보니... "그건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 이에 관하여 신고를 하거나 상담을 받으려고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 마포구청 여권민원과가 따로 있기에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자 남자 직원이 자신은 잘 모른다며 다른 여직원을 연결시켜 주었다. 접수번호를 부르라기에 불렀더니 이미 내 상황이 기록되어 있었던지 내가 전화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나 : "지금 검찰청 시스템상의 지문이랑 현재 제 지문이랑 불일치라고 하는데, 여권 나오긴 나오나요? 불안하네요! 그리고 신문에 보니 일본은 입국시 지문을 검사한다고 하는데 저 이것 때문에 입국 못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된거죠???"거세게 항의하자 나를 안심시키려는 여권민원과 직원의 친절한 목소리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직원 :"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 없으세요. 가끔 그런 오류가 있나 봐요." 허허. 점입가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게다. 논란이 많은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지문시스템오류'를 두고 '가끔' 있는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런 일이 있으셨냐고. 드문 일이지만 알아 봐 드리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직원 : "그건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이지, 지금 전화주신 분이 걱정하실 일이 아니세요. 아무 염려 마시고 제 날짜에 여권 찾으러 가시면 됩니다."지문대조시스템 오류 인정, 범죄자 취급한 것 사과는 없어그리고는 그건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마포구청 민원여권과는 올해부터 새롭게 시행하는 이 '지문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명백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허점이 뻥뻥 뚫린 새로운 제도를,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로, 자신들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국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태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게 과연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인가? 최소한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시스템 오류일 수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에게 죄송하지만 개인정보 몇가지를 물어보겠노라 협조를 구할 수는 없었는가.
나는 여기서 내 신청서를 접수한 구청직원의 개인적인 서비스 태도를 비판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논란 많은 제도를 범국민적 합의 없이 스리슬쩍 시행한 데 분노한다.
지금 여권 없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국가급 원수나 장관급 주요인사들 빼놓고 평범한 국민들 중 아무도 없다. 또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코앞에 닦친 출국 때문에 현장에서 문제제기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 온종일 불안에 떠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 누가 보장할 수 있나.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인체 정보를 활용함에 있어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고, 시행도중 착오가 있을 때는 투명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제 시행초기라고 해서 민원여권과에서조차 그런 식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대응은 진정한 민원처리라고 볼 수 없다.
지문날인, 인체정보의 국가시스템화에 반대한다앞으로 인간의 지문, 안구 등을 비롯한 신체정보는 점점 더 국가시스템화 될 것이고, 그 활용범위가 넓어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적으로도 이것은 많은 논란거리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각국의 인권단체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몇 년 전인가 공항에서 지문대조 시스템 오류로 입국불허자로 오인되면서, 그 과정에서 경찰의 전기충격기를 맞아 사망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당연히 그는 테러리스트도, 범죄자도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켜, 더욱더 거센 여론의 반대를 일으켰다. 백 사람의 범죄인의 출입국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국민 어느 한 사람도 희생될 수는 없다.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인체정보 시스템'은 수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인권단체는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아찔하다. "제 지문이 그 사이에 변한 건가요?"라고 묻자 구청직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여권은 순탄하게 나왔고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으나, 여전히 찜찜함은 남는다. 나와 같은 '지문 불일치자'에 대해 어떻게 시스템상의 오류를 수정할 것인지, 동사무소에 가서 지문날인을 다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에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각종 인체 정보가 국가의 통제시스템 하에서 오류를 일으키고, 그 때문에 크든 작든 국민 개개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국가의 인체정보 시스템 운용 능력,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이 제도를 즉각 폐지하라. 강력하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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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배우. 작가. 무대쟁이이자 글쟁이. 연극(예술)치료사.
읽고 쓰기, 여행, 연극, 전위예술. 아방가르드, 맥주를 좋아한다.
현,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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