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미 소원이 무심치 않았는지 대비전에선 옹주 한 사람을 내려 장가들라는 교지를 내렸다. 권력의 수레에 올라 탈 수 있으니 재물이 넘쳐나는 집안으로선 더 없는 영광이요 축복이었다. 그래서 하원에 들러 한 잔 술을 청했는데 이곳 하원의 주인 임수경은 물기가 촉촉한 눈으로 이철형의 궁금증을 덜어주었다.
"이보세요, 금오위. 내가 한 번 알아볼까요? 조정에서 그런 관직을 내릴 때엔 그에 걸맞은 짝을 준답니다. 오래 전 우리 집에 있던 소향이란 아이가 궁에 들어갔는데 내가 불러낼 테니 부탁 한 번 해보시지요."
날을 정해 소향이를 만난 금오위는 평소 제중당 이주부가 입에 달고 다닌 의약서를 끄집어냈다. 내명부든 궁 안이든 서고를 뒤적이면 한나라 때 의학서가 있을 것인데 제목이 <금궤요략>이라 했다. 그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쌀 스무 가마 값을 지불하겠다는 말에 소향이는 서고를 뒤졌다.
구석진 곳에서 찾아냈을 때 소향이의 기쁨은 어떠했겠는가. 한달음에 달려와 소식을 전하자 쌀 스무 가마 값을 건네며 은밀한 부탁을 찔러 넣었다.
"이 책은 상한론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서문을 보면 이유가 적혀 있다 하니 그걸 필사해 오게. 그리하면 가격을 후히 쳐줄 것이네."
이철형은 목소리를 낮춰 자신에게 시집오는 옹주에 대해, 용모는 어떻고 학식과 어미 집안 내력이 어떤지를 시시콜콜 따져 물었다. 소향이는 알겠다며 돌아갔다.
이철형이 말한 그 옹주는 내명부에서도 소문이 그럴 듯하게 났던 미인이었다. 쉰이 넘은 환관학사는 나인과 젊은 환관들이 있는 자리에서 옹주에 대해 극구 칭찬했다.
"사람의 심성은 하늘로부터 받는다지만 그 부모의 기가 절대적이네. 한데, 바라지 않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고 원하지 않는데도 절세가인이 태어날 수 있네. 후자 쪽이 그런 경우지. 그분께선 아주 특별한 몸 구조를 지니셨다니까. 내 일찍이 궁에 들어와 전하를 위해 중원의 성의학에 대해 좋다 하는 책은 모두 뒤졌네. 그러다 삼봉파의 <삼봉단결>이란 책자를 찾아냈네."
환관학사는 그 책이 무얼 강조하는지 요점만 들려주었다. 여인에겐 두 개의 젖가슴이 있으니 이것이 봉우리 둘이고 여인의 은밀한 곳이 연꽃 봉우리다. 이러한 세 가지를 잘 다룬다는 게 삼봉파로 성의학을 다룬 옛 서적엔 여인의 몸을 뒤에서 껴안은 걸 도삽연화라 했다.
삼봉파에서 주장하는 게 미청목수 순홍치백이었다. 즉, 눈썹이 맑고 가지런하고 눈이 맑고 아름다우며 입술은 붉고 이가 하얗다는 것이다. 바로 옹주의 상이라 했다.
이런 사실을 소향이가 전해주자 이철형은 대수롭지 않은 낯으로 시큰둥했다. 그래서 옹주에 대한 얘기를 접고 다른 일거리를 주었다. 요초방이란 미약이 나오는 부분을 필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약속한 날에 처방전을 베껴오자 의례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돌려보낸 그는 혼자 술상 앞에 앉았다. 하원의 주인 임수경이 들어와 넌지시 운을 떼자 이철형의 귀가 번쩍 뜨였다.
"내가 말씀 드리려던 건 바로 요초방이란 미약이에요. <금궤요략>이란 처방집이 궁에 있다는 걸 안 사람은 수표교 근처에 사는 제중당 이주부예요. 어느 때인가 그 분이 나를 찾아와 청을 넣길레 내가 소향이를 통해 그것을 얻게 했답니다. 지금까지 금오위 나으리의 청을 어렵게 수행한 듯 보이나 기실은 준비해둔 것을 이곳으로 가져온 것뿐입니다. 그 대가는 나으리께서 그때마다 지불했구요. 내가 지금껏 두고 보았던 건 그 아이가 어찌 처신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인데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으리께 말씀드립니다."
임수경은 두 알의 단약을 내놓은 채 목소리를 낮췄다. 자신에게 먼 집안 핏줄로 인물이 반반한 아이가 있어 화류계 풍속을 가르쳤는데 이 계통에 딱 맞아 입이 절로 벌어질 지경이라는 것이다. 장고와 춤 솜씨는 말할 것 없고 잠자리에서 사내를 휘어잡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귓속질이었다.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내가 솜씨를 보겠네. 행화를 듬뿍 줄 터니 대령시키게. 알겠는가?"
"나으리 분부를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본래 내 품에 있던 아이였으나 궁에 들어간 후론 부르지 않으면 어지간해선 나오질 않습니다. 그러니 괘씸타 못해 여간 서운한 게 아닙니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작설차를 준비시켜 찻잔에 요초방을 타십시오. 그리하면 그 명품을 나으리께서 품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화풀이를 할 수 있으니 좋고 나으리로선 궁안의 들꽃 하나를 취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닙니까?"
"그것참 기름진 얘길세. 자네가 날 어찌 보았길래 그렇듯 향기로운 제안을 하는가. 내 자네에게 쌀 열섬을 보낼 것이니 사례라 여기지 말고 정리로 받아주게."
"고맙습니다, 나으리."
"이 사람아, 고맙긴. 그러나 저러나 자네 집안 아인 어느 방에 대령시키겠는가. 내 그쪽으로 가겠네."
"잠시 기다리십시오 나으리, 쇠뿔은 단숨에 빼라 했지만 일엔 순서가 있는 게 아닙니까. 내가 가서 준비시키고 오겠습니다."
이렇게 돼 그 날 임수경의 먼 친척 아이와 단꿈을 꾸었는데 이상하게 그 다음날도 생각이 간절해 그 계집을 찾았다. 처지가 이렇다 보니 두 알의 단약은 벌써 삼켜버린 뒤였다. 이철형이 하원의 주인에게 약을 청하자 그녀는 난색을 지었다.
"내가 지닌 단약은 몇 알 안 남았어요. 우연히 나으리의 처지를 보고 드시게 했으나 단약을 준 이주부는 계속적으로 복용할 땐 반드시 자신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다짐을 줬답니다."
그런 연유로 이주부를 만나게 됐는데 아직은 괜찮다는 말과 스무 알의 단약을 건네주었다.
이날 궁중에서 소향이가 처방전을 들고 찾아왔다. 미리 약조해둔 대로 심부름 하는 아이는 작설차 안에 요초방 두 알을 풀었고, 그것을 마신 남녀는 음기에 감응해 날 새는 줄 모르고 지칠 때까지 방사를 치렀다. 소향이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오늘 나으릴 기다리는 데 시간이 어찌 더디 가는 지 애간장이 탔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오늘은 몸이 뜨겁고 나으리 품에 안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죽기 살기로 뛰어왔어요. 하룻밤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지만 쇤네에게 사내를 알게 해줬으니 어찌 나으릴 잊겠습니까만, 궁을 나서기 전 나이든 환관학사를 만났는데 눈이 번쩍 뜨일 얘길 하지 뭡니까. 며칠 전 옹주의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 환관학사가 다녀갔답니다. 옹주가 말하길 자신이 머지않아 시집가게 됐는데 소박이나 맞고 오지 않을까 해서 불렀다는 거예요. 그래서 환관 학사가 옹주의 몸을 살폈는데 감탄 했다지 뭡니까!"
"감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선도의 한 유파에 <현미심인>이란 책이 있답니다. 이것을 쓴 이는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네 사람, 즉 사일학인을 비롯해 양고도인, 청봉자, 자양도인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처럼 신선세계에 들어올 여인의 몸을 구별해 뒀는데 그게 택정이란 것이랍니다."
"택정?"
"이것은 여인의 몸을 하나의 그릇이라 보고, 그러한 여인의 몸에 들어온 사내에게 크나큰 즐거움과 젊어지는 비락을 준다는 하늘이 내린 몸이랍니다. 그렇듯 훌륭한 몸을 지녔으니 금오위 나으리께선 천하를 반이나 얻은 것과 다름없지요."
"무슨 소릴! 반이라니?"
"하루의 반은 밤이니, 밤은 나으리께서 기쁨과 환희가 충만 할 게 아닙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입니다."
"환관 학사가 무얼 보고 그리 말한단 말인가? 나는 믿음이 가지 않네."
"저라고 처음부터 믿었겠습니까. 하릴없이 시간 보내는 환관들이니 그저 관심이나 끌어보려는 것이라 여겼지요. 한데, 학사가 화선지 위에 안색홍백, 골육균정, 부눈발흑, 언금성이라 휘갈기고 자잘하게 설명하는 걸 듣고서야 믿음을 갖게 됐지요."
환관학사가 말하는 건 첫째, 얼굴 색깔이 좋다. 둘째, 키와 살찐 정도가 알맞다. 셋째, 피부는 부드럽고 머리칼은 검다. 넷째, 목소리가 맑고 또렷하다는 것이다.
얼굴 색깔은 흰 바탕에 연한 홍색이 물들어진 색깔이 좋으며, 색이 하얗다는 건 이성에게 양기를 듬뿍 남겨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얼굴이 까만 경우는 어떤가. 이성의 양기를 훔쳐가는 몸이다. 옹주는 알맞은 키와 살찐 정도가 적당하고 크지도 작지도 않고 마르거나 비만하지 않은 균형 잡힌 몸매라 했다. 또한 피부는 부드럽고 머리칼이 검다.
이런 여인이 사내에게 행운을 주고 건강을 준다는 말에 이철형의 생각은 깊어졌다. 때마침 소향이가 궁으로 돌아간 뒤 제중당 이주부가 요초단 단약을 들고 찾아와 두서없는 세상인심을 말하다 헤어졌다.
이날 정약용이 하원의 주인 임수경의 먼 친척뻘 된다는 기생을 찾았으나 그녀는 몸이 아파 제중당에 약 지으러 갔다고 했다.
"어디가 아픈가?"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몸이 남아나지 않지요. 사내들 등살에 하루에도 몇 차례 술을 퍼붓다 보면 고장나지 않을 재간이 있겠어요. 요즘엔 무슨 일인지 메밀묵을 먹더니 어제는 장기 한 틀을 달여 복용합디다.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다 싶었지만 제년이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니 모르는 척 했지요. 모르긴 해도 음사병일 거에요. 그년이 알게 모르게 요초방을 그렇게 먹어대고 그 짓거릴 했으니 몸이 남아날 리 있겠소. 미련한 년 같으니라구."
"누구와 날밤을 지냈단 말인가?"
"누구긴 누굽니까. 잘난 왕손이지. 왕손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대비마마가 그 자에게 옹주를 하가시킨다 했으니 춤이라도 출듯 신바람 났겠지요. 바람둥이 사내의 뭣이 좋다고 찾아오기만 하면 날 새도록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니 몸이 남아날 것 같습니까. 이 계통에서 입에 풀칠 않고 기생질이라도 하고 싶으면 제 몸 상하는 짓은 아니 해야지요."
내의원 도제조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바람에 소향이의 주검은 사흘이나 방치됐다. 나라 법으로 금지된 게 해부니 죽은 자의 몸을 함부로 다룰 수 없었으나 외상이 없고 독극을 마신 흔적이 없으니 정약용은 관원들을 불러 은밀히 지시했다.
"이것이 궁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곳에서 배를 열어볼 수는 없네. 당장 궁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니 주검을 사헌부로 옮기고 생각해보세."
일단 사건 현장에서 철수해 사체가 사헌부로 들어오자 검시기록을 살펴본 사헌부 장령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일개 궁인의 몸이니 이번 일은 조용히 덮어버리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을 비쳤다.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정지평의 입장으로선 내키지 않은 일이나 대외적인 여러 문제가 걸려 있으니 우리라도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게 좋겠소. 죽은 자의 배를 가른다는 게 조선의 윤리에 맞지 않는다 하니 이쯤에서 마무리 지읍시다."
"그게 바른 말은 아니지만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해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만약 죽은 자가 원한을 품고 있다면 내 장담하건대 그 원혼이 밤마다 사헌부 관리들을 괴롭힐 것이니 그쯤은 각오하셔야 될 것이오."
"그래요? 그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헌부 장령은 혼겁한 낯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정약용을 호출했다.
"그 따위 원귀가 무서워 결정을 바꾼 건 아니오. 좋소!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 해부를 하시오. 내가 책임지리다!"
소향이의 주검은 수술용 받침대 위에 올려졌다. 예전의 수술법은 열 십(十)자 법이라 하여 배를 가를 땐 배꼽을 경계로 가로와 세로 선으로 자르는데 세로 선은 음경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선을 경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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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초방(瑤草方) ; 약성이 강한 미약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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