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는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춘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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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돌을 맞아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두 편의 드라마가 선보인 가운데 최근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사이에 둔 바다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전쟁에 대한 기억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이들 드라마보다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더 전쟁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스쳐갔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는 데 왜 이리 서툴기만 할까. 대체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까.
지난 6월 중순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MBC와 KBS 두 방송사가 나란히 두 편의 드라마를 내놓았다. <로드 넘버 원>(수·목 오후 9시55분)과 <전우>(토·일 오후 9시40분). 두 드라마는 두 방송사의 보도 논조만큼이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60년이라는 세월의 깊이가 묻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큼은 별로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는 전쟁이라는 시공간만을 빌려와 이야기의 무대로 쓰고 있을 뿐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절반의 기억은 잊은 채 절반의 시선으로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이라고 다 같은 전쟁은 아니다두 드라마 모두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간단하게 설명을 해두는 편이 좋겠다. <로드 넘버 원>은 무려 13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으며 소지섭, 김하늘, 윤계상 등 최고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다. 전쟁으로 뜻하지 않게 뒤엉켜버린 세 사람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홈페이지에 "가장 극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듯이 전쟁의 고통보다 더한 '사랑의 아픔'을 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한 자리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우>는 70년대에 첫 선을 보인 뒤 80년대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리메이크된 작품으로 약 80억 원을 들였다. 최수종, 이태란, 이덕화 등의 중견 배우들을 내세워 전쟁, 혹은 전쟁 드라마를 추억하려는 중장년층을 겨냥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밝힌 기획 의도는 사뭇 비장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게 하는 것"이다. 15%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70~80년대의 높은 인기를 되살리기에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로드 넘버 원>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배경'이란 단어에 힘을 줘서 읽어야 한다. 단지 배경으로만 삼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든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전쟁 드라마'라는 말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들어졌고, 또 6월 25일에 맞춰 이틀 전에 첫 선을 보인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스스로 드라마 위에 역사의 무게를 잔뜩 실었다면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에는 당연히 국군의 수만큼 많은 인민군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대사는 물론 특별한 표정도 없다. 그저 숨어서 총을 쏘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 그뿐이다. 이들은 이야기, 그것도 '사랑 이야기'를 위해 필요한 '움직이는 소품'들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을 인민군이 아닌 고대 오랑캐로 바꾸거나 심지어 외계인으로 바꿔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가장 극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상황과 소품만 있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60돌이라는 계기가 드라마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탓이었든, 아니면 안보 의식이 약해지는 것을 못 견디는 보수 정권의 눈치를 본 탓이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가져다 쓴 기획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해 보인다. 단지 전쟁이라는 배경이 필요했다면 차라리 '나로호' 발사에 맞춰 한국판 <스타워즈>를 시도해보는 건 어땠을까.
여전히 반쪽 뿐인 전쟁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