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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인천 한샘학원 수강증 한 장
아버지는 당신 아들을 따로 학원에 넣을 마음이 없었고, 어머니는 당신 아들을 학원에 보내며 살림을 꾸리기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이던 때에 중학교부터는 대학입시를 생각해야 한다며 '중학교 교과과정' 가운데 영어와 수학을 먼저 익히는 과외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으나, 이때 뒤로는 따로 과외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학원 또한 굳이 다니지 않고도 학교에서 받는 교과서 수업으로 넉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0년에, 동무녀석이 나보고 '참 괜찮은 영어 강사가 있으니 학원에 같이 다니자'며 조르고 졸랐습니다. 난 구태여 학원 갈 생각이 없고, 학원에 다니는 수강료 만오천 원이 아깝다고 했습니다. 만오천 원이라는 수강료는 한 주에 다섯 차례, 하루 한 시간씩 한 달 동안 강의를 듣고 치르는 돈입니다. 이무렵 중고등학생 버스삯은 100원이었으니, 만오천 원을 치르는 강의삯이란 퍽 비쌌습니다.
동무녀석은 끈질기게 조르면서, 수강하지 않는 학생도 듣는 공개강의가 있으니 와 보라 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들을 만하겠다 싶어 주안역 고려예식장 건너편 안쪽 골목에 자리한 한샘학원으로 찾아갑니다. 영어 강사는 꽤 이름을 날리는 최 아무개 씨였고, 공개강의는 몇 백이 들어찰 수 있을 만한 넓은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앉을 자리는 일찌감치 다 찼고 책상과 책상 사이에 선다든지 벽에 따라 줄줄이 선다든지 하며 빼곡합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이렇게 많은 학생이 몰려든다니 대단하다고 느끼며 강의를 들어 봅니다.
학원 영어 강사는 학교 영어 교사하고 견주어 좀더 깊이 다루며 한결 재미나게 가르칩니다. 학원 강의를 처음 듣는 이때에, '이만 한 학원 강의를 듣는다면, 내 동무녀석들은 나보다 영어 시험을 더 잘 치러야 하지 않아? 그런데 학원에 다니는 녀석들치고 나보다 영어 시험을 잘 치르는 녀석은 없잖아? 그나저나 왜 우리 학교 영어 교사들은 이렇게 가르칠 생각을 못하고 있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학교만 다녀서는 공부를 제대로 하기는 글렀구나.' 하고 느끼기까지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합니다. 집살림이 걱정스러워 어머니한테 섣불리 말하기 껄끄럽습니다. 이무렵 저는 '특전무술' 도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봄날 학교 가는 길에 동네 깡패를 길에서 마주치며 '제도 공책 살 돈 만팔천 원'을 빼앗겼고, 이렇게 동네 깡패한테 돈을 빼앗기고 들어오니 형이 동생을 크게 꾸짖으면서 '너 안 되겠으니 무술도장에 가야겠다'고 하면서 태권도 도장이니 유도 도장이니 합기도 도장이니, 제 손목을 붙잡고 하나하나 찾아다니다가 가장 빡세게 가르친다고 하는 특전무술 도장에 덜컥 집어넣었습니다. 밑힘이나 주먹힘이란 하나 없는 저한테는 더없이 무서워 보이기만 하는 도장에 동생을 집어넣은 형은, 어머니한테는 다달이 삼만오천 원이나 하는 배움값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슨 수를 써도 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덧 특전무술 도장을 한 해 즈음 다니고 있는데, 한 해가 되도록 저는 급수를 못 올렸습니다. 아니, 사범님이 급수를 올려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급수를 올려 주지 않느냐고 투정을 부리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사범님 눈길로 '아직 철없고 어린 아이한테 괜히 급수를 올려 주면 띠 빛깔이 바뀐다고 우쭐대겠구나' 싶어 올려 주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저는 '급수도 안 올려 주는데 이제 더 안 다녀도 되지 않느냐'고, 그동안 배울 솜씨는 다 배웠(?)으니 비싼 무술 도장은 그만 다니고 한 달에 만오천 원을 내면 되는 영어 학원에 다니면 이만 원을 줄인다고, 이 또한 오늘 와서 돌아보면 터무니없는 말씀을 어머니한테 했습니다.
어머니로서는 이렇게 돈이 나가나 저렇게 돈이 나가나 매한가지였을 텐데, 이무렵 저는 이런 대목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고3 수험생이 된 형은 동생한테 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때마침 중3 자율학습을 밤 열 시까지 하고, 학원에 따로 강의를 들으러 간다고 하는 아이들은 학원 시간에 맞추어 자율학습에서 풀려나던 때라, 저절로 특전무술 학원은 하루이틀 멀리하다가 그만둡니다. 이러면서 한샘학원 영어 강의 맨 마지막 수업을 듣기로 합니다. 저녁 아홉 시에 하는 여덟째 시간을 들으면 '맨 마지막 시간이니 좀더 가르치고 싶은 이야기를 가르치겠다'고 하던 영어 강사는 으레 열 시 반이 되어서야 강의를 끝냈고, 버스 막차가 끊어질까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기 바쁜 나날이 이어집니다.
최 아무개 씨 영어 강의는 꽤나 사랑받는 터라 1분만 늦게 들어와도 안에서 문을 잠가 더 못 들어오도록 했고, 수강증을 끊으면 당신이 하나하나 서명을 넣으며 '가짜 수강증인지 아닌지'를 살폈으며, 다달이 마지막 강의날 수강증을 걷어 갔습니다. 날마다 강의를 빠짐없이 듣고,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 재미난 강사한테서 영어를 배웠음을 잊고 싶지 않아 시월 마지막 날은 일부러 강의에 들어가지 않고 골마루에서 강의를 들으며 수강증을 내지 않습니다. '영일'이란 도장은 '영어 일 번 강사'란 뜻이고, '8'은 '영어 강사 최 아무개 씨가 하루에 여덟 번째로 하는 강의'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최 아무개 씨는 날마다 여덟 시간씩 똑같은 강의를 되풀이하고 있던 셈입니다.
ㄴ. 인천송도유원지 표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봄나들이나 가을나들이를 으레 두 군데 가운데 한 곳으로 갑니다. 첫째, 송도유원지. 둘째, 자유공원.
1950∼60년대에 나온 다른 곳 졸업사진책을 뒤적이다 보면, 경기도 쪽 국민학교나 중학교에서 '인천 자유공원'이나 '인천 송도유원지'로 수학여행을 온 자국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인천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송도유원지나 자유공원 같은 데로 나들이를 오지?' 하고 생각하지만, 다른 곳 사람으로서는 자유공원에는 반공 교육 상징인 맥아더 동상이 서 있고,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송도유원지는 값싸게 즐길 놀이시설이 있는 가운데, 아무튼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멀리서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길손한테는 그럭저럭 재미있다 할 만한 곳일 수 있어요. 그러나 봄에는 송도유원지요 가을에는 자유공원이요 하면서 늘 이곳으로만 나들이를 가야 하는 몸이라면 지겹다 못해 짜증스럽습니다. 국민학생 때뿐 아니라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어김없이 이곳으로만 나들이를 가야 한다면 더욱 뿔이 나고 싫습니다. 봄과 가을 나들이철이 되면 송도유원지이든 자유공원이든 저마다 학교옷을 차려입고 학교 깃발을 내걸고 있는 수천에 이르는 학생들이 붐빕니다. 어느 한 날에는 송도유원지에 스물 몇 군데 학교가 나들이를 와서 가게에서 마실거리 하나조차 사기 힘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늘 똑같은 곳으로만 나들이를 가야 했을까요. 학교 교사들은, 또 교장과 교감들은 어이하여 늘 같은 데로만 아이들을 잔뜩 몰아넣으며 '감시'와 '훈시'를 하려고 했을까요.
때때로 자유공원과 송도유원지 아닌 수봉공원으로 가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수봉공원은 그리 가깝지 않아 이리로는 잘 가지 않습니다. 아마, 수봉공원과 가까운 곳에 있던 학교는 늘 이리로만 나들이를 다녀 몹시 지겹고 짜증스러웠겠지요. 왜냐하면 인천사람한테 송도유원지이든 자유공원이든 수봉공원이든 여느 때에 으레 손쉽게 찾아가는 쉼터이기 때문입니다. 따로 날 잡아서 신나게 나들이를 간다고 할 때에 찾아갈 만한 곳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남달리 날을 잡아 나들이를 가도록 한다면, 해마다 똑같은 곳을 어김없이 찾아갈 노릇이 아니라, 늘 새로운 곳으로 찾아가며 언제나 새로운 삶을 엿보거나 부대끼거나 껴안으면서 우리들 모두가 새로운 넋이 되도록 북돋울 노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를 거쳐 2000년과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나들이길'은 썩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지난 2009년에는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세계도시축전' 행사장으로만 몰아넣도록 하기까지 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동네를 깊이 들여다보거나 사랑하도록 이끌지 못하는 가운데, 내 동네를 넘어 이웃 동네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보듬도록 돕지 못할 뿐 아니라, 인천 바깥 마을을 아끼고 어루만질 줄 아는 매무새를 기르도록 어깨동무하지 못합니다.
저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우리 집 네 식구가 함께 송도유원지에 나들이 갔던 일이 즐거워서 이때 들머리에서 값을 치르며 받은 표를 알뜰히 건사했습니다. 나와 형이 낸 표값은 500원이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낸 표값은 800원이었습니다. 세 해 뒤인 1989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나들이를 가면서는 몹시 지겨워, 이때 들머리에서 모둠으로 거두어 값을 치르며 받은 표는 앞으로는 더 오기 싫다는 마음으로 간직합니다. 이무렵 표값을 치를 때에는 600원을 냅니다. 이때에도 어른 표값은 800원으로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2010.07.25 15:0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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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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