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가득한 설악산의 모습이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박은영
숙소는 걱정 말라며 큰소리쳤던 엄마 앞에서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한 난 말했다.
"사진빨이었어." 물론 쇠라도 씹어 먹을 젊은 나이에 이곳을 찾았다면 창문만 있는 너저분한 민박이라도 젊음의 열기로 극복할 수 있었을 테지만 엄마와 난 그러기엔 이미 지친 나이의 모녀였던 것이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객실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우리 베란다 앞엔 앞집의 파란색 지붕까지 존재했다. 그것도 필요이상으로 가까운 곳에. 마치 이 방이 생기기 전에 이미 그곳에 있었다고 말하는 듯이.
여행을 오기 전, 펜션 사장님과 몇 번의 통화를 거친 뒤였기에 큰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대놓고 우울해 하는 우리의 눈빛을 보신 사장님은 서둘러 바다가 보이는 옥상으로 우리를 안내하셨다. 그랬다. 그곳은 바다가 보이는 높은 지대의 민가를 개조해 만든 집이었다. 앞집과 뒷집에는 그곳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펜션과의 경계도 담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물론 좁아도 좋긴 하다. 좁아서 더 좋을 연인들만의 장소로는 최적이었으며 실제로 그곳은 한 달 정도 예약이 만료된 곳이기도 했다. 주말을 낀 2박 3일에 31만원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 이 펜션은 '불타는연인버전'으로 안성맞춤이다. 엄마와 지내는 이틀 내내 여기저기 젊은 연인들뿐이기도 했고 그 사이를 서성이는 우리 모녀는 이상하게 돈 안 내고 들어온 객처럼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곳은 옆 객실의 베란다와 우리 베란다가 트여있는 구조였으며 바깥출입을 할 때도 그들의 베란다를 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편하진 않았고 엄마께도 죄송했다. 그래도 우리는 기꺼이 완불한 손님.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불을 한 손님은 무조건 대접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즐겁게 푸욱 쉬다 가자며 엄마를 부추기며 해변으로 향했다.
해운대와 경포대 같은 상가나 모텔이 즐비한 해변을 보아왔던 나에게 아야진의 한적함이, 여행은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어느 정도는 걸맞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는 바다를 보러왔고 여기 바다가 있다." 우리를 위로하는 바다는 너무도 근엄하고 예쁜 빛으로 그곳에 있었다.
'
불타는 연인버전'의 펜션을 나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