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4시 무렵, 매동마을 '이층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집 주인 표철임씨(56)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주방으로 갔다. 오늘은 토요일(7월 3~4일)이라 둘레길을 찾는 손님 10여 명이 숙박을 예약했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표씨의 마음은 벌써부터 바쁘다. 어제도 밤 12시 넘어서 잤지만 잠을 쉽게 이루진 못했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할 밭일과 손님맞이용 반찬거리를 걱정하다 몇 번을 뒤척였다.
주방엔 김치냉장고와 일반냉장고가 각각 2대씩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밥통도 4개, 그릇도 손님맞이용으로 준비하다보니 셀 수 없이 많다. 표씨는 어제 밤에 준비해놓은 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까놓은 마늘, 씻어 놓은 양파, 썰어 놓은 오이, 깨끗이 씻어 데쳐놓은 나물 등은 표씨의 재빠른 손놀림 끝에 몇 가지 나물반찬으로 마무리됐다.
반찬 만들기가 끝나자 표씨는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데 서둘러서 밭으로 향했다. 요즘엔 손님들이 좋아하는 깻잎김치의 주재료인 들깨 잎을 많이 수확하기 위해 모종을 옮겨 심는 철이다. 고사리가 한창 돋을 땐 4시에 밭에 나가 날샐 때까지 있다가 여명에 비친 고사리를 끊기도 했다. 한창 두어 시간을 일한 표씨는 9시쯤 들어와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해결하고 또다시 밭으로 향했다. 손님준비를 해야 하는 오후까지 표씨는 농사꾼으로 돌아갔다.
한때 매동마을 부녀회장이기도 했던 표씨가 민박집 주인과 농사꾼의 이중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지리산 둘레길이었다.
"민박하기 전에는 주로 농사만 지었제. 우리 아저씨가 이장하면서 2004년에 민박집 허가를 냈어. 민박은 2006년부터 하고. 그때는 남편이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고 많이 아파 갖꼬 혼자 벌어서 먹고 살기가 팍팍했어. 생활비라도 할라고 민박을 했는디 둘레길이 어느 순간 생겼제."
남편 이길춘(67)씨는 현재 다리에 장애가 있어 직접 손님맞이를 돕기는 어렵다. 대신 남편은 매동마을의 내력 등을 둘레꾼에게 전해주는 이야기꾼 역할을 자연스레 맡고 있다.
농사꾼에서 다시 민박집 주인으로
오후 4시가 넘은 시간. 표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농사꾼에서 민박집 주인이 되었다. 표씨는 집에 오자마자 50인분도 거뜬하다는 커다란 밥통에 쌀을 안쳤다. 곧이어 주방을 부지런히 오가며 음식을 준비했다. 시래깃국을 끓이고, 두부 지짐을 만들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손님 왔을 때는 3시간도 못 자. 손님이 올 때면 좀 일찍 들어와서 손님들 저녁거리 준비하고 그래. 어쩔 때는 바빠 갖고 왼손으로 주먹밥 먹어감서 오른손으로 일해. 오늘은 아는 사람이 온다니까 음식은 신경도 안 썼어."
음식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손님들 가운데 한 무리가 민박집에 도착했다. 숙소는 2층이지만 막걸리 냄새가 확 풍기는 손님들을 우선 1층 현관에 들이고는 표씨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둘레길을 걷고 왔으니 배가 고플까봐 그동안 준비한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손님들 앞에 놓인 상에는 금세 반찬이 가득했다. 오이무침, 깻잎 김치, 우엉무침, 3년 된 묵은지, 숙주나물, 고사리무침, 청옥무침, 콩자반, 채나물 등 둘레길 인근에서 난 재료로 만든 반찬으로, 15가지나 됐다. "아무것도 해 논 것이 없다"던 말은 겸손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시장기에 밥을 먹던 손님들은 여기저기서 반찬이 맛있다고 칭찬을 해댔다. 어느새 밥공기 두 그릇을 깨끗이 비운 이도 있었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2층으로 올라간 저녁 8시 무렵. 표씨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먹다 남긴 반찬들을 한곳에 모으고 빈 그릇들은 싱크대에 넣었다. 상에 놓고 남은 음식은 재활용을 않고 다 버린다. 아깝지만 다시 상에 올릴 수는 없었다. 덕분에 갖다 버리기 좋아한다고 동네 마을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한단다. 버리는 음식이 못내 아까웠는지 "내일 아침에는 자기가 먹을 만큼만 갖다 먹게 뷔페로 해야겠다"며 혼잣말한다.
'이층집'의 음식비법
싱크대엔 빈 그릇으로 가득 찼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휴가철 주말에는 위층은 물론 아래층에 있는 방도 모두 손님 차지다. 심지어 표씨 부부가 자는 방까지 손님들에게 내준다. 이쯤 되면 대략 40~50명이 하루 동안 자고 가는 셈이다.
매동마을에 민박이 성행하면서 15년 전에 살림집을 하려고 지었던 이층집은 민박에 맞춤이 되었다. 당시 대밭이었던 현재의 땅을 어떤 스님이 터가 너무 좋다고 3배까지 준다며 팔라고 했지만, 팔지 않았다. '이 터에서 집짓고 사는데 판검사가 안 나오면 내 눈을 빼라'는 스님의 말에 얘들도 여럿 있고 하니까 이층집으로 크게 튼튼하게 지었다.
표씨는 10여 명이 먹은 식사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번개 같이 설거지를 마쳤다. 그러나 하루 일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표씨는 내일 아침에 먹을 음식꺼리를 위한 양념 및 기초 재료들을 준비했다. 표씨의 양념 중에서도 시래깃국에 들어가는 된장, 오이무침과 주물럭에 들어가는 고추장 맛은 개운하고 감칠맛이 돌아 단연 으뜸이다.
"찹쌀을 간수를 해갖고 그놈 짜내버리고 조청을 고아. 옛날식으로 어머니한테 배운 그대로 고추장을 해먹어. 그전에는 30근씩 담고, 지금은 100근 담아도 모지래. 왜그냐믄 사람들이 묵어보고 사가. 된장도 묵어보고 사가, 된장도 30키로 세 가마 끓였어."
사람들이 먹어보기만 하면 사간다는 표씨의 고추장, 된장. 그 비법은 요리책에 나오는 몇 그램, 한 스푼, 두 스푼이 아니라 '적당히'다. 표씨가 하는 민박일이 쉽지 않다보니 표씨의 자식들은 모두 민박을 그만 하라고 성화다.
"아들이 못하구레. 힘들다고. 아들 하나에 딸 둘인데 자식들이 용돈을 넉넉히 주지만, 굳이 돈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여. 예전에 내가 가슴에 뜨거운 것이 막 올라오고 답답해서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이 왔다고 하드라고. 그러다 민박집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 나샀어."
4평 남짓되는 술방의 각종 술들
대개 둘레길 손님들은 저녁엔 술을 마신다. 이럴 때 표씨는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안주로 내놓는다. 그러나 안주만 받고 표씨를 그냥 돌려보내는 손님들은 거의 없다. 손님들이 기어이 표씨에게 술잔을 권한다. 이날도 표씨는 2층 손님들이 붙잡는 통에 술자리에 끼였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손님들과 흥을 맞출 정도는 된다. 그러나 술에 관한 표씨의 진면목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술 빚는 솜씨다.
남편분이 주무시면서 한두 잔씩 하시기도 한다는 술방. 4평 남짓 되는 술방에는 각종 술들로 가득하다.
"산지구엽초, 오가피 뿌리, 요거는 뭐이냐 하면 산에 굴밥나무에 새파란 거 말린 것. 이거는 산초술이고, 요거는 산수유술, 머리 안 까매지고 하는 술, 요렇게 뿌리로 캐는 거. 인터넷에 나오잖아. 요거는 산머루주술, 요거는 칡술, 큰 병에도, 자그만 병에도, 저 뒤에도 전부다 약술이다. 여러 가지 뽕잎도 있고 너무 많아 이름도 몰라. 아들이 뭐라해싸. 안 써놨다고."
저녁식사 무렵 직접 술방에 들어가 병 하나하나를 설명하던 표씨의 말투엔, 술에 관해서는 본인이 최고라는 자부심과 이중생활로 힘든 삶의 무게가 동시에 묻어났다. 거기엔 '귀빈'에게만 내놓는다는 표씨의 술, 농주도 있다.
"농주 저거는 8개월 됐어. 변하도 안 해. 2개월 걸려. 오래될수록 좋아. 냉장고에 넣지도 않고. 맹글 때는 찹쌀꼬드밥 2시간을 쪄야 돼. 손으로 딱 비비면 이렇게 몰려. 몇 시간을 쪄야돼, 물을 적당히 붓고 많이 부으면 안 돼. 항아리에다 넣어가꼬 짚으로 꼬실라."
"쪼매잡싸, 독해"라며 조금씩 그릇에 담아주는 표씨의 술맛에 손님들이 얼큰하니 취했다. 표씨도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랐는지 기분 좋아진다며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밤 12시가 넘도록 '이층집'에서 표씨와 손님들의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민박집 주인에서 다시 농사꾼으로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7시. 2층에 머물던 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려 1층으로 내려왔다. 표씨는 어제 얘기처럼 아침 식사는 뷔폐식으로 준비했다. 어젯밤에 구워먹으려던 삼겹살은 상추와 함께 주물럭으로 변신해 있었다. 아침부터 과식하게끔 만드는 표씨의 솜씨. 후식은 어제 손님이 사온 뜨끈뜨끈한 감자다.
"고구마, 감자 같은 건 우리집에 많이 있어. 아. 뭐더게 감자를 사와, 못살겄네."
손님은 괜히 사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처럼 귀찮다는 표현 없이 손님들이 가져온 음식을 조리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농사꾼의 집이었던 표씨의 집은 이제 제법 민박집의 꼴을 갖추었다. 마당에는 예쁜 화단이 꾸며져 있고, 그 옆에는 장작이 쌓여 있다. 마늘도 주렁주렁 걸려 있다. 주방 뒤쪽에는 큰 솥단지, 손님이 많으면 삼겹살 구워먹을 때 좁을 것 같아 20만 원 주고 맞췄다는 기계판도 있다. '이층집' 입구에는 차 3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우수민박집으로 선정돼서 4백만 원을 지원받아 2층에는 화장실 설치도 해서 화장실만 총 5개다.
민박집의 꼴은 집 모양에서만 있지 않았다. 민박을 한 지 2년이 넘은 만큼 단골도 생겼다.
"우리집에 뭐한 사람들이 많이 왔어. 단체손님도 유명하신 분 많이 왓어. 시골 갈 데가 콘도가 어딨어. 우리집에 그니까 많이와. 책 쓴사람 누군지 모르것네. 김 머신데. 말을 안하니까 그라제, 책 쓴 사람도 많이 왔다갔어."
한 번 온 사람은 표씨의 술맛에 반해, 각종 나물과 주먹밥에 반해, 둘레길을 걸으려고 집을 나설 때 얼린 물병을 건네며 챙기는 살가움에 반해, 지리산 둘레길을 찾을 때면 당연한 것처럼 표씨의 민박집을 찾아 단골이 되는 분도 있고, 홈페이지(http://jiritrail.kr/)를 무료로 개설해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포천에서 왔던 이도 있다.
오전 8시 무렵. 아침 식사는 끝났지만, 손님들은 여전히 1층에 머물렀다. 주물럭을 안주로 술상이 차려져 굵어진 빗방울을 핑계삼아 한 시간여를 지체했다. 덩달아 밭일로 마음이 바쁜 표씨까지 주저 앉았다.
오전 9시 무렵, 손님들은 둘레길을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제야 표씨는 다시 농사꾼으로 돌아와 어제 못다 한 들깨모를 옮기려 밭으로 나갔다. 시끌벅적하던 이층집에는 남편 이길춘씨만 남았다.
"내가 벌어묵도 못허고 항시 집에서 노니까 우리 안식구가 행상을 했어. 암것도 없이. 포항가서 제기를 15년 장사를 했어. 그 돈으로 얘들 갈키고 집 짓고 밭떼기도 다 장만했어. 나는 돈 벌라고 안하고, 총각 때부터 대한민국 1등으로 다 돌아댕긴 사람이고, 나는 암것도 안했어."
어쩌면 농사꾼이자 민박업을 하는 표씨의 진가를 알고 있는 이는 이길춘씨뿐인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요거는 산수유술, 요거는 농주... 쪼매잡싸 독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